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써야해서

by 박호단



현숙씨가 1월에는 시를 쓰자고 했다
시를 써야하자 온 하루가 노래가 되었다

아이가 차를 끓여 나를 깨우는 소리
찻잔 앞에 앉은 엄마를 마주보고
칭찬 받고 싶지만 드러내고 싶진 않아
머쓱한 눈꼬리와 실룩한 입꼬리

뒤뚱뒤뚱 달리는 내 발자국 위로 사뿐 얹히는 빠른 노래
하얀 눈 위에 더 하얀 염화칼슘을 즈려밟는 안전한 느낌
눈썹과 털모자에 하얗게 알알이 맺히는 땀얼음
투명한 개구리밥처럼 떠있는 언 강의 흔적

나른한 오후 낮고 반듯한 볼륨의 네모아저씨 목소리
아이의 사락사락 색종이 접는 소리 반듯하려고 애쓰는 소리
해 떠있을 때 누우면 가족 모두 엄벌에 처하겠다고
큰 목소리로 계엄령을 선포해놓고
내가 눕고 싶어 못견디겠는 나의 부끄러운 졸음

씻은 냄비 위에 자글자글 잠긴 쌀과 보리와 검은콩
시린 손으로 굳이, 흐르는 찬물에 씻어보는
겨울 시금치의 유난히 분홍빛인 뿌리
여덟개의 숟가락 젓가락이 달그락거리는 소리
식사 후 둘러앉은 네 사람의 마음을 졸이게 만드는
작은 플라스틱 게임칩이 와글와글 겹치는 소리

그리고 모두 잠든 후에
시를 써야하는데 시를 써야하는데
못쓰고 까무룩 잠든 밤 꾼 꿈에서
글자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었다
문장들이 추는 춤을 보았다

온 하루가 노래여도 나는 가무에 약하다구
춤과 노래에 시달려 뒤숭숭하게 일어난 아침에
그러니까 시를 써야해서 시를 읽기 시작한지
열 이레 째 되는 날 아침에
어느 시인의 부고를 들었다
부고로 알게 된 시인의 시를 읽었다
시는 마냥 노래가 아니구나
그의 시어가 아무 노래도 아무 소리도 아닌채
함박눈처럼 무겁게 내렸다


* 최정례 시인의 부고를 듣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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