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은 없다
어쩌면 그들은 너무 건강하다. 투표를 할 수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차라리 건강한 사람들이다. 서울 시민의 50%는 정말 아직도 그렇게 건강한 사람들이다. 나는 놀랐다.
대안과 플랜 B 혹은 생존 전략이, 나아가 어떤 본능이 선택지에 각인되어있고 표현되었으며 때로는 어떤 표징을 내보이는 선택지를 받아 든 모든 사람은 축복받았다. 이번엔 졌으나 다음엔 이긴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축복받은 사람 이리라. 이번엔 이겼으나 다음엔 질지도 모른다고 말하는 사람은 정말 너무나도 큰 축복을 받은 사람 이리라. 이런 점에서 건강할 수 있다는 것, 아직 건강하다는 것, 심지어 건강하고자 하는 모든 의지마저도 축복에 의한 것이다. 나는 정말 몸서리치게 놀랐다.
그러나 표심이라고 불리는, 대중심리학적 접근 혹은 그러한 방정식에서나 쓰일법한 이 용어는 대중심리학이 의도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것을 가리키고 있다. 표심으로부터 지금 발견되는 것들은 표징이나, 이 표징은 육체적인 것의 표징이다. 다시 말해, 이 표징은 혈액검사나 심전도 검사를 통해 발견되곤 하는 어떠한 이상증세를 나타낸다. 우리가 표심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대부분은 건강하다는 것이다.
확실히 그들 대부분은 건강하다. 이미 충분히 건강한 사람들에게 어쩌면 유일한 위험성은, 이 위험이 정신으로부터 기원할지도 모른다는 공포로서, 정신적이다. 건강이라는 병세의 증상은 걱정이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파악된 위험성은 그 사람을 더욱더 건강하게 만든다. 온갖 걱정, 건강을 염려하는 건강한 사람의 건강 걱정은 그들의 문안 인사이다. 그 사람들은 소름 끼치게 건강하다. 바로 이것이 나를 몸서리치게 한다.
이에 반해, 20대 여성의 '표심'에서 발견되는 것은 이들이 이렇게 투표할 수 있을 만큼의 체력이 아직까지 남아 있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러한 체력을 뒷받침해주었던-애초에 유지 가능해 보이지 않았던-건강해야 한다는 병든 건강함이 증상적으로 내보이는 여기저기 깨져있는 모습이다. '이다・아니다 질문'에 대해 '나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깨져있다. '이다・아니다 질문'에 '나다', '나만큼 나인 나이다', '나만큼은 내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나인 나이다'. '적어도 내가 바라 왔던 나는 아니지만 나다', '적어도 나는 내가 아는 내가 아니었다'를 찍어 던진 이 사람들은 이 범주에서 뽑혀 나온 가장 건강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표심은 이 범주에서 가장 건강한 사람마저 그렇게 건강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그 이유는 자못 간명하다.
모든 나머지 범주들이 이 범주에 의해 범주화되기를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이 범주와의 빛나는 대비만큼 그들을 드러내 주는 방법이 또한 없기 때문이다. 모든 나머지 범주들은 그들 스스로를 범주화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아직 범주 자체에도 도달하지 못 한 미숙한 자들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혹은 나머지 모든 범주들은 이렇게 고유한 미숙함을 고유하게 만들 목적으로 고안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20대 여성은 나면서부터 미숙함과는 거리를 지닌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범주 외적인 범주를 이루고 있다. 바로 이것이 문제의 발단이다. 혹은 이 범주 외적인 범주가 나머지 모든 범주들을 재범주화하기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그의 이해에 미치지 못할 너무도 이른 해답이 문제의 발단이다.
내가 아는 20대 여성은 스스로를 계몽시킨 반계몽주의자이다. 그는 나면서부터 '여성으로서' 그 스스로를 계몽하였다. 계몽의 과정은 축복으로부터 벗어나는 과정이기에 고통의 연속이다. 나아가 어머니를 계몽하려고 시도하였고 때론 실패하고 때론 성공하기도 하며 아버지를 계몽시키려 노력할 수 있었고 대부분 실패하였으나 자신의 남동생을 계몽하는 것에서 일말의 보람과 동시에 반계몽주의적으로 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남동생에게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이며, 형들이 있었고, 무엇보다 그들에게 그들의 아버지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이 반대의 방향으로 이루어진다면 서술불가능한 추악함이 지면을 꿰뚫는다. 그는 여성으로서 '그 스스로를' 속여야 하며, 어머니는 딸을 속여야 하며, 아버지는 모두를 속이면서도 정작 본인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듯이 아들에게 말을 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도 내가 되어보면 알 것이라고. 범주 외적인 범주를 구성하는 현대의 의학권력마저 이들에게 전적으로 기대고 있다. 정신병원조차도 이들 없이 운영되지 않는다. 거의 모든 선택지 외의 대안들이 이들 없이는 대안으로써 서지 못 한다.
나는 희망이 아니라 끝을 본다. 대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