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경
나 자신을 생각하는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오직 세상을 관조하기만 하는, 그렇게 세상이라는 거울을 통해 스스로를 비춰보기만 하는 유아론적 세계관이 그 방법들 중 가장 뚜렷한 것이 될 수 있다. 나는 나로서 너를 본다는 것이다. 그러한 세계는, 뚜렷하게 맺혀진 이 세계상은 또한 화려하기 이를 데 없다. 만화경이 그러하듯 그 중심이미지를 분절, 반사, 무한히 복제하기를 거듭하여 하나의 통일적 세계상을 산출해내는 것이다. 여기서 통일성이란 이해가능성에 다름아니다.
일방통행로, 이 깊은 굴 속을 파고들어가 끝모를 미궁을 그 자신에게 선물하는 것으로 자본주의는 인식의 바깥, 곧 굴 바깥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저당잡는다. 개인에게 채권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가 커다란 중심 이미지를 따라 무한한 상품의 미로를 헤맬 것은 자명하기에, 이재(理財)에 따라 관대함은 채권에 따른 몫으로 일종의 이자가 된다. 그렇게 신용제도에 맞춰 무이자할부를 이용하는 우리는 때로 감사한 마음이 들곤 하는데, 이는 이러한 이유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