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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그림책여행]에혼야 루스반 반스루 카이샤

아이와 함께 한 특별한 일본살이

by 연화향

에혼야 루스반 반스루 카이샤

(えほんやるすばんばんするかいしゃ)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의 끝자락. 버틴다고 해야 맞을 것 같은 날들이었다. 일반적으로는 도쿄가 서울보다 더운데, 2017년은 한국에 연일 폭염이 계속되면서 서울이 더 덥다고 했다. 그 뉴스를 접할 때마다 한국의 가족들이 걱정도 되었지만, 어려운 타국살이를 하는 우리에게 그나마 위로가 되었다. 그렇게 무더위를 지나던 어느 날인가, 남편이 마츠리를 보러 가자고 했다. 매년 8월의 마지막 토요일과 일요일에 고엔지 마츠리 아와오도리(高円寺阿波踊り)가 열리는데 도쿄에선 꽤 유명한 축제라며. 집 밖을 나가면 곧 찜통인데 길거리 축제라니 처음엔 엄두가 나질 않았다. 하지만 고엔지엔 그림책 전문 고서점이 있다. 에혼야 루스반 반스루 카이샤(이하: 에혼야)라는 읽기도 발음하기도 어려운 헌책방이다. 그래, 이참에 에혼야도 마츠리도 함께 즐겨 보는 거다. 그렇게 고엔지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아와오도리가 열리는 이틀간 고엔지역(高圓寺驛) 일대는 물건을 팔거나 홍보를 하려는 상인들과 행사 참가인원, 관광객들로 성시를 이룬다. 그야말로 축제 한마당이다. 실재 행사는 한낮의 더위를 피해 5시부터 시작하기에 그때까지 고엔지의 풍경을 즐기면 되었다. 우리는 JR 고엔지역 남쪽 출구에서 나와 에혼야에 닿을 수 있는 파루상점거리(パル商店街)를 택했다. 낡고 오래된 것들이 가게 혹은 집 주인의 개성과 어우러져 특유의 아름다움과 멋스러움으로 눈길을 끌고 있었다. 호기심 가득한 발걸음은 가게 안을 들여다보기도 하고 길거리 음식을 사먹기도 하다가 에혼야에 멈추었다. “엄마! 여기 엄청 오래되었다!”


에혼야의 첫인상은 일부러 손대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낡음이었다. 1960년대에 출판된 후로 누군가의 손에 들렸다가 어느 책방에 꽂혔다가 절판된 그림책 같은 모습이랄까. 수없이 폈다 접었다 해서 벗겨지고 헐거워진 제본 같은 계단을 가파르게 올라가니 이런 곳도 책방이 될 수 있구나 싶을 만큼 의외의 공간이 나왔다. 마녀 배달부 키키의 다락방 같은 곳이었다. 표지 진열된 그림책들을 열어 보았는데, 대부분 1950~1970년대 일본 그림책만이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 그림책들이었다. 오래되었지만 그림이며 인쇄가 클래식하고 유니크(unique)하면서 품격 있어 보였다. 이런 그림책들은 어디서 구한 걸까? 어떻게 이런 책방이 존재할 수 있는 걸까? 대체 책방 이름은 왜 이리 긴 것일까? 책방 주인인 것 같은데 도무지 인기척이 없는 그에게 다가갔다. 에혼야의 주인이라면 나이가 지긋한 분인줄 알았는데 어라 청년이었다. 일본어로도 영어로도 의사소통이 어렵자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했고, 잠시 후 어여쁜 여인이 나타났다. 젊은 그들은 부부였고, 이후 그녀는 남편의 말을 영어로 통역하거나 직접 얘기했다. 대화가 시작되자 남편과 해인은 길거리 축제를 즐기러 자리를 떠났다.


에혼야의 이름이 긴 사연은 사토 와키코(さとうわきこ)의 그림책 <えほんやるすばんばんするかいしゃ>의 글자모양이 마음에 들어서 서점 주인인 아라키 겐타(荒木健大)씨가 그대로 따라 그렸단다. 그림책이 좋아서 책방을 시작했다는 아라키씨는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14년째(2003년 오픈) 에혼야를 지키고 있다고. 이렇게 지속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에혼야를 이해하고 응원해 준 많은 손님들 때문이었다고 했다. 진귀하고 오래된 그림책들은 직접 해외에서 사오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손님들이 가져 온단다. 에혼야는 손님이 가져 온 그림책에 가격을 매겨 돋보이도록 진열해 놓으면 되었다고 한다. 에혼야를 소개한 책이나 인터뷰에서 본 얘기를 직접 들었다.


에혼야의 그림책들은 빈티지하다고 했다. 빈티지가 어떤 의미인가를 물으니 ‘틀에 박히지 않고 느리고 오래된 느낌이 나는 진귀한 개성’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들은 몇 가지 그림책을 가져와서 내게 보여 주었다. 대부분 절판된 책들이고 한 권씩 밖에 없다는 말도 덧붙었다. 빈티지함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부부는 이에 맞게 직접 출판도 한다며 평대에 놓인 책들을 가리켰다. 키쿠치치키(きくちちき)의 그림책들이었다. 획일적인 대량인쇄 방식이 아닌 작가의 개성을 존중하고 원화의 느낌을 살려 수작업이란 느리고 불편한 공정을 감수하고 만들어진 그림책이었다. 그래서인가 키쿠치치키의 그림책에선 생명력과 애정이 느껴졌다. 난 500권만 만들어졌다는 <つながる>의 366번째 그림책을 샀다. 이번에는 고서 그림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아라키씨 부인은 1층 갤러리에 다녀오겠다고 한다(애석하게도 내가 간 날은 갤러리 문을 열지 않아 볼 수가 없었다). 잠시 후 그녀는 몇 권을 가져와 그 중 한 권을 권했다. 내가 좋아하는 색감의 예쁘고 깜찍한 그림책이었다. 기네스 맘록(Gwyneth Mamlok, 1925~2014)의 1965년에 출판된 <Candy and Peppermint>란 그림책이었는데 단박에 맘에 들었다. 지금이 아니라면 어디에서도 다시 만날 수 없는 그림책이었다. 값을 물으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비쌌다. “이 그림책이 당신에게 이 가격만큼의 기쁨과 행복이 되길 바라서 랍니다. 여기 책들의 가격은 그렇게 매겨졌습니다.” 라고 했다. 이들의 바람이 나에게도 와 닿았다.


아와오도리가 시작 되었다고 남편에게 연락이 왔다. 어느 덧 두 시간이 지났나 보다. 부부의 이름을 물었더니 ‘Kenta&Junko’라며 명함에 적어 주었다. 많은 시간을 할애해준 부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그 자체가 한권의 빈티지한 고서 그림책인 에혼야를 총총히 내려 왔다. 10여년을 넘게 서점을 이어오며 그림책이 하나의 장르로 독립하기를 바라면서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이들은 서점인을 넘어 예술가라고 느껴졌다.



<함께 찾아가기 좋을만한 곳>


* 고엔지 아와오도리: 매년 8월 마지막 토, 일요일 오후 5~8시

여름의 끝을 알리는 아와오도리(阿波踊り)의 발상지는 도쿠시마 현(徳島県)으로 400년 가까이 이어져 온 유서 깊은 향토예능이다. 1957년에 도쿄 고엔지에서, 한 상점을 운영하던 청년이 지역 활성화의 행사로서 시작한 고엔지 아와오도리는, 시대와 함께 서서히 확대되어 지금은 약 1만 명이 행사에 직접 참가하고 약 10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 도쿄의 여름을 대표하는 행사로 성장하였다. 남녀노소가 함께 어울려 즐기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고, 중간 중간에 한 명이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라는 뜻의 “얏토사~(ヤットサー)”라고 외치면 “아, 얏토, 얏토!”라고 “아, 잘 지냈어!”라고 화답하는데 이 구호와 화답에 독특한 매력이 있다. 에혼야를 갈 때 아와오도리와 맞춰 가기를 추천한다.


* 에혼야 루스반 반스루 카이샤: 수요일 휴무, 오후 2시 ~ 8시

〒166-0003 東京都杉並区 高円寺南3-44-18 2F


* 코도모노혼야(子どもの本や): 수, 목요일 휴무, 11:00~17:00

〒166-0004 杉並区阿佐ヶ谷南1-47-7 


* 분로쿠도(文禄堂): 연중무휴

〒166-0002 東京都杉並区高円寺北 2-6-1 高円寺千歳ビル 1F


그 자체가 빈티지한 고서 그림책이었던 에혼야.
에혼야의 이름이 된 그림책.
추천해서 구입한 책.
파루상점가에 나온 길거리 음식들.
파루상점가를 지나가는 아와오도리.
눈을 뗄 수 없었던 아와오도리 막바지 행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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