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젠 마루노우치점(丸善 丸の内本店)
<개구리와 두꺼비가 함께>, 아놀드 로벨 (지은이) 엄혜숙 (옮긴이) 비룡소
<개구리와 두꺼비가 함께>는 순진무구하고 엉뚱한 두꺼비와 이해심이 깊은 개구리가 펼치는 모험과 우정을 담은 동화책이다. 도쿄의 여러 서점이나 책방들에서 해인에게 좋은 그림책으로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면 가져다주는 책이기도 했다. 이 책은 시리즈 중에 한권으로 처음 추천 받은 곳은 마루젠 마루노우치점(丸善 丸の内本店)에서였다. 다행히 이 책들은 원서로 볼 수 있었고, 어렵지 않은 영어로 표현되어 있어서 나는 물론 해인도 맘껏 즐길 수 있었다. 네 권의 시리즈 중에 특히 해인이 좋아하는 것이 <개구리와 두꺼비가 함께>였다.
개구리가 두꺼비를 자전거에 태우고 즐거운 표정으로 어디론가 향하는 표지 그림은 이 둘의 ‘함께’가 얼마나 행복한 지를 보여 준다. 계획표· 꽃밭가꾸기· 과자소동· 용감한 개구리와 두꺼비· 꿈. 동화책은 이렇게 다섯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되어 있는데 해인은 ‘계획표’를 좋아했다.
두꺼비는 자신이 해야 할 하루 일과를 노트에 적는다. 일어나기, 아침 밥 먹기, 옷 갈아입기, 개구리 집에 가기, 개구리와 산책하기, 점심 먹기, 낮잠 자기, 개구리와 놀기, 저녁 먹기, 잠자기. 계획표라고 할 만한 일도 없는데 두꺼비는 펜으로 줄을 그으면서 리스트를 지워나간다(이 대목에서 해인과 난 웃음이 터졌다). 두꺼비는 그런 아이였다. 그렇게 하나하나 적은대로 실천하던 두꺼비는 개구리와 산책 도중 강한 바람을 만났고, 이 때문에 계획표가 날아가 버린다. 이걸 어쩌나! 당황해 하는 두꺼비를 보자 개구리는 “서둘러! 달려가서 잡아야 해” 라고 했지만, 두꺼비는 “안 돼! 난 할 수 없어.”라며 소리친다. 쫓아가는 것은 오늘 해야 하는 리스트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 두꺼비를 대신해 계획표를 잡으려고 최선을 다한 개구리는 결국 빈손으로 돌아와 두꺼비에게 사과 한다. 계획표 없이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며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마는 두꺼비! 개구리는 그런 두꺼비 옆에 조용히 앉는다. 해가 지고도 오랜 시간동안 두꺼비 곁을 지켰던 개구리는 이젠 정말 자러 가야 할 시간이고 말했다. 그 덕분에 ‘잠자기!’를 기억해 낸 두꺼비는 이를 땅에다 적고 지운다. 비로소 편안해진 두꺼비는 그 자리에서 바로 잠이 들었고 개구리도 곁에서 잔다.
지금 내 아이가 바로 두꺼비 시절을 살고 있다. 천진난만함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느끼고 행동하고 있다. 이러한 두꺼비에게 필요한 건 ‘함께’ 할 줄 아는 개구리다. 여기서 개구리는 친구지만 내겐 엄마란 생각이 든다. 해인은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지 않고 여행을 했기 때문에 하루 종일을 나와 보냈다. 자기 같은 두꺼비 친구가 없었던 해인은 잠을 자는 시간을 빼고 항상 개구리 같은 엄마를 바랐다. 그러나 내가 집안일을 하며 해인을 보살펴야 할 때나, 해인을 데리고 낯선 도쿄의 골목골목을 찾아 다녀야 할 때는 개구리처럼 ‘함께’할 수 없었다. 오히려 괴물이 되어 있거나, 무심함으로 상처를 주거나, 불같이 화를 내었다. 해인이 눈물을 보이면 그때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실수를 인정하고 빨리 사과하고 해인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내가 느끼는 감정을 솔직하게 나누었다. 그러나 곧이어 후회와 자책이 밀려왔다.
두꺼비가 엉뚱하게 행동할 때나 고집을 피울 때, 억지 주장을 펼칠 때, 계속 화를 내거나 슬퍼할 때 개구리가 어떻게 ‘함께’ 할 수 있었을까 생각해 본다. 두꺼비 같은 친구가 개구리는 힘들지 않았을까? 개구리도 때로는 화나지 않았을까? 다시 동화책을 찬찬히 읽어 본다.
개구리는 두꺼비의 어떤 마음도 있는 그대로 바라보았다. 마음은 그것이 무엇이든 틀렸을 리 없다는 걸 개구리는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개구리는 두꺼비의 마음만 공감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비추어진 자신의 마음도 옳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개구리는 두꺼비가 어떤 마음이었을지 생각해보고 상상할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좁았던 마음이 확하고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해인에게 나 스스로에게 세웠던 가시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어느 새 난 해인의 개구리가 되어 있었다. 물론 또 다시 고함쟁이 엄마가 되겠지만 그때마다 개구리를 떠올리자.
마루노우치는 해인과 내가 즐겨 찾던 곳 중에 하나다. 너무 덥거나 비가 많이 올 때는 도쿄 역 지하일대에서 놀면 되었다. 볼거리와 먹거리가 넘쳐 나는 곳이라 반나절이 쥐도 새도 모르게 지나간다. 도쿄 역 남쪽 출구로 나와 왼편으로 그 옛날 우정국 건물이었던 키테(KITTE, キッテ)에도 자주 갔었다. 개성이 넘치는 가게들을 둘러보는 것도 재밌지만 전형적인 편집숍인 마루노우치리딩스타일(MARUNOUCHI READING STYLE)이 있어서다. 이곳도 발들이면 좀처럼 빠져 나오기 힘든 곳이다. 해인은 도쿄 역에서 일직선으로 뻗은 길을 따라 일본 황실공원까지 퀵보드 타는 것을 좋아했다. 난 잘 다듬어지고 가꾸어진 황실 공원을 산책하는 것이 좋았다. 조금 더 남쪽으로 가다보면 116년의 역사를 간직한 히비야공원(日比谷公園)까지 닿을 수 있었다. 도쿄 역과 주변으로는 아름다운 미술관도 여럿 있다. 나에겐 도쿄스테이션 갤러리와 미츠비씨이치코칸 미술관(三菱一号館美術館)이 그랬다. 마루노우치 일정은 마루젠에서 마쳤다.
마루젠 마루노우치의 컨셉은 ‘Book Museum’이다. 그만큼 규모가 크고 품위 있고 아름다웠다. 없는 책이 있을까 싶은 만큼 분야별로 많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특히 외국서적들이 눈에 띄게 많았다. 어린이 서가는 3층에 위치했는데, 전형적인 서점의 분위기를 바탕으로 이것저것 볼거리가 많고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북큐레이션이었다. 스토리텔링이 돋보이는 서가가 있었고, 그림책 캐릭터 인형이나 소품들이 책과 어우러져 관심을 끌었고, 아동도서 담당자가 소개하고 추천하는 도서와 그 책에 관한 짦막한 메모들이 눈길이 갔다. 아동서 담당자를 만나 그림책을 추천해 달라고 부탁하자 세 권의 일본 그림책들과 그 각각의 원서를 함께 보여 주었다. 덧붙이는 말이 4층에는 영어 어린이 책 코너가 따로 있다고 했다. 실제로 보니 영어 그림책과 동화책도 적지 않았다. 150년 된 마루젠 마루노우치점은 영어책까지 포함하면 일본에서 가장 많고 다양한 어린이 책을 보유한 서점이 아닌가 싶다. 이 책 속에 쌓여 마음에 가는 그림책들을 보는 것도 즐겁지만, 점내 M&C 까페 창가에서 도쿄 역을 오가는 기차를 바라보며 먹었던 하야시라이스도 잊지 못한다.
* 마루젠 마루노우치점(丸善 丸の内本店): 연중무휴, 오전 9시~오후 9시.
〒100-8203 東京都千代田区丸の内1-6-4 丸の内オアゾ1階~4階
* 키테 마루노우치(KITTE): 연중무휴, 오전 11시~오후 9시(일,공휴일 8시까지)
〒100-7090 東京都千代田区丸の内二丁目7番2号
* 마루노우치리딩스타일(MARUNOUCHI READING STYLE): 키테 영업시간과 같음.
〒100-0004 東京都千代田区丸の内2-7-2 KITTE 4F
* 도쿄 스테이션 갤러리: 월요일 휴무, 오전 10시~오후 6시(금요일은 8시까지)
〒100-0005 東京都千代田区丸の内1-9-1
* 미츠비씨이치코칸 미술관(三菱一号館美術館): 월요일 휴무, 오전 10시~오후 6시.
〒100-0005 東京都千代田区丸の内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