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을 찾습니다.

잃어버린 한 문장에서 시작된 말의 여행

by 박호단


책상 앞에 앉은 나는 약간 충격을 받고 읽었던 문장을 다시 읽고 있었다. 막 훌륭하거나 중요한 문장은 아니었다. 소설의 배경은 18세기 언저리 유럽이었던 듯하고, 문장이 묘사한 인물은 사교계의 아주 잘나가는 어린 여성으로 사람들에게 둘러쌓여 있었다. 내가 꽂힌 문장은 그 여성이 사교적인 언어를 쓸 때, 상반되는 어휘를 적절히 섞어 사용한다는 것이었는데, 딱 거기까지만 기억나고 나머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 소설의 제목, 내가 그 책을 읽었던 연도, 그 상반된 어휘가 비속어와 고상한 어휘였는지, 유행어와 지적인 어휘였는지, 유행하는 비속어와 고상한 사교계의 어휘였는지, 그런 디테일이 머릿속에서 싹 사라진 것이다. 아마도 제인오스틴의 소설이지 않을까 싶어서 오만과 편견, 센스앤센서빌리티, 엠마 등등을 다 찾아봐도 그런 문장은 나오지 않았다. (잃어버린 문장 찾습니다, 혹시 아시는 분 제발 알려주세요 흑흑.)

새삼 놀랐던 것은 수세기 전 다른 대륙에도 유행어가 있었고, 유행어를 적절히 구사하는 것이 매력적인 인싸;;젊은이에게 요구되는 자질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랬다는 거 아닌가. 같이 춤추실래요? 전 왈츠에 진심인 편이라. 아름다운 그대 눈동자에 치얼스. 당신을 향한 내 영혼의 탕진잼.

2021년 한국 사람들의 페이스북을 구경하는걸좋아한다. 타 sns에 비해 좀 더 현학적이고 긴 글이 많이 올라온다. 물론 어떤 알고리즘에 의해 그런 글만 보게 된 걸수도 있지만. (그놈의 알고리즘은 한 때 내게 가슴이 엄청 커다란 인스타그래머들만 골라서 소개한 적도 있다.) 암튼 페이스북 스타들이 구사하는 언어는 기억나지 않는 그 소설 속 사교계의 여인을 소환한다. 흠터레스팅이나 있어빌리티같이 낯선 신조어와 자조적 유머를 적절히 섞으면서 그날의 뉴스가 한김 식기도 전에 뜸들이지않고 의견을 길게 보태는 말들, 가볍다고 흉보기에는 이미 수명이 짧을 것을 알고 그 자체를 즐기는 글들. 급하게 따라붙는 수백개의 좋아요와 댓글로 파생되는 유머들. 그렇게 이슈와 언어에 민감한 장을 구경하다보면 갓 수확한 단어들이 전시되는 새벽시장에 와있는 것 같은 생생함이 느껴진다.

이 모든 말들이 생명을 다하는 때는 언제일까. 허구한 날 누이의 젖가슴을 찾던 과거의 문학적 수사들은 한참 뭇매를 맞는 중이다. 성추문에 휩싸였던 고은의 시는 이제 더는 교과서에 실리지 않는다. 나는 비록 일기같은 글이지만 바로 윗문장에 새벽시장을 예로 들면서 “살아 펄떡거리는 단어들”이라는 표현을 썼다 고민이 되어 지웠다. 비건 지향 움직임이 커져가는 사회에서 괴로워 몸부림치는 어느 생물의 몸짓을 생기있다는 뜻의 형용사로 써도 되나 싶어서… 하지만 또 거대한 흐름에 비껴서있는 어떤 보잘 것 없는 말들은 언땅에 묻혀있던 잡초 씨앗처럼 생명력이 길다. 우리집 2010년대생들에게 만득이 시리즈를 이야기해주면 숨이 넘어간다. 최불암시리즈는 작년에 무려 모 게임 회사의 야심찬 티저 광고로 부활했다.

지구가 걱정했던 것보다 건재해서 수백 년 후 어느 후미진 서버에 담겨있던 지금의 말들을 누군가 발견한다면. 그 누군가의 “헐대박이건미쳤어”는 어떤 어휘일까? 코로나 땜에 여행 못가서 누워서 말로 시간여행해봄. 이건 정말 흠터레스팅. (이 단어 만들어진지 오래 됐다는데 처음 알아서 신기해서 남발해본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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