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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래로 Apr 26. 2021

『그릿』을 읽고

웃으면서

끈기, 투지, 기개로 번역될  있는 엔젤라 더크워스의 『그릿』은 한국에 출판된  불과 2개월 만에 10만 부가 팔렸고 현재는 100쇄를 넘겨  30만 부 이상 이 팔렸다.  책의 부제는 “IQ, 재능, 환경을 뛰어넘는 열정적 끈기의 이다. 여기에서 그릿은  다른 하나의 ‘성공 방적식’으로서 소개되고 있다.

“Duckworth (2016) reminds us that talent + skill produce achievement, but when varying amounts of effort are added into the mix, grit becomes a huge factor of achievement. Then, Skill x Effort = Achievement (Duckworth, 2016, Loc 149)*.”

나는 성공(탁월함) 이를  있게 해주는 이러한 방정식을 보면서 어떤 기시감을 경험했다. 한국 사회가 전제하는 성공과 그러한 성공을 일종의 보상으로 받을  있는 ‘인재상 되려고 마음먹었던 때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이다. 나는 그때 공부를 하려고 마음먹었다. 바로  순간부터 나의 주변에는 갖가지 언명들이 맴돌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사당오락과 같은 것이  예가   있겠다. 사당오락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비단 학생이 지금 ‘얼마나잠을 자는가에 국한되지 않는다.  말은 무엇보다 학생의 마음가짐에 겨냥되어 있다. ‘감히 자고자 하는 학생의 마음에 불신의 씨앗을 심는 것이다. 여기서 불신의 대상이 되는 것은 다른 모든 학생들,  경쟁자들이다. 나아가 자기 자신에게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하는 물음을 계속해 던지게 한다. 다시 말해, 다른 경쟁자가 자신보다  열심히 공부(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게끔 만들어 자기 자신의 ‘최선 대해 불신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후부터, 심지어 오늘날까지도, 사당오락은 ‘아침형 인간으로 변주되면서 지속되었다. 사당오락만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전제하는 성공을 내가 진정한 성공으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한 직후부터 ‘마시멜로 이야기 ‘아웃라이어 갖가지 성공방정식이  주변을 맴돌았다. 나는 그러한 성공에 목말라 있었고 충분히 절실했기 때문에 더더욱 다양한 종류의 방정식을 소개받을  있었다. 이러한 예를 통해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더크워스가 전제하고 있는 ‘탁월성 보편성이다. 모두가 탁월해지기를 원하고,  모두가 탁월해지기 위해 그릿을 발휘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의 보편성이다. 이는 오늘날 팽배한 성공지상주의를 넘어서, 혹은 이렇게 보편화된 성공지상주의의 토대에서  정당화 기제로서 ‘노력 이용되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누구나가  성공할  없다는 사실은 성공지상주의에 내재한 필연적 약점이다. 말 그대로 누구나가  성공할  없으며, 더욱이 오늘날 그러한 성공이 오직 소수의 몇몇에게만 굉장히 ‘우연적으로획득되는 성질의 것이라면 아무도 그러한 사회를 공정한 사회라고 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성공의 ‘우연적요소를 제거하고  자리에 ‘노력 안치시킬 수만 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메리토크라시 부흥한 오늘날 한국 사회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나에 대한 불신조차 믿음의 체계 안에서는 하나의 믿음에 불과하다. 그리고 믿음은 언제나 정당화된 믿음이다. 자본주의는 오늘날 이미 충분히 (지나치게) 정당화되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성공의 이유만큼, 아니  이상으로 실패의 이유가 이데올로기적으로 제공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많이 실패하기 때문이다. 성공한 사람이 성공한 이유는 이것이다고 했을 , 이것은 동시에 실패자가 그렇게 실패한 이유가 되어야 한다. 동시에 이것은 또한 그러한 실패를 바라보는 다른 실패한 이들이 받아들일  있는 이유가 되어야 한다. 이때 이를 받아들일  있게 하는 심리적 기제는 역할극에서의 연기(수행) 닮아 있다. 성공한 사람은 자신이 맡은 배역에 대해서 의심해서는  된다. 성공극은, 이를 이끌어 가는 주인공의 연기 능력에 기대어 다른 모든 조연들이  동선에 따라 유기적으로 움직임으로써 ‘성공적으로진행될  있는 것이다. 성공한 사람이 그의 성공을 의심하는 정도가 적을수록 그는 실패한 이의  실패 이유를 확증해주는 기준으로 된다. 나는 성공한 이를 기준으로 내가 실패한 이유를 받아들일  있었으며, 적어도 이렇게 받아들이면서 나는 다수의 원한을 자아내는,  ‘필연적으로누군가는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 자본주의 구조를 기적적으로 신비화할  있었다. 신비화된 것은 믿음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자본주의를 믿는다. 이러한 믿음 가운데, 실패한 자들 가운데 떠오른 성공은 내게 일종의 기적이다. 기적은 바로  믿음으로 뒷받침된 기적이다. 그러나 믿음은 승화된 원한이며 이것은 바깥에 향해 있는 구조-변화 충동을 내적 성공 동기,  돈을 향한 리비도로 내재화시킨다.


이 체제는 좁게 보면 여러 선발 과정을 거쳐 그 능력이 가장 뛰어나다고 인정된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갖는 체제이고, 일반적으로는 사회 전체에서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보다 더 많은 부와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 또 그런 방식의 분배가 ‘정의롭다’고 정당화되는 사회 체제라 할 수 있겠다. 이런 체제에서 교육은 아주 특별한 의미를 지니며 또 병들 수밖에 없다. 나는 우리 사회의 심각한 교육문제를 바로 이런 메리토크라시의 특별히 한국적이고 병리적인 전개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이해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그러나 그런 자본주의적 불평등이 정의롭지 못하다는 비난에 맞서 다양한 방식으로 그 불평등을 정의롭다고 옹호하려는 시도들도 있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자본가의 재산은 본디 모든 사람의 공동의 소유였던 자연에다 자신의 노동을 섞어 만들어 낸 산물에 기초하고 있고 그래서 정의롭고 정당하다고 주장하는 로크의 소유론이 그 대표적인 예다. 이 소유론은 많은 비판과 반론에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도 다양한 계승자들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자본주의 사회 일반에서 설득력 있는 분배 정의의 원칙으로 발전될 수 있는 암묵적이지만 매우 강력한 직관에 호소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기여한(노동한/노력한) 만큼 보상을 받는 것이 올바르다’고 정리될 수 있을 직관이다. 이 직관은 ‘기여’라는 ‘정당한 또는 정의로운 자기 몫’의 한계를 명확히 하고 있는데, 그만큼 그 호소력이 크다. [장은주. (2011). 한국 사회에서 ‘메리토크라시의 발흥’과 교육 문제. 사회와 철학, (21), 74, 78]

*Reed, L., & Jeremiah, J. (2017). Student grit as an important ingredient for academic and personal success. Developments in Business Simulation and Experiential Learning. 44. 252-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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