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한 특별한 일본살이
국제어린이도서관(国際子ども図書館)
도쿄의 문화시설 밀집지역인 우에노 온시 공원(上野恩賜公園) 안에는 “어린이 책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며 미래를 열어간다”는 비전을 가지고, ‘아동서 전문도서관’, ‘어린이와 책의 만남의 장소’, ‘어린이 책 뮤지엄’이라는 세 가지 미션을 실행하고 있는 <국제어린이도서관(国際子ども図書館)>이 있다. 이 모든 것이 112년 전에 지어진 건축물 안에서 구현되고 있다하니 안 가볼 수가 없다. 일본 최초의 국립 아동서 전문 도서관을 향해 해인과 함께 길을 나섰다.
우에노 역에서 나오자마자 우선 마주치는 건물이 있었는데 도쿄문화회관(東京文化会館)이었다. 그 오른쪽에 관광객들로 붐비는 길을 걷다보니 국립서양미술관(国立西洋美術館)이 나타났다. 걷던 길로 계속 가면 우에노동물원(上野動物園)이지만 해인에겐 얘기 하지 않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저만치 앞에 도쿄국립박물관(東京国立博物館)과 주변 숲의 풍경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계속 걸었다. 분수대를 지나 왼쪽 숲길로 들어서니 왼편으로 도쿄도미술관(東京都美術館)이 나타났다. 고개는 반쯤 돌아간 상태로 사거리까지 걷다보니, 이건 또 뭐야 싶은 오래된 빨간 벽돌 건물의 구로다기념관(黒田記念館)이 보였다. 맘껏 누리고픈 온시 공원과 발길을 잡는 문화 명소를 겨우 겨우 지나 드디어 백 년을 넘긴 역사적인 건축물 앞에 섰다. 중간에 새지 않고 잘 왔다는 듯 우아한 자태였다. 이 르네상스식 건물이 어린이 도서관이라니!
이 클래식한 도서관을 들어가기 위해선 모던한 유리상자 같은 구조물을 통과해야 했다. 일본 건축의 대가 안도 타다오(あんどうただお, 1941~)의 손길이 닿은 것이다. 도서관의 첫인상은 중후하고 차분했다. 그 분위기를 해인도 느꼈는지 목소리와 몸놀림이 작아졌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건 1층부터 3층까지 뚫린 계단이다. 그 끝에 100세가 넘은 샹들리에가 과거에서 현대까지를 영롱하게 조명하고 있었다. 해인이 몹시 흥미로워 했다 나무창틀이나 벽돌이나 청동과 몰딩이 100년 전의 것 것도 놀라운데 샹들리에까지! 복원과 관리에 대한 일본인들의 강한 의지를 알게 하는 산물이다. 이러한 풍경이 어린이도서관 답지 않다고 할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이곳을 드나드는 아이들에게 역사적 가치를 어떻게 보존하고 가꾸는지 알게 하는 교육장이구나 싶어 한편 부러웠다.
1층에는 그림책을 비롯한 여러 모임을 위한 ‘이야기방’과 140여국 나라와 지역에서 발간된 아동서들을 볼 수 있는 ‘세계로 열린 방’, 책은 물론 아이들을 위한 소규모 놀이방까지 갖춘 ‘어린이방’이 있다. 특히 어린이방의 경우는 천정 전체가 조명으로 설계되어 있어서 그림자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세계로 열린 방에 한국 그림책들이 있는 것은 당연한데도 막상 실체를 보니 기쁨이 컸다. 복도 끝으로는 어린이도서관답게 모유 수유실, 기저귀를 갈 수 있는 아기 침대뿐만 아니라 분유를 탈 수 있는 뜨거운 물도 항시 준비되어 있었다.
2층에는 우아한 아치형 복도 양끝으로 주로 중고생들의 자료조사에 도움이 되는 책들이 비치된 ‘청소년연구실’과 메이지(明治)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일본 어린이책의 흐름을 전시를 하고 있는 ‘아동서갤러리’가 있다. 갤러리 안쪽에는 서고와 책을 운반하기 위해 메이지시대에 만들었다는 엘리베이터가 있어 흥미로웠다. 이뿐 아니라 아동서갤러리에는 눈길을 끄는 요소가 많았다. 밤갈색 서가와 높은 층고를 따라 기둥 끝과 천정의 르네상스식 문양 그리고 이슬처럼 매달린 조명이었는데, 이 모든 것이 어루러져 갤러리가 더욱 귀족스럽게 느껴졌다. 그 공간에서 해인과 난 16세기 서유럽 어느 왕족의 모자가 된 기분이랄까. 이런 느낌으로 서가를 돌며 일본 최초의 그림책부터 신간까지 볼 수 있었으니 어찌 특별하지 않을 수 있을까.
3층에 올라가면 또 어떤 것들이 우리를 놀라게 할까? 한껏 기대감을 가지고 계단을 오르는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을 보자 저절로 탄성이 나왔다. 높은 층고에 한쪽은 원래 도서관 건물의 벽돌벽이고 중앙에는 넓게 확장된 마루바닥, 다른 한쪽은 전면이 유리벽으로 신축된 라운지다. 유리벽 쪽으로는 벤치가 마련되어 창 너머로 펼쳐지는 도쿄국립박물관 일대 풍경을 감상하며 책을 읽을 수 있게 했다. 안도 타다오의 손길은 이곳에도 미쳤다. ‘뮤지엄’이라 명명된 곳을 들어가 보았다. 2층의 아동서갤러리를 보다 호화롭게 확장해 놓은 것 같아 입을 담을 수 없었다. 이곳은 주로 전시가 있을 때만 열리는 공간으로 우리가 갔을 때는 <그림책을 통한 세상(세계 사서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전시회가 열렸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한국의 그림책들을 만나니 무척 반가왔다. 아쉽게도 사진 촬영이 금지 되어서 전시장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다. 대신 전시된 책들을 공책에 부지런히 적었다. 한국그림책으로는 <파도야 놀자>, <엄마 마중>, <설빔, 여자아이 고운 옷>, <십장생을 찾아서>, <마음의 집>, <감기 걸린 날>, <노란 우산>, <만희네 집>, <아씨방 일곱동무>, <팥죽 할머니와 호랑이>가 전시되었다.
3층 벽돌관 '홀'은 도서관의 역사를 소개하는 전시 뿐 아니라 음악회 등의 이벤트를 개최하는 곳이다. 아치관에는 ‘아동서연구자료실’과 ‘연수실’이 위치했다. 아동서연구자료실에는 방대한 양의 어린이 책을 보관하고 있다고 해서 찾았는데 18세 이상만 출입을 허락하고 있어서 해인과 나는 내부를 볼 수 없었다.
메이지, 쇼와, 헤이세이라는 시간을 거쳐온 건물과 이를 지키고 미래까지 이어가려는 정신을 온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곳. 그곳에 40만 여권의 어린이 도서가 소장되어 있고, 65만 권의 책을 보존할 수 있는 서고가 있다. 또한 “어린이 책을 통해 세계와 소통하며 미래를 열어간다”는 비전을 실현하고 있으니, 한 아이의 엄마로서 어린이 책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국제어린이도서관은 부럽고 고맙고 행복한 곳이다. 아이와 함께 우에노의 추억이 보다 특별해지려면 국제어린이도서관을 빼놓지 않았으면 한다.
덧) 국제어린이도서관 안에는 우리나라 돈으로 7천원 가량의 식사가 가능한 곳이었다. 도서관의 정취를 느끼며 식사와 차를 즐기는 경험이 특별하다. 아이를 데리고 식사하기에 가격도 저렴하거나와 이만큼 아름답고 여유로운 공간도 드물지 싶어 점심 식사 장소로 적극 추천한다. 단, 점심식사 시간을 조금 지나면 메인 메뉴를 먹기 어렵다.
찾아가는 곳: 110-0007 다이토구 우에노 공원 12-49
개관시간: 9:30~17:00 (정기휴일 월요일, 공휴일, 연말연시, 셋째 주 수요일)
참고: 홈페이지 URL:http://www.kodomo.go.jp/english/
국제어린이도서관 → 국립서양미술관 → 우에노동물원 → 우에노국립과학박물관 → 우에노 공원
*우에노 문화시설들은 모두 5시에 종료한다. 이 점을 고려해 일정을 계획해야 한다.
*우에노에는 길거리 음식들이 많다. 벚꽃 시즌에는 다양한 먹거리 축제도 많이 열린다. 이곳을 돌며 저녁을 먹어도 좋은데 대부분 5시면 문을 닫는다. 이럴때 추천하고 싶은 곳이 바로 ‘파크사이드까페(Park Side Cafe)’이다. 아이들과 식사하기 좋은 널찍한 야외 테라스에서 우에노 공원을 바라보며 식사하는 것도 추억거리일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