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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에서 보다]중요한 사실

오모테산도 크레용하우스

by 연화향

나는 나, 너는 너

『중요한 사실』,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글), 최재은 (그림), 최재숙 (옮김), 보림(출판)


그림책 워크숍 할 때 내가 빠뜨리지 않고 소개하는 책 중에 하나가 <중요한 사실>이다. 이 책의 원서를 도쿄 그림책전문서점 ‘크레용하우스(Crayon house)’ 스텝에게 추천 받았다. 엄마가 읽으면 좋을만한 그림책으로 말이다. <The Important Book>이 한글판으로 <중요한 사실>이란 걸 처음에는 몰랐다. 표지 그림이 좋아서 열어 보고 글을 읽어 보고서야 이것이 원서라는 것을 알았다.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쁜 맘으로 그림책을 들고 서점의 창가 자리에 앉았다. 여린 햇살들이 내 주변으로 모여 앉았다. 덕분에 따뜻하고 포근했다.


숟가락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는 거야.

숟가락은 작은 삽처럼 생겼고, 손에 쥐는 것이고, 입에 넣을 수 있고,

숟가락은 납작하지 않고, 숟가락은 오목하고, 그리고 숟가락으로 뭐든지 뜨지.

하지만 숟가락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다는 거야.


이처럼 그림책은 숟가락에서 시작해서 데이지, 비, 풀, 눈, 사과, 바람, 하늘, 신발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얘기하고 너에 관한 중요한 사실로 마무리 한다. 그 다음 장에는 액자가 하나 그려져 있는데, 자신을 비춰볼 수 있도록 거울이 붙어있다. 이 그림책은 거울에 비춰진 각자의 얼굴을 통해 완성이 된다는 의미이다. 워크숍을 하다보면 아이건 어른이건 이 거울에 호기심을 갖고 꼭 들여다본다. 거울에 비취진 내가 어딘가 조금 다르게 보인다고 했다. 너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너는 바로 너라니까 갑자기 내가 낯설게 느껴지기 때문이리라. 불쑥 내 존재 자체에 주목하게 되는 것이 어색해서 일수도 있다.


해인과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가 기억났다. 그때 해인은 네 살이었는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이렇게도 보고 저렇게도 보다가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웃기도 했었다. 엄마랑 같이 보고 싶다고 해서 둘이 함께 거울을 보았다.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 평소와 다르게 보였다. 한참 거울로 장난을 치다가 “해인이 모습이 어떻든 해인이 무엇이든 무엇이 되어 있든 해인은 해인이고, 마찬가지로 엄마는 엄마야!”라고 하며 해인을 꼬옥 안아주었다. 그때 뭔가 분명해지는 느낌이 신선하게 다가왔고 곧이어 잃었던 뭔가를 되찾은 것처럼 편안해졌었다. 크레용하우스 한 켠에서 그림책을 보고 있는 해인에게 다가가 그때를 기억하냐고 물었더니 잊었단다. 하지만 괜찮다. 해인의 마음 한 구석에는 살아 있을테니까.


그림책 <중요한 사실>은 나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써 보게 한다. 그게 과연 무얼까? 평소에 잊고 사는 나인데 거기다 중요한 사실까지 생각해야 한다. 한참 머리가 복잡해지더니 갑자기 근원적인 질문이 들었다. 나는 누구인가? 누구의 엄마, 직업, 학벌, 재산, 재능, 외모가 나일까? 그것은 분명 아니다. 너는 너이고 나는 나란 것은 있는 그대로의 너 또는 너라는 뜻이기에 맞지 않다. 그렇다면 내 생각이나 신념이나 가치관이 나일까? 그림책은 계속해서 본질적인 나, 존재 그 자체인 나에 대해 주목하게 했다. 얼마 만에서야 진짜 ‘나’ 란 ‘감정을 알아차리고 느끼는 나’란 결론에 다다랐다. 내 마음이 나였던 것이다. 이를 깨닫고 내 마음에 집중하자 그동안 잃어버렸던 내가 가슴 한 가운데로 돌아왔다. 건강해진 느낌이 참 좋았다. 하늘을 날 것만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리고 난 나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이렇게 썼다.


나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내가 그림책을 읽고 마음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는 거야.

난 그림 보는 걸 좋아해. 고흐 같은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을 좋아하지.

책을 보는 것도 좋아해. 특히 그림책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설레고 행복하지. 그림책에서 새로운 무엇인가를 발견할 때 큰 기쁨을 느껴.

타인의 마음을 공감하는 것만큼 내 마음도 공감하고 공감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 그래서 그림책으로 강의나 워크숍을 하기도 하고, 크고 작은 모임을 이끌어 가고 있어.

하지만 나에 관한 중요한 사실은 내가 그림책을 읽고 마음을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는 거야.



크레용하우스(Crayonhouse)

도쿄 오모테산도에 위치한 크레용 하우스는 해인과 내가 처음으로 찾았던 그림책 서점이었다. 도쿄 지리에도 구글맵에도 익숙지 못했던 난 한참동안 길을 헤매며 해인을 고생시켰다. 겨우 찾은 크레용하우스는 해인이 마음에 쏘옥 들었고 덕분에 나도 안심하고 서점을 돌아볼 수 있었다. 서점엔 책을 보러오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많았지만 그 누구도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폐가 된다 싶으면 연신 ‘스미마생(죄송합니다의 일본말)’이라 했다. 덕분에 서점 안은 쾌적한 분위기가 유지됐고, 모두가 그림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크레용하우스는 일본 서점의 첫인상이 되었다. 서로를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모습에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나와 해인이 보면 좋을만한 그림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을 때, 크레용하우스 스텝은 약 10여권의 책을 가져다주었다. 그 책의 영문판이 있는 경우에는 그것들로 가져다주었다. 외국인 고객을 위해 다양한 원서까지 보유한 점 또한 놀라웠다.(이하 크레용하우스에 대한 이야기는 기존 글에서, 링크 참조)

https://brunch.co.kr/@mettaa0507/5


길 찾느라 힘들어서 사진찍기 거부하는 해인.
그림책을 보는 해인.
크레용하우스 서점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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