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을 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체인지메이커
해인과 첫 번째 그림책 여행지로 찾은 곳은 오모테산도에 위치한 크레용하우스(Crayon hous)였다. 도쿄 지리에도 구글맵에도 익숙지 못했던 난 한참동안 길을 헤매며 해인을 고생시켰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찾은 크레용하우스! 입구에서 기념사진을 찍자고 해인에게 요청하자 주저 안고 싶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왜 아니겠는가! 그렇게 고생한 저에게 위로는커녕 사진부터 찍자 했으니 말이다. 뒤틀어진 아이의 마음을 다독이고 서점에 들어서자 그림책 세상이었다. 해인의 눈은 호기심으로 바뀌었고, 어느 새 평대에 놓인 ‘우당탕탕 야옹이’ 시리즈의 원서를 보자마자, 대단한 것을 발견한 듯 내게 알리고 곧 책을 열어 보았다. 그제야 난 마음을 놓을 수 있었고, 감탄사를 연발하며 서점을 둘러보았다.
서점엔 책을 보러오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많았지만 그 누구도 서로에게 방해가 되지 않았다. 그들은 조금이라도 폐가 된다 싶으면 연신 ‘스미마생(실례합니다)’이라 했다. 덕분에 서점 안은 쾌적한 분위기가 유지됐고, 모두가 그림책에 집중할 수 있었다. 크레용하우스는 일본 서점의 첫인상이 되었다. 서로를 존중하고 예의를 지키는 모습에 놀랍기도 하고 부럽기도 했다.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의 그림책을 원서로 만났을 때의 기쁨이란 무척 컸다. 그러나 곧 일본어를 읽지 못해 답답하기 시작했다. 문득 해인은 어떨까 다가가 보았다. 그림만 보는데도 재미있다는 아이를 따라 나도 그림을 주목해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어색했는데 볼수록 그림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상상하게 되었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어린 시절 그때처럼! 지금 내 아이처럼!
어느 덧 시간은 훌쩍 지났다. 여전히 보고 싶은 그림책이 많았지만 우린 2층으로 자리를 옮겼다. ‘목재장난감전문점’에는 장남감은 물론 친환경 인형, 미술용품, 모빌, 블록, 악기 등등 아이들에게 안전하고 유익한 것들이 모여 있었다. 개중에는 영국의 장애우들이 만든 장난감도 있었고, 장애아들의 발달을 돕는 테라피 도구들도 있었다. 특히 내 눈에 띄는 건 다양하고 특별한 여러 종류의 크레용이었다. 크레용은 아이들이 태어나 처음으로 손에 쥐고 자신을 표현하는 도구가 아닌가. 또한 여러 가지 색들이 고유의 빛으로 존재한다. 나라가 다르고 종교가 다르고 피부색이 달라도, 장애를 가진 아이들까지 세계 모든 어린이들은 있는 그대로 존중받아야 할 권리가 있음을 크레용을 통해 전하고 있는 것 같았다. 또한 아이들이 나다움을 꽃 피우며 당당하게 살아가기를 바라는 크레용하우스의 염원 같았다.
3층에는 영유아와 어린이, 엄마들에게 필요한 모든 제품들 중에 유기농과 친환경, 윤리적 소비라는 까다로운 거름망을 거친 품목들로 채워져 있었다. 여기에 생활에 필요한 잡화들까지 유기농이고, 심지어 고양이와 개들을 위한 식품과 용품까지 유기농이었다.
매장 안쪽엔 여성 전문서점 ‘미즈 크레용하우스’가 있다. 육아와 교육, 요리는 기본이고, 마음을 다루는 책도 있고, 전쟁과 평화를 주제로 한 책, 원전을 소재로 한 책도 있었다. 젠더페미니즘이란 분야도 흥미로웠고, 여성의 관점에서 재해 지원이라는 책도 특별했다.
미세스가 아닌 미즈 크레용하우스라고 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서가에 꽂힌 책들이 무엇을 말하려는지도. 약자가 약자로 존중받으며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다함께 만들자는 크레용하우스의 외침이었다.
지하 1층 ‘테라스 오가닉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아쉽게도 식사 메뉴는 다 팔려서 맛볼 수 없었다. 대신 채식만두와 샌드위치를 주문해 맛을 보았는데 재료 본연의 감칠맛이란 이런 거지 싶었다. 레스토랑 옆에는 과일과 채소 등 식재료를 파는 가게가 있었다. 살펴보니 유기농과 공정무역, 윤리적 소비란 가치를 품고 있는 것들로만 채워져 있다. 크레용하우스는 미래에 지구를 살아갈 아이들을 위해 현재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먹어야 하는지 철학이 담긴 식단을 짜고 이에 부합하는 식재료들만 사용하며 팔고 있었다.
크레용하우스는 판매 방식도 주목할 만하다. 취급되는 상품은 누가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 졌는지 알 수 있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안정성과 환경을 보호할 수 없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라고. 또한 크레용하우스는 반품을 하지 않는다. 굳이 베스트셀러가 아니라도 좋다고 선택한 책은 책임지고 판매를 한단다. 이것이 가능하기 위해 스태프들은 한 달에 한 번씩 ‘신간회의’를 하여 읽고 검토한 신간들을 서로 서로에게 설명하고 추천한다. 그래서인가 나와 해인을 위한 그림책들을 각각 추천해 달라고 요청하자 10권의 책을 가져다주었다. 한 두 권의 책만을 권하지 않는다는 크레용하우스의 원칙대로 말이다. 그만큼 내겐 선택의 폭이 넓었다. 또한 외국인이라는 점을 감안해 영어 원서나 번역본은 별도로 보여 주었는데, 서점의 스텝들은 어린이책 전문 서점 크레용하우스의 주인이었다.
크레용하우스는 아이들로 북적일 때 행복하다. 아이와 엄마에게 인간과 자연의 좋은 공존이 무엇인지 보고 또 느끼도록 하는 일을 좋아한다. 크레용하우스를 나선 이들이 세계를 건강하고 평화롭게 지켜 나가는 생활 속 실천자가 되는데 안내자이고 싶다. 엄마 손을 잡고 온 아이가 자라서 자신의 아이와 다시 찾는 서점이 되고 싶다. 이처럼 크레용하우스는 자신이 누구이고 자신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이야기 하고 있다. 또한 크레용하우스를 찾는 이들에게 너는 누구인지, 너에 관한 중요한 사실을 무엇인지를 묻는다.
너 자신으로 당당하게 꿋꿋하게 살아가라고 말하는 크레용하우스. 아이와 여성을 비롯해 약자들이 약자로서 존중 받으며 살아가는 세상을 꿈꾸는 크레용하우스. 미래 세대를 위해 지금의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을 실천하는 크레용하우스는 서점을 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체인지메이커(Changmaker)였다. 아이와 떠나는 그림책 여행 일 순위를 꼽으라면 당연 크레용하우스다.
* 참고:
크레용하우스 홈페이지 http://www.crayonhouse.co.jp,
* 크레용하우스(Crayon hous): 연중무휴.
1~3층: 평일 11:00~19:00, 토·일·공휴일 10:30~19:00 / 야채 시장: 10:00~20:00
레스토랑, 광장: 평일 11:00~(LO 21:30) 토·일·축일 10:30~(LO 21:30)
〒107-8630 東京都港区北青山3-8-15
* 테라스 오가닉 레스토랑: 크레용하우스에서는 유기농채식요리를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아이와 함께 하는 여행이라면 이곳에서의 식사를 추천한다.
* 메이지진구교엔(明治神宮御苑): 여름엔 꽃창포로 유명하다. 연중무휴이나 4시 30분(6월)이면 입장을 마감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방문하는 것이 좋다(입장권 500엔). 메이지신궁(明治神宮)을 거쳐 가는 길은 울창한 숲이라 아이들이 마음껏 자연을 만끽하기 좋다.
〒151-8557 Tokyo, Shibuya City, Yoyogikamizonocho 1-1
* 아오야마북센터ABC(青山ブックセンター ABC): 연중무휴, 오전 10:00~오후 10:00
유엔대학 안쪽 지하에 위치한다. 충분히 안쪽으로 들어와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하면 서점에 닿을 수 있다. 규모가 큰 만큼 어린이서적 코너도 상당하다. 디자인이나 예술관련 서적의 비중이 큰 서점이어서 평대에 나와 있는 그림책들도 다른 서점들에서 볼 수 없는 예술성이 높은 그림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야외에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어서 아이들이 도시락이나 간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기 좋다.
〒150-0001東京都渋谷区神宮前 5-53-67 コスモス青山ガーデンフロア (B2F)
* 산요도 서점(山陽堂書店): 월, 목, 토요일,
산요도 서점은 1891년에 개점하여 2차 세계대전 도쿄 공습에도 무너지지 않고 현재까지 126년을 이어오고 있다. 작지만 저력있는 이 서점은 월, 목, 토요일만 문을 연다. (오모테산도역 A4 출구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보인다.)
〒107-0061 東京港区北青山3-5-22
* 아오야마파머스마켓(Farmer's Market @UNU):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오전 10:00~오후 4:00
“어서오세요(이럇샤이메세)!” 보다는 “안녕하세요(오하이오)!”로 인사한다. 이를 운영하는 회사 ‘미디어서프 그룹’의 검증을 받은 농가들이 매주 '아오야마 유엔대학' 앞에 모여 자신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한다. 또한 장작불 오븐에서 구운 빵, 직접 담근 와인, 빵이나 과자에 얹어 먹는 후추오일, 과일과 야채 피클, 현미 맥주, 곡물 커피까지 판매하고 있다. 한편에 마련된 푸드트럭에서는 유기농 음식을 판다. 현미밥과 샐러드, 대두 튀김으로 구성된 '비건 플레이트'나 채식주의자용 햄버거, 아몬드유나 두유로 만든 스무디 등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음식을 한 자리에서 맛볼 수 있다. 단, 파머스 마켓은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열린다. (오모테산도역 B4 혹은 B2 출구에서 7분~10분, 유엔대학 앞)
〒150-0001 東京都渋谷区神宮前5-53-70
* 커뮨세컨드(Commune2nd): 연중무휴, 오전 11시 ~ 오후 9:45
아오야마파머스마켓을 운영하는 ‘미디어서프 그룹’에서 함께 운영하는 대안 공간.‘ 커뮨246’으로 알려졌으나 2017년부터 소셜 메시지를 더하여 커뮨2nd로 재 오픈했다. 이곳에는 푸드카트(Foodcart)를 비롯해 까페와 셰어오피스, 에어비앤비 숙소, 자유대학도 있다. 연중무휴인 이곳은 밤 10시까지 영업을 하니 맘에 드는 요리를 선택해 저녁을 먹으며 느긋하게 즐기면 좋겠다.(오모테산도역 A4 출구 도보 5분) 홈페이지: http://commune2nd.com)
〒107-0062 東京都港区南青山3丁目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