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한 특별한 일본살이
포포타무(Book & Gallery Popotamu)
일본에 살면서 맘껏 누릴 수 있는 것 중에 하나가 축제다. 축제의 나라답게 일본은 계절마다 월마다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 이케부쿠로에서 열리는 마츠리 요사코이(よさこい)는 1968년부터 개최해 온 “후쿠로 축제”의 후반부 행사로 매년 10월에 개최된다. 전통을 계승하고 마을의 부흥을 기원하기 위해 전국에서 모인 138개 팀이 벌이는 대규모 축제다. 우리 가족은 춤 축제를 좋아해서 요사코이를 놓칠 수 없었다.
마츠리 때가 되면 일본 사람들은 평소에 차분하고 조용하던 이들이 맞나 싶을 만큼 흥과 끼가 넘치는 모습을 보인다. 남녀노소가 호흡을 맞춰 함께 추는 군무는 묘한 매력이 있다. 한껏 흥이 난 표정과 몸짓, 이들이 내는 이색적인 함성에선 벅찬 전율마저 느껴졌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다채로운 모습들을 보고 있다간 날이 저물 것 같아 다음 일정을 위해 발길을 돌렸다. 해인은 아빠랑 포켓몬센터(Pokémon Cente)로 가는 바람에 모처럼 혼자 그림책 여행을 즐기게 되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북 앤 갤러리 포포타무(Book & Gallery Popotamu) 로 향했다. 그전에 들릴 곳이 있었다. 세계 최대의 파이프 오르간을 보유하고 있다는 도쿄 예술 극장(東京芸術劇場)이 그곳이다. 그런데 극장 안팎으로 요사코이에 참여하는 출연자들과 가족, 관련자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어서 극장을 제대로 느끼기 어려웠다. 극장은 점심시간에 열리는 파이프오르간 연주회를 보러 다시 오리라 마음먹고, 공원에서 펼쳐진 먹거리 장터와 갖가지 분장과 형형색색의 복장을 한 사람들을 구경했다. 이 풍경에 대한 호기심을 어느 정도 채우고 다시 포포타무로 향했다.
얼마를 지나자 현란함도 북적임도 사라졌다. 점차 빌딩이나 건물이 멀어지면서 그 만큼씩 하늘이 내려오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일본 전통 가옥 한 채가 눈에 들어왔다. 그 집 마당에 우뚝 솟은 소나무 두 그루는 진작부터 나를 보고 있었다는 듯했다. 자석처럼 이끌려 그 집 앞에 닿았는데 다행히 가는 방향이었다. 관리를 잘 해서인지 오래되었지만 정갈한 느낌이 나는 그 집의 느낌이 좋았다. 그 집을 시작으로 이어진 골목길을 걷자 여기도 저기도 눈길을 끄는 집들이 계속됐다. 그림책을 보듯 동네 풍경을 감상하며 얼마만큼 지났을까? 드디어 포포타무로 보이는 간판이 눈에 띄었다.
“독창성이 넘치는, 다른 곳에서 별로 찾을 수 없는 어떤 것 고르기 위해, 책을 좋아하는 이들이 몇 시간이라도 열중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셀렉트에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포포타무의 점장 오바야시 에리코(大林 えりこ)씨의 말이다. 그녀의 말처럼 책방 안에는 일반 서점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아트북과 독립출판물(Zine), 무가지(Littlepress)와 비교적 예술성이 높은 그림책, 헌책들이 선별되어 있었다. 책 뿐 아니라 예술가들의 작품이나, 인디 뮤지션의 CD도 판매하고 있었다. 책방 안쪽에 갤러리가 있었는데, 이곳에서는 일러스트, 그림책, 입체, 공예, 영상 등의 전시가 2주에 한 번씩 열리고 있었다.
내가 한국 사람인 걸 안 오바야시씨는 서투른 한국말을 시작했다. 그녀는 ‘서울 아트북 페어’에 2010년부터 참가했단다. 그곳에서 한국 친구를 사귀게 되었고, 그 친구로부터 한국어를 배우고 있다고 했다. 한국을 좋아해서 한국말을 잘 하고 싶다며 최대한 한국어로 표현하려 애를 썼다. 그녀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열정에 감사함을 표했다. 잠시 후 그녀는 지도 한 장을 가져왔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이케부쿠로에서 메지로의 가이드맵’ 한국어판이었다. 지도를 펼쳐 보는 순간 어찌나 반갑고 감사하던지! 대형서점부터 작은 책방, 헌책방의 위치는 물론이고, 가볼만한 곳과 맛 집 등이 소개 되어 있었다. 그녀로부터 서점과 그림책방을 추천받은 후, 보물지도 같은 가이드맵을 고이 접어 가방에 넣었다.
포포타무의 그림책들이 궁금했다. 그녀는 아트적인 성향이 짙은 그림책으로 선별한다고 했다. 대부분 갤러리에서 원화 전시회를 가졌던 그림책이라고 한다. 오바야시씨가 좋아하는 그림책에서 추천을 부탁하니 네 권의 책을 보여 주었다. 그리곤 그림책마다 담겨진 이야기와 그림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그녀가 그림책에서 받은 감동들이 고스란히 내게도 전달이 되었다. 그림책을 놓고 이어진 대화는 시간도 공간도 초월하고 있었다. 문득 서점에서 벗어난 그녀와 난 그림책 속을 거닐고 있었다.
난 ‘미야코시 아키코(みやこし あきこ)’가 사인한 <집으로 가는 길>원본과 ‘아이누(あいぬ)’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그림책을 골랐다. ‘가야노 시게루(萱野 茂)’가 쓰고 ‘도이 카야(どい かや)’가 그린 그림책이다. 아이누인들이라면 지난 여름 홋가이도 여행에서 알게 된, 아픈 역사를 가진 원주민들이 아니겠는가! 우리민족과 아이누인들이 비슷하게 겪었을 침략의 고통과 한맺힌 설움들이 떠올라 가슴이 멍했다. 한동안 그림책에서 손을 떼지 못하고 어루만지다 가슴에 안고 다독였다. 이 그림책을 추천하고 열심히 설명해준 오바야시씨가 무척 고마웠다. 그림책 원화전이 열릴 때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고 책방을 나왔다. 집으로 가는 길이 따뜻했다.
1. <집으로 가는 길>, 미야코시 아키코 (글/그림), 권남희 (옮긴이), 비룡소(출판)
2. <アイヌのむかしばなし ひまなこなべ>, 가야노 시게루(글), 도이 카야(그림)
* 포포타무: 연중무휴, 오후 1시~8시(토, 일요일은 7시까지).
〒171-0021 東京都豊島区西池袋2-15-17
* 포켓몬센터(Pokémon Cente): 연중무휴, 오전 10시~오후 8시.
포켓몬센터가 있는 선샤인시티에는 여러 캐릭터숍들이 있다. 규모도 크고 다양해서 아이들과의 여행이라면 들릴만한 곳이다.
〒170-6002 東京都豊島区東池袋3-1-2 サンシャインシティ 専門店街アルパ 2F
* 도쿄 예술 극장(東京芸術劇場): 홈페이지에서 연주회 일정 확인.
도쿄 예술 극장은 건축적으로도 아름다운 곳이다. 극장 안에도 전시관이 있어서 연주와 예술 감상 두 가지를 모두 누릴 수 있다. 특히 점심시간에 열리는 파이프오르간 연주회를 추천한다. 관람료 500엔.
〒171-0021 東京都豊島区西池袋1-8-1
* 이케부쿠로 준쿠도(ジュンク堂書店 池袋本店): 연중무휴 오전 10시~오후 10시.
포포타무 책방지기가 추천해준 서점으로 어린이코너의 큐레이션이 돋보인 곳.
〒171-0022 東京都豊島区南池袋2-15-5
* 수타우동 카루카야(かるかや 池袋): 연중무휴 오전 10시~오후 8시.
포포타무 책방지기가 추천한 우동집. 저렴한 가격으로 맛있는 우동을 먹을 수 있는 곳.
〒171-8569 東京都豊島区南池袋1-28-1 9층 옥상테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