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아름답고 슬픈 소설 <긴긴밤>을 읽고
아이들은 어린 자신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숨기지 않는 엄마를 신기해한다. 너네도 슬플 때 많이 울렴 하고 권해보지만 눈물이 권한다고 나오면 그것도 우스운 일이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은 읽고나서 슬프긴 하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던 책을 나에게 가져다 놓고 옆에서 관찰하곤 한다.
몇 페이지 읽어? 그 사건 나왔어? 어 코가 좀 빨개진 것 같은데. 슬프지? 슬프지?
프로레슬링이라도 관람하는 듯이 옆에서 추임새를 넣는 통에 감정이입이 안된다. 엄마를 100% 울릴 책이라며 <긴긴밤>을 추천했을 때도 그랬다. 지난 봄에 책 소개 팟캐스트에서 줄거리를 다 들어버린 터라 출발비디오여행을 미리 본 것처럼 김이 새기도 했거니와, 네가 우는 모습을 구경하겠다고 벼르는 악동들이 앞에 있으니 몰입이 어려웠다.
오글살롱의 이 달의 책으로 선정된 덕분에 <긴긴밤>을 다시 집어들었다. 리뷰를 쓰려는데 뭔가 막막해서 제 방에서 놀고 있는 아이를 호출해서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다. 노든의 복수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너라면 처음 만난 바다 앞에서 어떤 느낌이었을까? 어떤 말이 인상적이었어? 묻는 나도 바보같은 질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는 귀찮은 듯이 모르겠다고 몇 마디를 내뱉고 휙 도망갔는데, 잠시 후에 다시 방문을 열었다.
엄마, 더 말하고 싶어요.
좁은 방에 문을 닫고 들어와 책상과 ㄱ자로 맞물려 놓여있는 피아노 의자에 걸터앉아, 아이는 느릿느릿 줄거리를 말하기 시작했다.
(줄거리에 대한 스포가 있습니다)
노든은 코뿔소의 몸을 가진 코끼리라고 생각했어요 자기를. 노든이 자라가주구 코끼리 고아원을 떠나야 했잖아요. 그 때 “넌 훌륭한 코끼리가 됐으니 이제 훌륭한 코뿔소가 되는 일만 남았네.” 이렇게 고아원에서 코끼리들이 말해줬어요.
코끼리 사회는 할머니가 대가족을 이끄는 전형적인 모계 사회다. 현명한 할머니들은 다름을 배척하거나 금기시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돌봐주었다. 노든은 성숙한 그들과 함께 생활한 유년기로부터 낯선 땅으로 나설 용기와 자존감을 자산으로 얻었을 것이다.
그래가주구 떠나가주구 가족을 찾았어요. 노든이 아이를 낳았는데 맨날 밤에 보름달 떴을 때 진흙탕에서 같이 뒹굴며 하늘을 바라봤대요.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이 총을 쏴서 아내랑 자식이 죽었어요. 그래가주구 복수심을 안고 도망쳤어요. 그랬는데 막 동물원에 갇혔는데 앙가부라는 코뿔소를 만났어요, 갇힌 우리에서.
아주 오래 전에 읽은 인터뷰에서 누군가가 세상의 모든 소리는 사라지지 않고 공기 중 어딘가에 저장되어 떠돌고 있을 거라고 말했다. 어쩐지 그럴 듯 했다. 나는 형체없이 떠도는 소리와 마음들에 대해 생각한다. 인간에게 보금자리를 뺏기고 상처받은 생명들의 슬픔과 복수심이 지구의 공기를 무겁게 한다. 아이가 복수심이라는 단어를 발음할 때, 나는 내가 노든 아내의 뿔이라도 갈아마신 사람인 것처럼 부끄럽고 미안했다.
그래서 걔네 둘이 같이 작전을 짰어요. 철창을 물어뜯자고...그래서 때가 되면 탈출하려는데 앙가부가 죽어있었어…. 뿔이 짤린 채로. 뿔사냥꾼들이 코뿔소 뿔 좀 얻겠다고 불쌍한지도 모른 채 죽여서 짤라서…
나는 애기 펭귄을 바라보는 어른 코뿔소의 심정이 되어 아이의 이야기를 듣는다. 야생동물의 몸값이 비싼 걸 아니까 살생을 저지르는거야. 내 눈 앞의 이치에 너무 밝아서 다른 존재의 희생에는 눈을 감는거지. 라고 말하는 내 앞에서 아이는, 알아서가 아니라 몰라서 그러는 거에요. 불쌍한 줄 안다면 그러지 않았을텐데. 라고 말한다. 어른들은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일컫는 어휘, 그 마음을 중요시하는 종교와 교육에 대해 훨씬 더 많은 경험이 있는데도, 아이들보다 불쌍한 마음을 모른다.
그랬는데, 갑자기 전쟁이 났어요. 철창이 뿌서졌는데 앙가부가 죽었으니까 소용이 없잖아요. 앙가부가 제일 나가고 싶어했고 노든보다도 오래있었잖아요. 그리고 동물원에 치쿠랑 윔보라는 펭귄이 있었는데 둘이 절친이었어요. 그랬는데 치쿠랑 윔보 중에 한 마리가 죽었어요. 같이 버려진 알을 품고 있었는데 혼자 품게 되었어요. 그래서 남은 애 치쿠가 노든이랑 같이 떠났거든요. 그랬는데 치쿠도 어느날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불렀는데도 이렇게 가만히 있어요. 숨을 안쉬어요. 죽었어요. 아니 왜 이렇게 많이 죽어?
그러니까. 내말이. 아니 이 얇은 책에서, 벌써 비극이 몇 번째야. 기승전결도 모르나? 그만큼 고통 줬으면 됐지. 반이 넘어가도록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화자는 아직 태어나지도 않고 모두 죽어나가기만 하고 있어. 문득 며칠 전의 일이 생각난다. 2040년 이전에 지구의 기온이 더 상승할 것이라는 예측은 기정사실화되었고, 이 현상은 빼박 인간 때문이라는 기사를 보고 무려 조리원 동기들과 한숨을 쉬며 카톡으로 수다를 떨었다. 망할 지구에서 애는 왜 낳아가지고. 비극이 일어나는 간격은 짧아지고 빈도는 늘어나고 있는 지구에, 태어난지 8년 된 아이는 말을 멈추지 않고 또 다른 태어남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했다.
그래가주구 노든 혼자 알을 품고 있었는데 부화했어요. 빠드득빠드득 알을 깨고 나왔는데 며칠 뒤 자랐어요. 좀 자랐는데 비가 와서 노든이 고개를 숙여가주구 펭귄을 털이 안젖게 해준 장면이 기억나요. 노든이 펭귄한테 수영을... 잠수 있자나요 잠수. 잠수를 가르쳐 줬어요. “코뿔소” 노든이 “펭귄”한테.
얼마 전에 다른 글쓰기 모임에서 백수린의 <친애하고, 친애하는>을 함께 읽었다. 할머니와 엄마와 딸의 서사를 읽고 누군가가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를 떠올리는 글을 썼다. 그러자 또 다른 누군가가 작품의 해설을 인용했다. “모녀 관계에서 일방적인 돌봄이란 있을 수 없다. 형태는 다를지언정 그들 사이의 돌봄은 언제나 쌍방향적이다.” 나는 소설 안팎의 여러 연대를 생각한다. 어린 펭귄은 노든의 복수심을 잠재워줬고, 노든은 해본 적 없는 수영을 펭귄에게 가르쳐줬다. 함께 읽는 사람들은 나에게 새로운 방향을 돌아보게 해주고, 아이는 목소리만으로도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준다. 서로가 서로를 돌보고 있다는 깨달음에 포근해진다.
이제 넌 나를 떠나야할 때가 올거야. 그래가주구 아무것도 모르는 펭귄이 떠남을 가볍게 생각하고 말했어요. 그런데 노든이 이제 죽어가요. 노든은 마지막 흰뿔코뿔소(흰바위코뿔소지만..^^)였어요. 거의 죽어가는데 어떤 트럭이 하나 와가지구 노든을 치료해주려고 하는데 펭귄이 똥을 뿌리고 도망갔어요. 큭큭.
이 와중에도 똥이 웃긴 아이.
이제 넌 날 떠날 때가 됐어 이랬어요. 노든은 거의 죽어가는데 트럭이 와서 치료해주고 펭귄 혼자 절벽을 오르는데 많이 떨어지고 그랬어요. 간신히 올라갔는데 바다가 있었어요. 그리고 다른 펭귄들이 전진하고 있었거든요. 그 사이에 펭귄이 끼어가지구 맨 마지막에 뒤를 보며 웃었어요. 독자를 바라보고. 아니 울고 있었나? 웃으면서 울고 있는건가? 노든한테 저 잘 살고 있어요~ 라고 말하는건가?
응? 나랑 기억하는 엔딩이 다른데? 언제 펭귄이 무리를 만났어? 바다를 만났을 뿐인데?
아이는 책을 찾아와서 맨 뒷장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림이 있었다. 무리지은 펭귄들의 뒷모습이 보이는 가운데, 한 펭귄이 뒤를 돌아보고 있었다. 세모난 펭귄의 부리는 웃는 것처럼 보이고, 눈 주변은 울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이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펭귄의 눈과 부리를 보는데 눈물이 왈칵 불거져 나왔다. 안도감과 두려움과 그리움이 함께 밀려왔다.
엄마 괜찮아요, 괜찮아요. 울지 말고, 끝이라고 쓰고요, 그 다음에 동윤 앤 호단이라고 적으세요.
끝
동윤 & 호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