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한 특별한 일본살이
틸 그린 인 씨드 빌리지(TEAL GREEN in Seed Village)
해인과 그림책 여행을 하다보면 해인이 특별히 좋아하는 곳이 있다. 그런 곳은 몇 번씩 더 가게 되는데 그림책 까페 ‘틸 그린 인 씨드 빌리지(이하 틸 그린)’가 그렇다.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방문을 뒤로했던 것이 후회가 될 만큼 보물창고 같은 곳이다. 주인이 손수 끓여 낸 감칠맛의 짜이와 여럿이 함께 나눈 풍성한 이야기가 행복한 추억이 된 틸 그린이 이제도 많이 그립다.
틸 그린은 도쿄도 서쪽 경계에 위치하고 있다. 내가 살던 가와사키 집에서 대중교통으로 20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이다. 도큐 다마가와선(東急多摩川線)을 타고 무사시닛타역(武蔵新田駅)에서 내려 한적하고 소박한 동네를 걷다보면 주택가에 서양식 민가가 나오는데 바로 틸 그린이다. 우리나라에는 그리 알려지지 않은 곳이나 일본에서는 그림책 관련 책자와 잡지 등에 자주 등장하는 곳이다. 구글로 검색하면 별 다섯 개로 표시 될 만큼 평판이 좋은 곳이기도 하다.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그림책 까페의 컨셉이 ‘お茶がのめる絵本の店’ 즉, 차를 마실 수 있는 그림책서점이라 한다. 내가 알게 된 틸 그린의 이야기는 이렇다.
서점 주인 타네무라 유미코(種村由美子)씨는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림책을 읽어 주면서 그림책과의 만남을 시작했다고 한다. 타네무라씨는 아이가 4명이었는데, 육아 기간이 길었던 만큼 힘들 때마다 즐거움과 위로와 격려가 된 것이 그림책이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다 자란 후에도 삶이 어렵다 느껴질 때 그림책을 보았고, 책을 보며 얻은 깨달음으로 올바르게 생각하며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는 타네무라씨. 어느 날엔가 읽고 싶은 그림책을 보러 찾아간 서점(틸 그린: 원래 서점명)이 인연이 되었고, 이후 서점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하자 이를 구하기 위해 힘을 보탰다. 2011년 창업자에게 서점을 이어 받은 타네무라씨는 이를 자신의 집으로 이전하고 확대하면서, 서점 원래 이름에 씨드 빌리지(타네무라 성에서 따온 것)를 더했다고 한다. 타네무라씨가 이전 서점에서부터 지금의 서점까지 12년 째 운영할 수 있었던 것은 그림책을 필요로 하는 사람과 그에게 필요한 그림책을 이어 주는 일이 좋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것이 그림책전문점의 역할이라며.
“그림책에는 살아가는데 중요한 말이나 생각이 가득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틸 그린을 찾는 이들과 나누고 싶은 것이 12년 전부터 변치 않는 소원입니다.” 어느 잡지의 인터뷰에서 타네무라씨가 한 말이다. 이제 타네무라씨와 틸 그린을 제대로 느끼러 간다.
무사니닛타역에서 정겨운 동네 풍경을 감상하며 칠 분 여를 걸었을까? 틸 그린의 상징인 청둥오리 사인판이 눈에 들어왔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타네무라씨 부부가 함박웃음으로 우릴 반겼다. 4,000여권이 넘는 그림책들이 서가마다 빼곡하게 꽂혀 있었고, 크리스마스와 이와 관련된 그림책들이 표지 진열되어 있었다. 일반서점에서는 잘 볼 수 없었던 도쿄어린이도서관에서 출판한 이야기빛(おはなしのろうそく) 시리즈물이 비중 있게 전시되어 있었고, 캐릭터 인형들과 목재 완구, 소품등도 아기자기하게 자리하고 있었다. 서점 안쪽에는 까페 겸 갤러리가 있는데, 서점과 까페를 연결한 복도에는 작고 예쁜 것들로 가득했다. 타네무라씨 부부와 내가 서점에 대해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동네 아이들과 부모들이 계속해서 서점을 다녀갔다. 모두 단골처럼 보였고, 살아가는 이야기들을 나누는 것 같았다. 틸 그린이 이 지역에 어떻게 뿌리 내리고 있는 지 엿볼 수 있었다. 이번에는 대여섯 살 되어 보이는 아이 한 명과 엄마가 틸 그린의 문을 열었다. 타네무라씨 부부는 이들 모녀를 더욱 반갑게 맞이했고 이내 나와 해인을 소개했다. 영어가 유창한 아이 엄마는 자신은 마사코며 딸은 엠마라고 우리에게 인사했다. 이후 마사코는 타네무라씨 부부와의 모든 대화는 물론, 타네무라씨가 추천한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와 직접 읽어 주는 그림책까지 통역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동안 문득 아이들이 궁금해 돌아보니, 해인과 엠마는 어느 덧 친구가 되어 그들만의 재미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즐거워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다같이 감동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타네무라씨는 한국 그림책들을 찾아와 보여 주었다. 그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찬데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이 한국의 옛 정서가 넘치는 <넉점반>이라니! 그녀 덕분에 영미권에서 활동하고 있는 우리나라 나일성 작가도 알게 되었다.
그녀가 나누어 준 그림책 이야기와 환한 웃음, 따뜻한 관심, 깊은 정성만으로도 내가 담을 수 있는 마음의 보따리는 이미 차고 넘쳤는데, 또 다시 한 아름을 더 안겨준 이가 있었다. 그림책 작가 타카하시 카즈에(高橋和枝)씨가 그랬다. 조용하고 차분한 외모에 소박한 말투, 수줍음이 많은 타카하시씨와 인사를 나누는 동안, 타네무라씨가 몇 권의 그림책을 내게 보여 주었다. 그림책들이 어찌나 작가를 닮았는지! 그 중에 <りすでんわ>는 <다람쥐 전화>라는 한글판이 있다는 얘기를 타네무라씨가 해 주었다. 타카하시씨와 함께 하는 시간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졌다. 해인은 그녀의 그림책들 중에서 특히 <くまのクリスマス 한글판: 졸려 졸려 크리스마스>를 갖고 싶어 했고, 타카하시씨에게 싸인을 받아 구입했다. 이 책은 지금까지도 해인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책 중에 하나가 되었다.
아이들의 애정이 남다른 타네무라씨! 매리 홀 엣츠(Marie Hall Ets)의 그림책, <나랑 같이 놀자>는 자신이 죽으면 관에 넣어 달라고 할 만큼 그림책을 좋아 하는 타네무라씨! 그림책이 주는 아름답고 소중한 이야기를 틸 그린을 찾는 이들과 나누고 싶다는 그녀의 소원은 이방인인 나에게도 이루어졌다. 나와 해인은 틸 그린을 특별하게 추억할 것이고, 틸 그린이 오래도록 그 자리에 있기를 기도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틸 그린과 타네무라씨를 이야기 할 것이고, 언젠가는 다시 찾을 테니까.
* 이케가미 혼몬지(池上本門寺): 이케가미 혼몬지 오에시키 축제는 도쿄의 가장 유명하고도 기억에 남을만한 축제이며, 730년에 달하는 역사를 지니고 있기도 하다. 10월 11일~13일에는 니치렌의 기일을 기념하는 화려한 전등행사가 볼거리로 하일라이트는 12일 오후 6시에 열리는 만등공양 행렬.
〒146-8576 東京都大田区池上1-1-1
* 오층탑 도쿄에서 현존하는 막부 말기 이전의 4개 오층탑 중 가장 오래된 탑. 혼몬지 공원에 있다.
* 츠바키야 커피 이케가미점(椿屋珈琲店 池上店): 마사코와 엠마와 다시 만나 차와 식사를 했던 곳인데, 일품요리도 커피 맛도 좋았다.
1. 매리 홀 엣츠(Marie Hall Ets), <나랑 같이 놀자>
2. 타카노 유우코(たかおゆうこ), <くるみのなかには>
3. 나카가와 치히로(なかがわちひろ ), <のはらひめ―おひめさま城のひみつ>
4. 버지니아 리 버튼(Virginia Lee Burton), <작은 집 이야기>
5. 이토 히로시 (いとう ひろし), <だいじょうぶ だいじょうぶ>
6. 로버트 배리(Robert Barry),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