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와 함께 한 특별한 일본살이
마루노우치는 해인과 내가 즐겨 찾던 곳 중에 하나다. 너무 덥거나 비가 많이 올 때는 도쿄 역 지하일대에서 놀면 되었다. 도쿄역 지하상가에는 이른 아침 출근하는 이들을 위한 모닝메뉴부터 다양한 도시락, 빵과 과자류, 맛집으로 유명한 식당과 까페, 이자카야(술이 제공되는 음식점)들로 넘쳐난다. 먹을 것 뿐아니라 캐릭터 스트리트에서부터 패션, 잡화, 식료품, 서점에 이르기까지 모든 라이프스타일의 니즈를 채우고 있는 곳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몇 군데만 기웃거려도 반나절이 쥐도 새도 모르게 지나간다.
도쿄 역 남쪽 출구로 나와 왼편으로 그 옛날 우정국 건물을 리모델링한 키테(KITTE, キッテ)에도 자주 갔었다. 키테는 ‘연결’을 테마로 한 상업시설로, 층별마다 테마를 가지고 일본 각지의 유명한 상점들을 모았다. 지하 1층에도 이 연결은 계속 되어 일본 전역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식당가(KITTE GRANCHÉ)가 있다. 난 오키나와 가정식을 파는 야치문(やちむん)에서 여주볶음 요리와 바다포도(海ぶどう)를 맛 본적이 있다. 키테 1층 우체국도 가볼만하다. 우체국에서만 살 수 있는 기념품들이 있어서다. 우체통 모양의 풀은 아이들 선물아이템으로 좋다. 연초에는 그림책 우표를 파는데, 스테디셀러 그림책의 우표는 금방 동이 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2층과 3층의 박물관 전시도 눈여겨 볼만하다. 무료지만 전시수준이 상당히 알차기 때문이다. 갈 곳 중에는 6층의 옥상정원인 키테 가든도 있다. 도쿄역사와 신칸센을 비롯해 국영열차와 민영열차가 오고가는 모습을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개성이 넘치는 가게들과 매력적인 스폿을 둘러보는 것도 재밌지만 키테를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전형적인 편집숍인 마루노우치리딩스타일(MARUNOUCHI READING STYLE)이 있어서다. 리딩스타일은 책을 중심으로 흥미롭고 재미난 잡화들로 꾸며져 있다. 생일 문고라는 서가에는 나와 생일이 같으나 연도는 다른 유명한 작가의 책이 포장지에 쌓여 있었다. 생일 선물 아이템으로 괜찮았다. 난 식구들의 생일마다 해당 작가의 이름을 하나하나 찾아보았다. 이렇게 궁금증을 유발하여 저자와 독자를 연결하는 마케팅이 돋보였다. 편집숍 한 쪽에는 눈길을 끄는 까페가 있었다. 책과 콜라보로 운영되는 까페로 책 속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인테리어와 메뉴를 기간별로 재구성하고 있었다. 호기심을 일으키고 재미있는 뭔가를 곳곳에 채운 이곳도 한 번 발들이면 좀처럼 빠져 나오기 힘들다.
해인은 도쿄 역에서 일직선으로 뻗은 길을 따라 코쿄가이엔(皇居外苑)까지 퀵보드 타는 것을 좋아했다. 가는 길에 만나는 와다쿠라분수공원(和田倉噴水公園)도 빠지지 않고 들른다. 난 넓은 잔디밭과 곰솔나무가 가득한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 좋았다. 공원의 소나무는 마치 분재처럼 잘 다듬어져 있다. 소나무들은 볼 때마다 ‘참 일본답다!’ 하며 놀라곤 했다. 어느 날은 해자를 따라서 고쿄히가시교엔(皇居東御苑)까지 갔었다. 황실정원인 이곳은 에도성의 유적과 잘 손질된 나무와 식물, 꽃으로 가득한 일본식정원이다. 넓고 아름다운 정원 곳곳을 둘러보고 나면 언제나 그렇듯 마음엔 여유로움이 핀다.
도쿄 역과 주변으로는 아름다운 미술관도 여럿 있다. 나에겐 도쿄스테이션 갤러리와 미츠비씨이치코칸 미술관(三菱一号館美術館)이 그랬다. 이치코칸 미술관에선 당시 ‘레오나르도다빈치와 미켈란젤로' 전시가 있었는데 해인도 관심을 보여 함께 관람을 했다. 미술관을 나와 출출한 배를 채우려고 마루노우치 브릭스퀘어를 둘러 보던 중 까페 1894가 눈에 들어왔다. 알고 보니 미술관내 까페였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서양식의 우아하고 품위 있는 분위기가 마음에 쏙 들었다. 해인도 나처럼 오랜 세월을 품고 있는 공간을 좋아한다. 대기 시간이 무려 40분이었지만 둘은 기다림을 선택했다. 노닥노닥하며.
마루노우치 일정은 대부분 마루젠(MARUZEN) 서점에서 마쳤다. 마루젠 마루노우치의 컨셉은 ‘Book Museum’이다. 그만큼 규모가 크고 볼 것이 많고 아름다웠다. 없는 책이 있을까 싶은 만큼 분야별로 많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특히 외국서적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어린이 서가는 3층에 위치했는데, 전형적인 서점의 분위기를 바탕으로 이것저것 볼거리가 많고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북큐레이션이었다.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서가가 있었고, 그림책 캐릭터 인형이나 소품들이 책과 어우러져 관심을 끌었고, 아동도서 담당자가 소개하고 추천하는 도서와 그 책에 관한 짧막한 메모들에 눈길이 갔다. 아동서 담당자를 만나 그림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자 세 권의 일본 그림책들과 그 각각의 원서를 함께 보여 주었다. 덧붙이는 말이 4층에는 영어 어린이 책 코너가 따로 있다고 했다. 안내를 따라 가보니 영어 그림책과 동화책도 적지 않았다. 150년 된 마루젠 마루노우치점은 영어책까지 포함하면 일본에서 가장 많고 다양한 어린이 책을 보유한 서점이 아닌가 싶다. 해인은 마루젠에서의 시간을 편안히 즐기는 편이다. 그림책을 봤다가 캐릭터 상품이나 소품이나 장난감 등에도 관심을 두었다가 문구류를 구경하는 것도 좋아했다. 덕분에 난 내 시간을 비교적 넉넉히 가질 수 있었다. 마루젠에 오면 의례적으로 가는 곳이 있다. 서점내 M&C 까페가 그곳인데, 창가 자리에서 도쿄 역을 오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하야시라이스나 디저트를 먹는 즐거움이 크기 때문이다. 기차와 그림책. 그 둘을 모두 즐길 수 있는 마루젠에서의 추억이 깊다.
1. <개구리와 두꺼비가 함께> 아놀드 로벨(지은이), 엄혜숙(옮긴이), 비룡소(출판)
2. <내가 아빠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아세요?> 샘 맥브래트니(지은이), 아니타 제람(그림), 김서정(옮긴이), 베틀북(출판)
* 마루젠 마루노우치점(MARUZEN 丸の内本店): 연중무휴, 오전 9시~오후 9시.
〒100-8203 東京都千代田区丸の内1-6-4 丸の内オアゾ1階~4階
* 키테 마루노우치(KITTE): 연중무휴, 오전 11시~오후 9시(일,공휴일 8시까지)
〒100-7090 東京都千代田区丸の内二丁目7番2号
* 류큐시장 야치문(琉球市場やちむん): 연중무휴, 오전 10시~오후 9시
키테 마루누우치 지하 1층, 키테 그랑쉐(KIITE GRANCHE)
* 마루노우치리딩스타일(MARUNOUCHI READING STYLE): 키테 영업시간과 같음.
〒100-0004 東京都千代田区丸の内2-7-2 KITTE 4F
* 도쿄 스테이션 갤러리: 월요일 휴무, 오전 10시~오후 6시(금요일은 8시까지)
〒100-0005 東京都千代田区丸の内1-9-1
* 미츠비씨이치코칸 미술관(三菱一号館美術館): 월요일 휴무, 오전 10시~오후 6시
〒100-0005 東京都千代田区丸の内2-6-2
* 까페 1894: 미츠비씨이치코칸 미술관내 까페, 화요일 휴무, 오전 11시~오후 11시
대기가 30, 40분은 기본인데도 기꺼이 차례를 기다리는 고객이 많은 곳.
* 고쿄가이엔(皇居外苑):황실에 인접해 있는 공원
〒100-0002 東京都千代田区皇居外苑1-1
* 고쿄히가시교엔(皇居東御苑):황실의 정원
〒100-8111 東京都千代田区千代田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