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읽고
1997년 전후로 삐삐롱스타킹이라는 밴드가 있었다. 좋게 말하면 파격적인 행보를 거치다가 방송사로부터 영구출연정지를 당하고 잊혀져갔다. 그런데 작년에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그 밴드의 보컬이었던 고구마 - 권병준씨의 행보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그는 여전히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다양한 프로젝트 중 하나로 이주 노동자와 그 자녀들의 노래를 채록하는 일을 진행 중이었다. 공연 후에 한 관객이 이주 노동자와 이주 아동에게 특별히 관심을 두는 이유를 묻자 그가 “결국 희망은 그들에게서 나올 거라 생각해요.” 라고 대답했다는 글을 읽었다. 나는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그 대답이 어쩐히 잊혀지지 않아 마음에 담아두고 지냈다. 결국 / 희망은 / 그들에게서.
은유 작가의 <있지만 없는 아이들>을 읽고나자 그 대답이 보다 선명하고 입체적으로 살아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한쪽의 필요로만 유지되는 관계는 없다
제주도에서 예멘 난민 문제가 크게 불거졌던 2018년, 사람들은 온갖 상상력을 동원해서 그들을 두려워하고 힐난했다. 받아주면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슬람 성서를 뒤져가며 범죄의 증거를 확인이라도 한 듯이 들이댔다. 사춘기 전 여자아이를 강간하면 네 것이 될 수 있다거나 노예와 아내를 때리라거나 하는 경전의 구절은 내가 보기에도 치가 떨렸다. 그러나 십수세기 전 경전에 쓰인 몇몇 문구가 21세기 해당 종교인의 과오를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 있나? 후대의 기준으로 용납할 수 없는 내용이 담겨있는 것은 성경이나 불경도 마찬가지 아닌가. 나는 사람들의 혐오에 오싹했지만, 스스로도 대답할 수 없는 지점 또한 있었다. 자국인 문제도 해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굳이 외국인에게 특별히 인도적일 이유가 뭐냐, 실업률이 이렇게 높은데 외국인들에게 취업시장을 개방하면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다 죽으란 얘기냐.
질문에 이 책은 명쾌한 대답을 내놓았다. “한쪽의 필요로만 유지되는 관계는 없다.” 는 작가의 말로 시작되는 해답은, 1990년대 초 소위 3D 업종에 노동력의 공백이 발생하면서 정부에서 이주노동자 유입을 적극적으로 장려했고, 지금에 이르렀다는 현실을 정확히 짚어준다. 이주인권활동가 석원정씨의 “이주노동자가 늘어나는 건 한국 경제가 그만큼 그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에요.”라는 말씀도 마음 속에 담아둔다. 실업률이 높은 한편 여전히 일손이 부족한 산업계에 기꺼이 노동력을 제공해주는 이들에게, 우리는 빚을 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너네 나라로 꺼지라는 말은 세상 배은망덕한 말.
태어난 게 죄는 아니잖아요.
태어난게 죄는 아니잖아요. 누가 불법, 합법 따지고 태어나나요. 라는 아이들의 말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백 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백 개의 인생을 사는게 맞는데, 원하는 인생을 쇼핑하듯 고를 수 있는 사람은 당연히 없겠지만, “미등록”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사는 아이들이 생각지도 못한 불이익을 당하는 것, 자신의 삶을 선택한대로 이끌어갈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웠다. 크게는 진학과 취업에서부터 좋아하는 아이돌의 팬미팅에 갈 수 없는 일, 음식을 사먹고 친구들과 계좌이체로 더치페이를 할 수 없는 일처럼 소소한 순간순간에 절망을 느끼는 삶이 어떤지 겪어보지 않고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이탁건 변호사의 일화는 이 지점을 좀 더 골똘히 생각하게 했다. 그저 호감으로 뽑은 인턴 열 명이 모두 가정 이나 학벌 면에서 좋은 조건의 아이들이었다는 고백, 난민반대운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일용직 종사자들이 많았다는 이야기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일까. 다른 이들의 인권을 생각하고 배려하는 정의로움조차 여유있는 조건에서 더 쉽게 허락될 수 있다는 걸 드러내는 것 같아 착잡했다. 내가 겪어보지 않은 삶을 사는 사람. 죄없는 사람을 쉽게 죄인취급하며 몰아넣을 것이 아니라 그저 다른 사람, 같은 시민으로 대해야한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다.
결국 희망은 그들에게서 온다.
지인이 추천해준 성장소설 <몬스터콜스>에서 주인공 소년은 슬픔과 억울함을 꾹꾹 억눌러오다가, 자신을 투명인간 취급하는 친구 앞에서 결국 폭발해버리고 만다. 내 모습을 돌아보게 된다. 이주노동자 고용 고발 기사 속의 행태나 모르는 댓글부대의 인식에는 쉽게 화를 내면서, 돌아앉으면 그들의 존재를 깡그리 잊어버린 나도 투명인간 만들기에 동참했다는 점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 프롤로그에서 작가가 “그러면 나는 무얼 해야 하지?”라고 적었던 고민, 이주민 인화님이 “인터넷, SNS 많이 발달했으니까 우리 이야기가 많이 읽히게 잘 써줘요.”라고 해줬던 대답을 함께 떠올려 보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게 된다.
죄없이 태어나서 죄인으로 자란 아이들이 억울한 누명을 벗을 때, 그들이 누명을 벗고 자신의 인생에 보다 많은 선택권을 가질 수 있도록 사회가 크고 작은 차양으로 비바람을 막아줄 때 기존 사회와 이주민 모두에게 성장의 희망이 보이리라는 이해를 해본다.
p12 태어난 건 죄가 없는데 왜 차별당하고 고통받고 꿈도 못 이루고 살아야 하는지 솔직히 이해가 잘 안돼요.
p30 우리 사회가 이주노동자를 필요로 했기 때문에 이주노동자도 한국에 살 수 있었다라는 말에 나는 머릿속에 전구가 켜지는 기분이었다. 맞는 말이다. 한쪽의 필요로만 유지되는 관계는 없다.
p33 세상 어딘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기록한 건 좋은 일도 아니고 나쁜 일도 아니며 그냥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p56 게다가 감사편지라도 쓰게 시킬 줄 알았는데, 수술 후 사진 한 장만 찍고 말더라고요.
p82 그럼 왜 당신은 한국에 살고 계시나요? 똑같아요. 저는 이곳에서 태어나 자랐어요. 그러니까 여기에 사는거죠.
p95 난민과 이주민에 대한 불만이 혐오인 건 맞아요. 그러나 그분들을 혐오세력으로 단순하게 치부하는 것은 난민과 이주민을 위해서도 도움이 안돼요. (..) 그런데 그건 막연한 공포거든요. 불법체류자라는 용어나 그걸 둘러싼 담론이 고정관념 형성에 큰 역할을 해요. (...) 존재자체가 불법이니까 또다른 불법도 저지를 수 있다고 생각하죠.
p116 내가 너를 돕지 않고 그래서 네가 이란에 돌아갔는데 혹시라도 무슨 일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면 평생 지우지 못할 죄책감이 들 것 같아.
p133 얘는 태도가 왜이래? 앞으로 나를 못보는데 어떻게 저렇게 아무 감정 없이 있지? 어떻게 애가 갑자기 없어져? 왜 이런 일이 벌어지지?
p139 아주 불쌍하다는 듯이 시혜적으로 접근하거나 아니면 배척하거나, 둘 중 하나예요.
p211 너희의 입학자격은 호소하고 울어서 받는 게 아니라 너희들의 권리야, 공부할 권리라고. 이렇게 말하고 또 울면서 나와요. 그러니까 이런 앞뒤가 안맞는, 이성과 정서가 도저히 합을 이루지 못하는 상황들을 같이 겪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