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한 특별한 일본살이
스토리 스토리(STORY STORY)
내가 해인이를 데리고 신주쿠를 가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신주쿠교엔(新宿御苑)이 있어서고 다른 하나는 스토리 스토리 서점이 있어서다. 공원에서 먹을 점심 도시락을 해인과 의논해 준비해서 일치감치 길을 나섰다.
신주쿠교엔은 4시에 입장 마감을 하고 4시 30분이면 문을 닫기 때문에 제대로 누리려면 일찍 가야 한다. 100년이 훌쩍 넘은 나무들과 계절마다 피는 다양한 꽃들과 찬란한 단풍과 잘 가꾸어진 정원을 아이 손잡고 걷는 것은 그야말로 축복이다. 아름다움에 취해 신비로움에 반해 공원 이곳저곳을 누비는 것 자체로도 값지지만, 눈부시게 빛나는 벚꽃이나 거대한 나무들, 이름 모를 들꽃이나 아주 작은 풀포기, 세상과 이별하는 단풍이나 공원을 누비는 다람쥐, 오리, 새들이 각자 자신들의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몸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누구에게 잘 보이려 하지 않고, 누구의 시선에 맞춰 살지도 않으며, 누구의 삶을 대신 살지 않는다. 간섭하지도 간섭받지도 않고 당당히 오로지 ‘나’로 살고 있다. 자연은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었다. 이 깨달음을 통해 나는 그간 밖으로 돌렸던 시선을 비로소 내 안으로 돌렸다. 내 존재 자체에 주목하고 온 마음을 다해 바라보았다. 눈물이 쏟아졌다. 얼마후 마음에서 아름다운 결심이 피어났다. 누가 뭐래도 그저 ‘나’로 살기로! 한동안 우울한 마음이 들었던 나는 그렇게 회복을 했다. 언제 마음이 아팠을까 싶을 만큼 툭툭 털고 일어나니 해인도 세상도 있는 그대로 보였다. 내 아이가 그 누구도 아닌 해인으로 살도록 돕는 일이 내가 할 일이구나!
내가 이렇게 자각과 치유의 시간을 갖는 동안 해인은 '이세 히데코'의 그림책에서 보았던 나무 위에서 책의 주인공들처럼 놀기도 하고, 나뭇가지를 주워 바닥에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색색이 고운 단풍잎들을 모아다 꾸미기를 하며 놀았다. 준비해 온 도시락을 펼쳐 꿀처럼 달게 먹고, 커피 한 모금을 마시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해인과 그림책 여행 코스에 되도록 숲이나 공원 또는 정원을 빠뜨리지 않으려는 이유다.
신주쿠교엔을 즐겼으니 이번에는 스토리 스토리로 간다.
복잡한 신주쿠역에서 처음 스토리 스토리를 찾기란 쉽지 않았다. 역에서 출구를 잘못 나오니 그때부턴 구글맵도 소용이 없었다. 이리 갔다 저리 갔다 한참을 헤맨 뒤 드디어 서점에 도착했다. 서점은 고맙게도 입구에서부터 해인의 눈길을 확 끌었다. 그간 했던 고생을 싹 잊어버리게 할 만큼 말이다. 나야 사서 고생이라지만 엄마 따라 다니는 해인에겐 언제나 미안한 마음이 들기 때문에 우리를, 특히 해인을 실망시키지 않은 스토리 스토리가 무척 고마웠다. 서점 가장 앞줄에서 곰돌이 푸와 디즈니 캐릭터 인형들이 우리를 반겼고, 서점 왼편으로는 우리나라에서 ‘우당탕탕 야옹이’ 씨리즈 그림책을 테마로 한 까페, ‘노라네코 커피(Noraneko Coffee)가 흥미를 끌었다. 지친 다리도 쉴 겸 어떤 메뉴가 있는지 궁금해 까페부터 가보았다. “우아! 엄마! 야옹이들이다!” 그림책에서 봤던 야옹이들이 요리나 디저트들에 등장하는 것을 보자 해인이 감탄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우린 아이스크림과 딸기케익과 커피를 주문하고 이를 기다리는 동안 여기저기 놓인 야옹이 그림책을 보았다. 일본어로 된 그림책이라 그림만으로 이해를 해야 하는데, 해인은 늘 그렇듯 그림만으로 충분했다. 나 역시 그림에만 집중할 수 있어서 새롭게 다가오는 재미와 감동을 즐겼다.
까페는 책을 펴낸 출판사와 콜라보로 메뉴를 개발하여 판매하면서 출판사의 책들과 캐릭터 상품을 홍보하고 있었다. 고객이나 아이가 까페에서 생긴 그림책에 대한 호기심을 서점이 놓치지 않고 스페셜 평대를 통해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있었다. 또한 서점에서 책(일부 제외)을 보다가 까페로 가져와서 식음료를 즐길 수 있도록 했는데, 까페와 서점과 출판사가 서로 윈윈하는 마케팅 전략이 돋보였다.
서점 가장 안쪽에는 그림책과 캐릭터 상품, 교육용 장난감을 비치하여 부모와 아이들이 직접 보고, 만지고, 체험해 볼 수 있도록 하는 그림책 육아 광장이 있다. 이곳에서는 정기적으로 그림책 모임이 이뤄지고, 다양한 그림책 강좌가 열리는 등 부모와 아이들의 꿈을 응원하고 지원하는 Do! Kids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까페에서도 구현되고 있어서 어린이들을 위한 별도의 메뉴(Kids Plate)가 마련되어 있었다. 아이를 데리고 서점을 찾은 부모 입장에서는 먹거리를 따로 고민할 필요가 없으니 원하는 만큼 충분히 머물면 되었다.
그림책 서가는 어떨까 궁금했다. 우리가 갔을 때는 여느 서점처럼 크리스마스 시즌 그림책들이 비중 있게 전시되고 있었다. 그중에 유독 눈에 들어 온 것은 생쥐 가족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이었다. 귀엽고 깜찍하면서도 세밀한 그림에서 따뜻함이 느껴져 열어 보았더니 <내 이름은 패딩턴>의 작가 마이클 본드(Michael Bond) 가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긴 그림책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열다섯 생쥐 가족과 아주 특별한 인형의 집>으로 번역되어 출판되었는데, 이 그림책을 통해 에밀리 서튼(Emily Sutton)이라는 그림 작가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림책들은 크리스마스 선물 프로모션에서도 한 몫을 하고 있었고, 주제에 따라 다른 책이나 소품들과 함께 전시 되어 있기도 했다.
단지 책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특별한 가치를 담으려는 서점의 큐레이션은 다르다. 그 정성과 노력은 독자 혹은 고객의 마음에 가서 닿는다. 특히 부모와 아이의 꿈을 향해 Do! Kids 프로젝트를 실현하는 스토리 스토리에서 해인과 함께 했던 시간은 편하고 뿌듯했으며 벅차고 즐거웠다. 이것이 아이와 함께 떠나는 그림책 여행지로 스토리 스토리를 추천하는 이유고 내가 신주쿠에 다시 가고픈 이유다.
* 신주쿠교엔(新宿御苑): 1906년에 황실의 정원으로 조성되었다가 현재는 국민공원으로 자리하고 있다. 개방적인 영국 풍경식 정원과 좌우 대칭이 조화를 이룬 프랑스식 정형 정원, 차분한 분위기의 일본 정원으로 구성된 다양한 정원 구역이 있다. 약 65종 1,100그루의 벚꽃이 피는 봄과 나무가 물드는 가을 등, 사계절을 즐길 수 있다. 매주 월요일 휴무, 9:00~16:00 (16:30 폐장)/일반 200엔, 초·중학생 50엔, 유아무료. 마루노우치 선 '신주쿠교엔마에' 역 출구 1에서 도보 5분, JR '신주쿠' 역 남쪽 출구에서 도보 10분.
〒160-0014 11 Naitomachi, Shinjuku, Tokyo
* 스토리 스토리(Story Story) 서점: 연중 무휴
〒160-0023 Tokyo, Shinjuku, Nishishinjuku, 1 Chome−1−3 小田急百貨店新宿店, 本館10F(신주쿠역 서쪽지상개찰구에서 왼편)
* 키노쿠니아(紀伊国屋) 서점: 연중 무휴
〒163-86363 新宿区新宿3-17-7
* 스이잔 우동, 신주쿠점(水山, 新宿店): 연중 무휴
〒160-0022 新宿区新宿3-17-7 紀伊国屋ビルB1F
<구입한 그림책>
마이클 본드(Michael Bond) 글/ 에밀리 서튼(Emily Sutton) 그림 <열다섯 생쥐 가족과 아주 특별한 인형의 집>의 일본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