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노동자는 대체가능한가?
Gordon Gottsegen의 글[https://builtin.com/robotics/robotics-in-the-classroom]을 읽고 나는 심리학자 해리 할로우의 원숭이 애착 실험을 떠올렸다. 이 글에서 감정을 지닌 인간 교사, 양육자, 부모의 역할은 교육에 있어 대체할 수 없는 것으로 잠정적으로나마 결론이 내려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로봇에게 (아이가 애정을 드러내며) 포옹할 만한 요소가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로봇은 아이에게 사랑받을 수도 있습니다. 혹은 적어도 애착관계를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영상의 끝 부분을 보면, 아이들이 일렬로 서 로빈에게 굿바이 키스를 하고 있습니다. 다른 어떤 영상에서는 여자 아이가 테가를 꼭 안아주고 있습니다. 로봇은 아이들의 애정을 정말로 느끼지는 못 하겠지만, 적어도 이 로봇들은 아이가 보인 정서적 반응[애정]에 반응[상호작용]하는 것처럼 보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현재로선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And let's not forget the cuddly factor. That's right, cuddly. You might be surprised to learn that robots can even inspire love — or at least strong emotional attachment. At the end of an L2TOR promo video, kids line up to kiss Robin goodbye. In another video, a girl puts her arm around Tega the robot mid-lesson. The robots can't actually sense their affection, of course. But they're built to seem receptive to it. And for now, that's good enough.”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의 사회적 관리의 대상이 된다. 현대 사회의 기능적 분화가 가속화되면서(사회가 복잡해짐에 따라) 이러한 관리는 더욱 이른 시기에 시작된다. 이는 한 인간이 가진 다른 인간에 대한 관리 능력이 점점 더 줄어드는 것과 맞닿아 있다.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아남기에도 벅찬 (복잡한) 사회에서 그가 놓아버린 것은, 바로 이렇게 관리되지 않는 영역에 놓인 한 아이의 양육이며 이에 대해 관리가 행해지는 것이다. 인간이 한 인간에게 줄 수 있는 자원의 총량은 전적으로 제한되어 있다. 부모는 그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그의 자식에게 물려줄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그 부모가 가진 자원이 전체적으로 (혹은 사회 전체 부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 아이는 일종의 짐이 되어 버렸다는 것이 지속적으로 (또한 과도하게) 확인되고 있다. 기본적으로 자식-사업은 오늘날 한 인간이 감당해 낼 수 없는 병리적 현상으로 되었다. 투자 비용에 따른 이윤이 비례하여 상승하지도, 그러한 이윤 자체도 보장되지 않는 사회에서 그럼에도 이러한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AI 기술 발전에 따른 이 기술이 미칠 교육 영역에 대한 영향력 측정은 모두 이러한 병리 현상에 집중하여 가늠되고 있는 듯하다.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우리는 여기에서 특수 교육의 전제가 되는 일반 교육에 대한 자동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으로 산업사회가 고도화되었듯이, 교육 대상이 되는 인간의 개성을 함양시키는 방식으로 교육이 고도화되는 과정에서 기본 교육은 자동화되는 것이다. 교육 사업에 대한 투자라는 관점에서 특수 교육의 전제가 되는 기본적인 교육은 앞으로 기계가 떠맡게 될 것을 예측해볼 수 있다. 여기에서 로봇이 맡게 될 기본적인 교육은 제 일차적인 지식 수용 및 정보처리 기능을 하는 언어와 수학에 집중된다.
“In this article (Kanero, J., Geçkin, V., Oranç, C., Mamus, E., Küntay, A. C., & Göksun, T.,「Social Robots for Early Language Learning」, 2018), we spotlight one of the newest additions to the list of devices—social robots—and discuss whether research on child–robot interaction (CRI) can help children learn first and second languages. A social robot is “an autonomous or semiautonomous robot that interacts and communicates with humans by following the behavioral norms expected by the people with whom the robot is intended to interact” (2, p. 592). Social robots have been used to teach scientific knowledge, mathematics, social skills, computer programming, and language (3, 4). However, research on CRI has not been readily accessible to all those interested because the studies appear primarily in conference proceedings and journals dedicated to the field of robotics. Furthermore, these studies often focus on technical features of robots rather than educational concerns, such as whether and how robots can help young language learners(pp.146).”
“Language Production: Social robots have been used to improve children’s ability to produce language, for example, in storytelling skills (19, 27). In the study mentioned previously (27), Korean-speaking 4-year-olds learned vocabulary equally well with a robot and with an electronic. […] In addition, in another study, English-speaking 4- to 6-year-olds’ own stories became longer and richer when the robot adjusted the lesson’s complexity to children’s language level (19). (pp.148).”
이 논문에서 결론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은 아동 교육에 있어 인간 교사에 대한 로봇의 압도적인 우위가 결코 아니다. 다시 말해, 인간 교사가 단독으로 행하는 교육의 능률이 로봇 교사에 비해 떨어지며 이를 향상할 유일한 방식으로 로봇이 인간을 대체해야 한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앞으로 교육이 일반 교육과 특수 교육으로 이원화되는 것에 있다. 그리고 이러한 이원화 논리는 투입 대비 산출의 논리로 뒷받침되어 있다. 어떤 교육은 로봇 교육에 비해 당연하게도 질적으로 더 우위에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는다. 다만 그 어떤 교육을 위해서라도 로봇 교육이 기본적 교육의 역할 정도는 맡을 수 있다는 식으로 소개되고 있는 것이다.
CONCLUSION : “We have provided a concise, critical review of research on using social robots in early language education. Research suggests that robots may supplement a need that cannot be met solely by human teachers. However, when considering whether robots can substitute for other devices or human teachers, no study indicates that they are more effective than humans—though robots can be more effective than other digital devices. The shortage of evidence supporting the unique benefits of social robots should be viewed as an opportunity for researchers. We hope this article encourages interdisciplinary collaboration among experts on this important topic(pp.149).”
Keren, G., & Fridin, M.(2014)의 논문 Kindergarten Social Assistive Robot (KindSAR) for children’s geometric thinking and metacognitive development in preschool education 역시 로봇 교육이 행해지는 영역을 아동 교육에 한정하고 있다. 기본적 교육으로서 유치원에서 행해지는 로봇 교육은 아이들의 정보처리능력 인지능력 향상할 수 있다. 이는 곧 이러한 능력을 전제로 더 상위의 교육을 받기 위한 예비 과정으로서 기본 교육에 있어 로봇의 역할이 인간을 대체할 수 있음을 표현하는 교육의 자동화를 말하는 것이다.
“Learning to use symbols is an important stage in the development of spatial cognition. In our procedure each of the Four Seasons was represented by a symbol on the monitor, and the children were able to identify each season correctly by pressing its symbolic representation on the robot’s buttons. Use of the symbols also promoted content knowledge of the seasons (cyclicity in nature) and basic terms associated with each season (flower, green tree, rain, etc.). In addition, by pressing the buttons children also underwent training in their visuomotor skills. An important finding, in line with the van Hiele theory of geometric thinking levels (Chang et al., 2007), was that geometric thinking can be developed in preschoolers.”
Joseph Tainter의 『The Collapse of Complex Societies』(1988)에 따르면 근대 사회는 곧 복잡한 사회이다. 사회의 복잡성이 점점 더 높아질수록 교육은 특수 교육으로 수렴된다. 다시 말해, 일반 교육에 투자 대비 순 생산(marginal product)이 줄어드는 것이 필연적이기 때문에 복잡한 사회일수록 한 인간이 사회가 갖는 복잡성을 일정 정도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복잡한 사회에서 그럼에도 한 인간이 생산성을 갖기 위한 대응전략으로서 교육이 행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 인간(사회)이 가진 자원과 재화가 비교육적인(전략적인) 교육에 의해 낭비되고 있다.
“As surprising as it may seem, investment in education also shows a trend of declining marginal productivity. To begin with, a complex society that must process large quantities of information will be faced with costs for education that will almost certainly rise. Between 1870 and 1960 the proportion of the population between the ages of 18 and 21 enrolled in institutions of higher education in the United States increased from 1.7 percent to 33.5 percent (Machiup 1962: 78). [중략] But hasn't this increased investment in higher education brought at least equivalent, if not greater, returns? While the returns on investment in education are difficult to assess, most people would assume that the answer to that question must be yes. But there are ways of looking at the matter that suggest that this investment has not brought greater marginal returns. With increasing time spent in education and greater specialization, the learning that occurs yields decreased general benefits for greater costs. The greatest quantities of learning are accomplished in infancy; learning that occurs earlier in life tends to be more generalized. Later, specialized learning is dependent upon this earlier, generalized knowledge, so that the benefits of generalized learning include all derivative specialized knowledge. Axiomatically, therefore, generalized learning is of overall greater value than specialized(pp.103).”
“A society able to meet its needs by generalized education will inevitably, then, obtain greater value for its investment than will a society dependent on specialized training. As complexity and specialization increase, the cost of education does also, while its marginal product declines(pp.105)”
글의 시작에서 나는 원숭이 애착 실험을 말하였다. 이 실험은 양육 과정에 있어 육체적인 것과 심리적인 것을 구분한다. 그리고 절대 대체될 수 없는 아이-양육자의 관계성을 애착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오늘날 인간 아이에 대해 실험이 행해지고 있다. 이 실험에서 우리는 또 한 번 교육에 있어 절대 대체될 수 없는 감정의 역할을 확인한다. 그러나 이번에 분리되고 있는 것은 합쳐진다. 먹고-살게-해주는 강철 엄마가 곧 감정노동자로서의 담요 엄마 역할까지 한다면 이제 분리되고 있는 것은 교육 자체이다. 기본 교육과 특수 교육으로 교육이 이원화되는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기본 교육은 앞으로 배워서-먹고-살 수 있는 바로 그 기술을 배우는 최소한의 능력으로서, 특수 교육은 한 인간이 먹고사는 것 이상으로 살기 위한 능력으로서 교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