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을을 좋아하는 이유는 다섯 가지 오감이 부족함 없이 채워지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낙엽을 밟을 때마다 바스락 거림이 귀에 전해지고 신발을 신었음에도 바삭한 느낌이 전해져 온다. 발자국을 뗄 때마다 낙엽이 품던 가을의 냄새에 온 폐를 열어 숨을 쉬게 되고 눈을 들어보면 물감보다 더 생동감 넘치는 자연의 색깔에 그림 속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자! 이제 중요한 감각 하나, 미각을 채워주면 이 가을은 맘껏 내 것이 된다. 우리 가족은 어머니께서 심고 키운 고구마를 캐러 가을 속으로 뛰어든다. 나는 물론 옷소매 걷어붙이고 전투적으로 고구마를 캐지만, 내 팔뚝만 한 고구마보다 저기 넓적한 이파리 밑에 반쯤 가렸지만 노란 자태를 채 숨기지 못하고 내 눈에 띄어버린 늙은 호박에 온 신경이 쏠린다. 호박은 누가 가져갈래라는 어머니의 물음에 남편의 무겁다는 타박에도 이고 지고서라도 몇 통을 끌고 오는 내가 흐뭇하게 웃으며 호박을 어루만진다.
양 손도 모자라 카트에 몇 번을 실어 고구마와 늙은 호박을 무사히 집에 옮겨놓으니 다가올 겨울까지 먹을 간식은 다 준비된 셈이다. 그럼 이제 앞치마만 둘러매면 된다. 호박이 단단하니 칼이 들어박혀 빠지질 않는 걸 살살 달래 가며 반으로 쪼갠다. 숟가락으로 호박씨를 벅벅 긁어내며 말릴까 심을까 버릴까 몇 번을 고민하다가 이번엔 그냥 버리기로 하고 질긴 껍질을 쳐내듯 깎아내듯 발라내고 나니 한껏 부드러운 주황빛의 호박이 드러난다. 달큼한 냄새에 경직됐던 근육도 녹을 지경이다.
익혀서 식힌 호박을 밀가루에 넣어 치대다 보면 노란빛의 반죽이 매끄러워진다. 이제 이스트가 제 역할을 하도록 기다리는 동안 느긋하게 내 할 일 하면 된다. 그러다 반죽이 2배 이상 부풀면 반죽에 가득 들어찬 가스를 한 번 빼주고 3 덩이로 나눈다. 빵틀에 넣어 3개의 낮은 산을 만들고 또 한 번의 기다림을 참아내면 이제 뜨거운 오븐으로 넣을 차례다. 호박을 많이 넣으니 빵반죽에서 달콤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
20분 뒤면 가을의 색을 닮은 식빵이 완성된다. 낙엽의 색을 닮은 빵껍질 속에 노란 은행잎 같은 속살이 달달한 냄새를 풍기면 가을이 온 집안에 꽉 들어찬다. 학교에 다녀온 아이는 현관문을 열며 빵냄새가 문 밖까지 난다며 배고프다 아우성이고 퇴근한 남편은 저녁 식사를 하러 식탁에 앉기도 전에 빵 한 조각을 베어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