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초여름 샐러드 레시피

by 박호단

집에서 나와 고개 하나를 넘으면 한보따리 야채천냥이라는 채소가게가 있다. 여름 초입이라 종류가 다양하다. 깍지 째 파는 완두콩, 꽃이 달린 아욱, 옥수수, 대저토마토, 천도복숭아, 아스파라거스, 호박, 가지를 장바구니 가득 담아도 크게 부담스러운 가격이 아니다. 고개를 걸어서 넘어온데다가, 스티로폼 받침대나 투명 플라스틱케이스, 하다못해 철끈같은 포장재도 없이 맨 몸인 채소를 바구니에 담으니 괜히 홀가분하면서도 뿌듯하다.


이고지고 온 채소를 온 가족이 다듬는다. 아이는 서툴러서 콩깍지에 흠집을 크게 내지만, 덕분에 풋풋한 풀냄새가 식탁 가득 차고 아이의 손톱 끝이 금세 초록색으로 물든다. 커다란 스텐밧드에 콩이 토도독 떨어지는 소리가 경쾌했다가 콩이 쌓이면서 곧 둔탁해진다. 깍지 까기가 재미있어 죽겠다던 아이들의 웃음 소리도 몇 분 되지 않는 사이에 줄어든다. 엄마 그만하면 안돼? 어 안돼. 다 까라. 다른 상냥한 대꾸는 할 줄을 모르겠다. 그저 짧고 단호한 내 대답이 떨어지는 콩의 리듬에 어울린 것 같아 마음에 든다.


샛노란 초당옥수수는 껍질을 한 겹만 남겨놓고 까고, 수염을 뽑아낸다. 생각보다 긴 수염이, 생각보다 쑥 쉽게 뽑히는 것에 작은 쾌감을 느끼다가 실키한 감촉에 또 놀란다. 윤기가 차르르 흐르는 이 수염을 모아다가 스카프를 짓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울까 상상해본다. 아마 수분이 다 빠져버린 완성품보다는 그걸 짓는 과정이 더 아름답겠지. 내 공상은 매미가 덜 시끄럽게 우는 어느 가상의 산골 작업실에 가닿는다. 누군가 투박하고 편안한 나무의자에 앉아 풋내가 가시지 않은 옥수수수염실로 스카프를 뜨는 퍼포먼스를 전시하면 멋질텐데. 작년 초당옥수수 시즌에도 이런 공상을 하며 예쁜 수염 아깝다고 비좁은 냉동실에 넣어놨다가 결국 올봄에 버린 것이 기억나 정신을 차린다. 아까처럼 단호하게 예쁜 옥수수 껍질과 수염을 싹 쓸어모아 버린다.


아이들을 위해서는 옥수수알갱이와 완두콩을 섞어 솥밥을 짓는다. 아이들에게 잘 어울리는 행복한 여름의 색깔이다. 어른 메뉴로는 뜨겁게 달군 팬에 기름을 두르고 아스파라거스를 태울 듯이 굽다가 호박과 가지를 넣어 살캉하게 볶는다. 접시에 옮겨 담은 다음 조각낸 토마토와 고수를 뚝뚝 끊어넣고 씨겨자를 군데군데 떨어뜨려 차린다. 냉동실에 두 시간 식혀놨던 저렴한 까바를 따서 잔에 콸콸 붓고, 요리하느라 배부분이 우습게 젖고 땀내도 나는 티셔츠를 입은 채로 식탁에 앉는다.


야채천냥 가게에서 담아온 초여름이 모두에게 달다. 다른 대륙에서 온 포도와 탄산의 맛도 시원하고 달게 어우러진다. 달큰한 냄새와 맛에 취해 행복해진 바람에 스스로에게도 후해진다. 차가운 와인이 목을 넘어갈 때에는 너무 후해진 나머지 내가 커다란 물관을 가진 멋진 고목 같다고 생각했다. 두꺼운 팔뚝을 지나 손끝 모세혈관까지 청량한 기운이 전달되는 기분이 들었다. 내 혈관은 그간 우겨넣은 고기기름이 메우고 있을 것이고 혈중 알콩농도는 청량감과 상관이 없겠지만, 어차피 행복은 편집이니까.


40년이 넘게 서서히 굵어진 나무 기둥 안에는 나름의 아카이브가 나이테 모양으로 자리잡았다. 씨겨자가 적당히 묻어 시큼하고 고소한 애호박을 씹으면서 행복이라는 키워드로 기억 검색에 들어간다. 여러 장면들이 불려나온다. 대개 “행복은 별 거 아니다” “가까이에 있다” 같은 뻔한 문장에 어울릴법한 장면들이나, 그렇게 흔한 말로 퉁치기에는 또 너무 선명한 색감을 가지고 있다. 이왕의 편집인 김에 잘 버무려서 행복에 이르는 방법이나 깨달음을 도출해보고 싶기도 하지만, 그러기엔 또 지혜와 성찰이 턱없이 부족하다. 내 행복의 편집권이 나에게 있는 걸로 만족하기로 한다.


그래서 내 행복은 여기까지.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완두콩옥수수솥밥, 호박가지샐러드. 스파클링와인.

먹는 데에 진심, 초여름에 특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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