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하게 되는 건 집이 없어서 혹은 갈 길이 없어서일까

Airbag - 타블로(feat.나얼)

by 김이름

외롭다고 느꼈던 시기가 있었다. 외롭기도 하고 우울함이 나를 덮쳐 그 속에서 좀처럼 헤어나오지 못하던 때였다.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었지만, 정작 사람 자체가 너무 싫었다. 그래서 나도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회사에서 어떻든 나를 무리에 끼워주려던 언니들의 손길을 나는 자꾸 거절했다. 약속이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마치 그 약속에 늦은 것처럼 허겁지겁 버스를 탔다. 그 버스가 마치 나를 어딘가로 데려가 줄 것처럼 믿으면서 말이다.


그 시기로부터 5-6년 전 싸이월드 일기장에 이런 글을 썼었다. '혼자인 게 편한거지 좋지는 않다'고. 하지만 그땐 단순한 문장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안에는 이미 답이 있었다.

편하다는 말 뒤에는 익숙하다가 붙는다. 익숙한 고요, 익숙한 외로움, 익숙한 방황. 그 익숙함이 어느새 나를 보호하는 막이 되어 나는 점점 아무것도 느끼지 않으려 했다. 그렇게 꽤 긴 시기를 보냈다.


그날 급하게 올라탄 버스는 결국 내 목적지에 도착했고 나는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향했다. 분명히 '갈 집'이 있는데 자꾸 방황을 했다. 하루가 저무는 시각, 이 세상 어딘가에 나를 기다려주는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묘한 공허함으로 다가왔다. 그때는 그 외로움의 정체를 자주 생각했다. 내가 퇴근하고 돌아왔을 때, 누군가 집에서 나를 반겨야만 하는 걸까? 그건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누군가 내 마음을 알아주면 좋겠다는 생각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때 문득, 나와 똑같은 또 다른 내가 있으면 좋겠다고 상상했다. 내 마음을 말로 풀지 않아도 얼마나 외롭고 얼마나 힘든지 그 사람은 다 알 수 있을테니 말이다.


그 시절은 내가 보낸 시간들 중 가장 깊은 어둠이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가장 위험한 때였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누구에게도 도와달란 말을 하지 못했다. 그때 내 플레이리스트에는 '춥다', '엘리베이터', '놓아줘' 같은 노래들이 가득했다. 그 노래들이 슬퍼서가 아니라, 내 기분을 가장 '정확히 말해주는 것' 같아서였다. 그저 누군가 내 마음을 대신 말해주는 노래가 있다는 게, 그 시절엔 유일한 위로였다.


이제는 이 노래가 잊혀진지 오래이다. 매년 겨울이 오면 '춥다' 정도는 듣지만 말이다. 그 시절 나는 세상에서 제일 조용한 사람처럼 살았지만, 이제는 그 시절의 나를 조금 멀리서 본다. 당시의 나는 참 많이 외로웠지만, 그래서 참 외로운 나 자신이 두 명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지만 이젠 많이 괜찮아진 상대적 어른인 내가 바라봐주고 위로해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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