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낮의 더위가 못마땅했던 걸까? 지난주에 이어 이번주에도 가을은 비를 몰고 왔다. 밤새 제법 많은 비가 내렸고 여지없이 천일홍은 비를 잔뜩 머금고 쓰러져버렸다. 대부분의 꽃대가 가을비의 무게에 누워버린 것을 보니 한여름의 천일홍과 사뭇 달라 보였다. 여름의 기세 넘치는 더위에 우리 집 천일홍도 위용을 한껏 드러내며 보랏빛 얼굴을 자랑해 댔다. 내리쬐는 여름 햇볕쯤이야 천일홍에게는 전혀 거리낄 것 없었다. 오히려 쨍한 보랏빛의 천일홍이 만발하였다.
그 작고 동그란 얼굴이 얼마나 귀여운지 자세히 들여다보면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이 보랏빛 원형은 꽃이 아니라 여러 개의 '포'이고 '포'의 끝자락에 듬성듬성 별처럼 노랗게 박혀 있는 것이 '꽃'이다. 먼지만큼 작지만 '포'와 대비되는 색깔 때문에 눈에 콕콕 박힌다. 별 같은 노란 꽃이 지고 나면 꽃받침에 가까운 부분부터 갈색으로 변하기 시작하는데 씨앗을 만들어 가는 신호다. 다 여물어 갈색이 된 꽃을 털어보면 보송하고 하얀 털로 덮인 씨앗을 발견할 수 있다. 솜 옷을 입은 듯 꽁꽁 싸여 있어 하얀 털을 손톱으로 잡아 뜯고 나서야 참깨보다 작은 까만 씨앗이 나온다. 이듬해에 심고, 씨앗 나눔을 할 생각으로 씨앗을 받아둔다.
여전히 수많은 천일홍이 피어있고 가을 공기 속에서 씨앗이 단단히 여물어가는 천일홍도 있다. 비에 꺾인 꽃대를 잘라다가 꽃병에 꽂아두니 보라색 사탕처럼 귀엽다. 씨앗이 맺히기 전 한창 아름다움을 뽐내는 천일홍을 꺾어다 말리면 천일이 지나도 본연의 색을 잃지 않는 꽃, 천일이 지나도록 꽃색이 변하지 않아 천일홍이라 불린다는 꽃, 시들고 색이 변하는 다른 꽃들과 달리 곁에 오래 두고 볼 수 있는 꽃 천일홍, 그래서 꽃말이 변하지 않는 사랑인가 보다. 나도 내 가족들에게 변치 않는 사랑을 주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