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한 특별한 일본살이
남편이 한국으로 장기 출장을 가게 되면서 그 기간 동안 친정엄마가 우리와 지내기로 했다. 때맞춰 여동생이 짧은 휴가를 내어 사촌조카인 윤원과 함께 여행을 왔다. 우선은 3박 4일 일정뿐인 여동생과 조카를 고려해 모두에게 가장 좋을 만한 여행지를 찾아야 했다. 이럴 때는 한국에서는 좀처럼 가기 어려운 곳이자 그림책 여행을 계획하면서 꼭 가야할 곳으로 꼽아 둔 지브리미술관(ジブリ美術館)이 최선이었다.
지브리미술관은 애니메이션 주인공들이 어디선가 불쑥하고 나올 만큼 아름다운 미타카의 숲(三鷹の森)에 있다. 이 숲은 도쿄 시민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공원 중 하나로 꼽히는 이노카시라온시공원(井の頭恩賜公園)과도 이어져 있다. 따라서 지브리미술관을 간다면 기치죠지역(吉祥寺駅)에서 내려 공원을 즐기고 숲을 여유롭게 거닐 수 있도록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 좋다. 일찌감치 집을 나섰던 그날은 날씨도 화창해서 한결 기분이 좋았다.
5월의 첫날, 도쿄의 한낮은 더웠다. 공원은 밝은 햇살이 연출하는 풍경들로 가득했다. 햇빛이 닿은 잎들은 다채로운 초록빛을 쏟아냈고, 분수에서 뿜어져 나오는 물은 마치 새하얀 눈 같았다. 파란 하늘이 발을 담근 연못에는 빛의 조각들이 한가득 내려와 춤을 추고 있었다. 그 속에서 노니는 해인과 윤원의 모습을 바라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한국에서 오누이처럼 지내던 해인과 윤원이었다. 우리가 일본으로 떠나기 전날, 해인과 헤어지기 싫었던 윤원은 오빠와 같이 자겠다며 집엘 가지 않았다. 다음날 우리가 공항 리무진에 올라탔을 때 윤원은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그 모습이 가슴에 아련하게 남았었는데, 이 둘이 다시 만나 도쿄의 한 공원에서 함께 놀게 될 줄이야.
공원에는 거리공연이 이곳저곳에서 열린다. 해인은 거리 공연을 좋아한다. 그날은 기타와 하모니커를 동시에 연주하는 할아버지 앞에 섰다. 음악에 맞춰 박수를 치는데 어딘지 모르게 어색한데도 박자는 제대로 맞았다. 친정엄마는 그런 해인을 유심히 바라보다 결국 웃음보를 터뜨렸다. 모두에게 큰 웃음을 준 해인의 귀여운 맞장구를 여태 잊지 못한다.
공원을 지나 키 큰 나무들과 녹음이 울창한 미카타 숲을 걷다 보면 현실에서 벗어난 느낌을 받는다. 신비로운 느낌마저 들었는데 메이가 발견한 토토로의 마을에 온 것 같았다. 그 속을 걷고 때로는 달리고 때로는 깔깔거리는 해인과 윤원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마음 속에 잠자던 어린 아이가 깨어났다. 어느덧 나도 감탄사가 늘고 웃음이 많아지고 천진난만해 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앞서 간 해인이 소리쳤다. “우아 토토로다!” 드디어 도착했다.
지브리미술관은 미야자키 하야오(宮崎駿, 1941~) 감독이 직접 디자인했다. 감독 특유의 상상력이 구현된 환상의 세계다. 이 미술관은 ‘함께 미아(迷兒)가 되자!’를 모토로 한다. ‘호기심과 모험심을 가지고 길을 떠나라! 설령 길을 잃을 지라도 맘껏 도전하고 몸으로 부딪히며 삶을 누려라!’ 하야오 감독이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해인과 윤원은 토토로의 고양이 버스를 재현해 놓은 곳을 제일 좋아했다. 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추천하는 아동도서와 그림책이 있다는 도서관, 트라이 호크스(TRI HAWKS)가 궁금했다. 도서관이라기 보다는 작은 서점 같았던 트라이 호크스는 원목으로 마감이 되어 부드러우면서도 품격이 있었다. 서가에는 미술관 도록도 있었고, 애니메이션 원작 동화도 있었고, 시즌 그림책들도 있었다. 난 그림책들을 주로 보았는데, 그 가운데 유독 눈길이 가는 책들이 있었다. 하야시 아키코(林明子 1945~)의 <이슬이의 첫 심부름>과 <순이와 어린동생>, 미야자와 겐지(宮沢賢治, 1896~1933)의 그림책 <주문이 많은 요리점>등 대략 40년 전에 출판된 스테디셀러들이었다. 이 그림책이 꽂힌 서가의 다른 동화책들의 출판연도를 보니 <싫어 싫어 유치원>이나 <왕도둑 호첸플로츠> 등이 1960~70년대 발행된 것들이었다. 이 책들이 한 서가에 진열된 의미가 궁금해서 스텝에게 물었다. 카즈하이 시즈쿠이시(Kazuhei Shizukuishi)씨는 이 책들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애니메이션의 원작이거나 작품에 영향을 미친 책들이라고 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에게 창작의 영감이 된 책들을 전시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인데도 막상 그 책들과 마주하니 느낌이 새로웠다. 카즈하이씨에게 해인이 읽으면 좋을만한 그림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는 톨스토이 원작 '곰 세 마리' 를 유리 바스네초프(Yurij Alekseevich Vasnetsov 1900-1973)가 그린 그림책과 우리나라에서 구리와 구라 시리즈로 알려진 자매, 나카가와 리에코(中川李枝子 1935~)와 오오무라 유리코(大村 百合子 1941~)가 1964년에 쓰고 그린 그림책 <보물찾기>의 원서를 골라 주었다. 이 두 그림책은 특히 하야오 감독에게 매우 중요한 책이었다며. 내가 이 두 그림책을 사는 동안 해인과 윤원이 나를 찾아 왔다. 난 그림책들을 해인에게 건네주며 해인이 좋아하는 토토로를 만들고, 이 미술관을 설계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해인에게 보여 주고 싶은 그림책이라고 했다. 해인은 먼저 <보물찾기>를 열어 보았다. 이 모습을 지켜보던 카즈하이씨는 우리가 참 부럽고 좋아 보인다고 했다. 나의 질문에 성실히 친절하게 답해 주어서 고맙다는 말을 카즈하이씨에게 남기고 도서관을 나왔다. 도서관을 그저 둘러보기만 해도 좋았겠지만, 물어보길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선을 다해 고객을 응대했던 카즈하이씨 덕분에 지브리미술관에서의 추억이 더욱 특별해졌다.
어느 새 석양이 지고 있었다. 낮에 더위가 한 순간 쌀쌀함으로 돌아섰다. 우리는 지브리 미술관에서 디자인 한 커뮤니티 버스를 타고 미카타 역으로 갔다. 공원과 숲과 미술관에서의 여정이 마치 영화처럼 차창 밖으로 지나갔다. 그동안 아이처럼 들떴던 마음이 땅거미가 지듯이 가라앉았다. 내 안의 아이는 오늘 하루 만들어진 아름다운 이야기들을 보따리에 넣고 총총히 집으로 갔다. 안녕! 또 보자!
*미타카의 숲 지브리미술관(三鷹の森ジブリ美術館): 오전 10:00~ 오후 6시(화요일 휴무)
〒181-00131 1 Chome-1-83 Shimorenjaku, Mitaka, Tokyo
*이노카시라온시공원(井の頭恩賜公園):연중 무휴
〒180-0005 1 Chome-18-31 Gotenyama, Musashino, Tokyo
*한비제(韓美膳 アトレ吉祥寺店): 오전 11:00~오후 10시, 연중무휴
한국요리가 먹고 싶다면 추천하는 요리점. 기치죠지역 아트레(Atre) 백화점 지하 1층 5번가 다이닝코너에 위치한다. 그밖에도 아트레에는 마루젠(MARUZEN) 문구점과 티 하우스 등이 있어서 아이들과 여유 있게 식사와 차 등을 즐길 수 있다. 특히 덥거나 추울 때 가족이 함께 머물기 좋다.
〒180-0003 1 Chome-1-24 吉祥寺南町 Musashino, Tokyo
*기치죠지 선로드 상점가: 연중무휴
공원과 숲을 누리고 지브리미술관을 즐기면 하루가 거의 다 간다. 이곳은 시간적인 여유가 있을 때 들려 보면 좋다. 멘치카츠(メンチカツ)로 유명하다는 사토우(さとう)도 이 상점가 안에 있다.
〒180-0004 1 Chome-15-1 Kichijoji Honcho, Musashino, Tokyo
1. 톨스토이 원작 <곰 세 마리>, 유리 바스네초프(Yurij Alekseevich Vasnetsov) 그림, 후쿠인칸 쇼텐(福音館書店)
2. <보물찾기> 나카가와 리에코(中川李枝子) 글, 오오무라 유리코(大村 百合子) 그림, 박숙경 옮김, 한림출판사 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