번역: 이래로 Giannone, Diego(2010)
민주주의 측정에 있어서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인 측면들: 프리덤 하우스 사례를 중심으로
Giannone, Diego. 2010. “Political and ideological aspects in the measurement of democracy: the Freedom House case.” Democratization 17, No.1, 68-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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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
민주주의를 측정하고자 했던 기존 연구들은 그 측정에 있어서 [주로] 방법론적인 측면에 관심을 두어왔다. 반면에 정치적·이데올로기적인 문제들은 그렇게 큰 관심의 대상이 되지는 않아왔다. 그러나 바로 이 문제들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측정하는데 이용되는 기구들(instruments)의 설립과 그 구조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이 연구의 목표는 이제껏 간과되어온 정치적·이데올로기적인 문제를 에두르는 다음 두 가지 갈래를 포함한다. 첫 번째는 프리덤 하우스(FH)라는 조직의 설립에 있어 문화적이고 경제적인 차원을 분석해보는 것이다. 이는 FH의 배경에 놓인 정치적인 윤곽을 세세하게 그려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즉, FH의 신보수주의적(neoconservative) 성향을 분명히 보여주는 것을 그 첫째 목표로 한다. 두 번째는 FH가 민주주의를 측정하는데 이용하는 검사항목들(checklists)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살펴볼 것이다. 이 변화를 집중적으로 살펴본다면, 이러한 변화들이 신자유주의적(neoliberal) 이데올로기에 의해 얼마나(what extent) 추동되어왔는지, 특히 신자유주의적 패러다임에 얼마나 직접적으로 관련을 맺고 있는지 알아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논문의 가설은, FH라는 저울은 신자유주의가 구상했고(conceived) 신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 저울의 눈금이 한쪽으로 치우쳐져 있다는 말로 축약될 수 있을 것이다. 논문은 FH가 사용하는 민주주의 측정용 눈금들에 대한 학술적 토론을 재구성해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가 [오늘날 유일한 민주주의로서] 확약되는(affirmation)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맥락들이 이끌려 올 것이며, 이는 또한 일종의 정치 도구(political tool)로서 측정[방법](measurement)이 갖는 중요성에 대한 논의로 이어진다. 나아가, 논문은 FH의 정치·이데올로기적인 윤곽(profile)을 재구성하고자 한다. 이 윤곽에는 FH의 형성에서부터 시작해 FH의 현재적이며 내부적인 문화가 포함될 것이다. 이 논문의 세 번째 부분은, FH가 민주주의를 측정하는 데 사용하는 검사항목들(checklists)에 대한 분석이다. [측정]방법론(methodology)에 있어서의 계속된 변화들과, 이러한 방법론과 정치적 측면들 사이에 나타난 엄밀한 상호 연관성(strict interconnection)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말해준다. 즉, FH가 사용하는 (증명·판단·결정 등을 위한) 자료[정보/데이터]가 논박의 여지가 없고(unbroken) 정치적으로 중립적인 시계열(time series)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연구나 정책 입안을 위해 사용된 [FH의] 시간 교차 분석(cross-time analysis) 데이터가 적절하지 않았기에 결과적으로 그러한 연구나 정책이 문제시될 수 있음을 나타낸다.
도입
몇몇 연구들은 민주주의 측정의 방법론적인 측면들은 다뤄왔다. 반면에, 정치·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은 상대적으로 무시되어 왔다. 민주주의 측정에 있어 정치·이데올로기적인 측면을 간과한다는 것은 민주주의를 측정하는 데 사용되는 측정 기구(instruments)와 데이터베이스에 영향을 미친 요소들을 간과한다는 것과 같다. 마치 이러한 측정 기구가 이데올로기적인 진공상태에서 개발되었다는 듯이, 그러므로 지배적인 패러다임에 의한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는 듯이 말이다. FH가 제공하는 지표[점수]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한다. 문제는 이것이 민주주의를 측정하는 도구로서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도구라는 점에 있다. 이에 관해 몇몇 연구자들이 FH의 지표에 대한 타당성과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였다. FH가 제공하는 지표 점수[index]를 [무비판적으로] 사용하여 분석된 연구들이 방법론적인 약점들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Landman과 Ha¨usermann이 지적한 것은 FH가 민주주의와 좋은 거버넌스(good governance), 인권을 측정하는 데 사용한 인덱스가 개념적인 왜곡(conceptual stretching)을 발생시킨다는 점이다. 그들은 이러한 왜곡을 ‘함축된 의미의 [논리적] 정확성을 상실(losses in connotative precision)’하게 하는 주요한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즉, 모든 것을 측정하는 데 사용되는 도구는 결국 아무것도 차별화해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아니라는(not able to discriminate against anything) 것이다. 우리는 이를 통해 민주주의에 대해 객관적인 측정이 가능하다는 전제 자체를 의문시해야 할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이러한 지표의 신뢰성이 비판을 받는 또 다른 이유는 지표 점수가 합산되는 과정에서 야기되는 모호성 때문이다. Diamond는 이를 ‘개념적으로 어떤 것을 측정하기 위해 경계를 긋는 것에는 필연적으로 자의성(arbitrariness)이 개입하지만 자유 민주주의를 [다른 어떤 정치체제와] 구분하게 해주는 평균 점수 3.0과 2.5 사이에는 언제나 실제적인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표현했다. 또 다른 문제는, FH가 제공하는 종합적 데이터를 받아들이냐 마냐 하는 문제가, 데이터의 신뢰성 때문이 아닌, 단순히 FH를 믿기 때문에 이루어진다는 것에서 나타난다.
소수의 학자들이 FH의 방법론에 이데올로기적 편향이 있다는 것을 앞서 지적했다. Scoble와 Wiseberg는 FH의 측정이 보수주의의 영향력 아래 놓여있다고 본다. Bollen은 또한 FH의 측정에 있어서의 냉전 체제와 친-시장주의적 영향을 지적한다. 나아가, Bollen과 Paxton은 FH가 제공하는 지표 점수가 기독교와 서구 국가들의 편의에 따라 체계적으로 구성되는 동시에, 무슬림 국가들과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따르는 국가들에 불리하게 법체계화[성문화](codify)되고 있다고 말했다. Mainwaring은 FH의 측정방법이 ‘두 가지 시스템적 편견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첫째는 FH가 진보성향의 정부에 대해 점수를 낼 때는 정치적 고려가 곁들여진다는(tainted) 점이다. 즉, 이것은 FH가 제공하는 각각의 점수와 대응하는 실제적인 환경(conditions)이 변화했기 때문이 아니라 FH가 해당 사항에 있어서 점수 기준(criteria)을 바꾸었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Gramsci와 Wallerstein가 말한 과학적 지식의 기능(the function of scientific knowledge)에 관한 이론에 입각해, 우리는 FH의 측정 방법[기구]을 다음과 같이 이해할 것이다. FH의 측정 방법[기구]은 현존하는 [과학적] 지식 구조의 일부인 동시에 그것을 기능하게 해주는 필수적 요소이자 세계-시스템의 정치적, 경제적, 사회 구조적 정당성을 보증해주는 요소이다(FH measuring instruments have come to be part of those structures of knowledge that are an essential element in the functioning and legitimacy of political, economic, and social structures of the existing world-system). 이는 다음에 대한 과학적 정당화를 제공하고 있다. 권력의 분배 문제에 있어 현상태 유지(status quo)의 정당성이 그것인데, 이는 FH의 측정 방법의 두 가지 특징인 기득권 유지와 이러한 정당화를 위해 ‘필수적인’ 세간에 널리 알려진 그들의 중립성과 맞물려 있다.
따라서, 이러한 측정 방법의 발전은 ‘헤게모니적 기구[국가 장치]의 생성(the creation of a hegemonic apparatus)’을 위한 투쟁과 깊은 연관을 가진다. 그 이유는 이러한 측정 방법[기구]이 이데올로기적 지형을 새롭게 개척해 놓으면 의식에 있어서의 개혁 그리고 지식론[지식을 구성하는 방법론]의 개혁을 이끌어내기(leads to a reform of consciousness and methods of knowledge’) 때문이다. 우리는 쉽게 [공인된] 측정 기구[방법]를 사회적 현실을 이해하는 진실로 올바른 방법으로 간주하곤 한다. 그러나 [공인되었다고 해서] 이러한 측정 기구가 정치적으로나 이데올로기적으로 중립인 것은 아니다. 따라서, 이것이 중립이 아니라는 사실만큼이나 [확실히], 이것이 기존 질서 유지라는 헤게모니의 획득 및/또는 강화를 위한 도구로서 이용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해야 할 것이다.
신자유주의, 민주주의, 그리고 자유
FH의 지표는 1973년 Raymond Gastil에 의해 개발되었다. 이 시기는 당시 끔찍한 해(annus horribilis)로 여겨졌는데, 석유 파동과 인플레이션, 아랍-이스라엘 전쟁, 그리고 자유선거에 의한 세계 최초의 마르크스주의 대통령이었으나 군부 쿠데타로 쓰러진 칠레 아옌데 정부의 전복을 미국의 기업과 CIA, 국무 장관 키신저가 지원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시기는 ‘신자유주의 국가 형성이라는 세기의 실험’이 일어난 해이기도 하다. 불과 몇 년이 흐른 후, 이 실험은 우리의 담론 방식(a mode of discourse), 사고방식(ways of thought), 정치-경제적 양식[실천](political-economic practices) 전반에 대해 헤게모니를 갖게 된다. 곧, 우리는 이를 상식처럼 받아들이게 되었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1973년은 또한 유럽과 일본, 그리고 미국의 민간인 그룹들에 의해 삼자 조약이 체결되었는데, 이것의 목적은 세 국가 간 협조와 상호 지지, 앞으로 일어날 문제 해결에 있어서 공동의 참여를 약속하는 것이었다. 이년 후, 이들은 서구 민주주의의 통치성 (governability)에 관한 보고서를 제출하였는데 이 보고서의 제목이 바로 민주주의의 위기The Crisis of Democracy였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서구 민주주의는 ‘민주주의적 과정 자체에 의해 발생하는 내부적 작동에서의 위기’를 겪고 있다. 민주주의의 '활력'이, 민주주의 국가의 통치에 어려움을 유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시스템이 ‘엔트로피’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는 그들의 주장은, 민주주의의 의사 결정 과정 자체에 너무 많은 시민들이 참여하기 때문에 그것을 관리하고 통제하는데 어려움을 만들어내며, 일종의 모순을 발생시킨다는 주장이다. 이 모순은 근대적 국가가 해결해야 할 결정의 문제들[정치적 권력 분배의 문제, 경제적 분배의 문제 등]이 많아질수록, 국가가 행사할 권력의 영역이 도리어 줄어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민주주의 안에서 중재를 담당할 기구, 즉 개인들과 조직에 관련을 맺지 않은 완전히 중립적인 기구(some measure of apathy and non-involvement on the part of some individuals and groups)의 창설을 요구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신자유주의가 경쟁했던 모델인] 복지국가 모델이 위기를 맞은 이유가 이를 유지하는데 드는 엄청난 비용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이데올로기적 수준에 있어 그 적법성과 권위가 무너졌기 때문이라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와 달리 복지국가는] 의사결정 과정에 있어서 너무나 많은 낭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신자유주의는 곧 다른 버전의 민주주의,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를 제시하게 된다.이 민주주의는 자유라는 개념에 완전히 밀착되어 있는데, 그 정도가 민주주의를 이루는 또 다른 실질적 가치인 평등의 저해를 불러올 수준에 이르렀다.
(생략)
신자유주의와 프리덤 하우스: 마치며
그러므로, [앞서 제기된] 방법론적이고 정치-이데올로기적인 문제들을 넘어서 이러한 기구가 기능하고 있다는[강조는 역자]는 사실, 이 기구가 민주주의를 측정하고 있다는 사실이 또한 (신)자유주의적 민주주의 모델을 '과학적으로' 정당화한다. 즉, 이 FH가 개발[발전]됐다는 이유 하나로 이 기구의 지지자들은 이 기구가 표방하는 이데올로기의 수혜를 받고 있는 것이다. 특정 방법론과 지표들을 기반으로 삼아, FH는 국가들을 줄 세운다. 민주주의의 정도에 따라 이렇게 줄 세워진 국가들 사이에 [FH가 규정한 바에 따라] , 구조적 수준에서는, 국제 관계가 형성되고, 인도주의적 정책들이 입안되며, 개발 원조가 행해지고, 정부의 외교 정책이 결정된다. 반면에, 개인적 수준에서는, 이러한 방법론과 지표들이 [머릿속에] 생성해낸 [세계/의미/존재/지식]해석의 격자 틀에 의해 한 사람이 요구할 수 있는 인권의 정도와 그 인권이 적용되는 영역이 규정된다.
FH가 제공하는 지표의 성과에 관해, 이것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다음과 같은 평가가 가능할 것이다. 즉, 지표는 적어도 [세계를 바라보는] 근본적이며 이론적인 틀[신자유주의]에 부분적으로 엮여 있으며 이 틀이 지표를 계속해 만들어낼 것이므로, [지표 자체가] 떼어낼 수 없는 현실이 되는 것에 성공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이러한 틀이 [인간의 사고에 있어] 지배적인 위력을 발휘하며 틀 자체를 재생산해낼 수 있는 한, 이를 다른 방법론[인식의 틀]이 교체할 수 있는 가능성은(혹은 최소한 이와 경쟁할 수 있는 가능성마저도) 희박하다. 다른 방법론이 [과연] 전파될 수 있을까 하는 점, 그러한 방법론이 [과연] 권위를 가질 수 있을까 하는 점, 그리고 [과연] 다른 방법론을 사용할 수 있을까 하는 점에 관해서도 가능성은 희박한 것이다.
Therefore, beyond the methodological and political-ideological issues, the function of this instrument for measuring democracy is also to legitimize ‘scientifically’ the (neo)liberal democracy model for which it was developed, providing a kind of impartial support to its advocates. Based on specific methodology and indicators, FH places countries in rankings of democracy, which generate, at a structural level, a profound impact on international relations, humanitarian policies, development aid, and foreign policy of governments, while at the individual level they produce an interpretive grid that defines the field of demandable human rights.
FH’s index’s success, in terms of duration, can be explained at least in part by its inextricable interweaving with the basic theoretical paradigm that has generated it: as long as the latter remains dominant and has the ability to reproduce itself, it is unlikely other measurement instruments will supplant (or at least compete with) it as to distribution, authority, and 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