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바로 접니다.
내가 회피형 성향을 극복하고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게 된 건 8할이 돈 때문이다. 돈 덕분이라고 해야하나? 유년기의 결핍은 성인이 된 이후에도 사람의 삶에 끈질기게 영향을 준다. 결과적으로 좋게 풀리는 경우가 없는 건 아니지만, 좋은 결과에 닿기까지의 과정에서 불필요한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오랫동안 시달리는 것도 사실이다. 그 중심이자 씨앗이 되는 결핍의 정체를 명확하게 아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으니 다들 일생의 몇 몇 순간은 귀신에 쫓기는 듯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고 추진력을 조절하지 못해 번아웃을 마주하기도 한다.
내 결핍은 어느 정도 충족되고 나서야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가진 결핍은 경제적인 부분에 있었다. 돈의 부재는 어린 시절 나의 모든 불행의 원인처럼 보였다. 남들은 부모가 월에 수백씩 들여도 못만들어낸다는 성적을 공짜로 만들었는데도 학기에 한 번만 내면 될 등록금 수백만원이 없어서 어차피 입학하지 못할거라는 현실은 마치 통째로 삼켜야만 하는 밤송이같았다. 돈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저절로 해결될 것 같았다. 세상 일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걸 눈치챈 지금도, 그 결핍은 무언가 불길한 것이 죽어 나자빠진 자리에 터를 잡은 지박령마냥 맴돈다.
4년 내내 장학금을 받고 대학을 다녔는데도 생활비와 월세, 보증금, 교재비와 용돈을 스스로 충당하느라 생활이 넉넉치 않았다. 과외로 어찌어찌 메꿔가며 한 순간도 안 열심히 산 날이 없었지만 이런 저런 일들이 지독하게 안 맞아떨어지는 어떤 날엔 통장 잔고가 300원밖에 안 남기도 했다. 과외비가 들어오려면 이틀이 남았다는 사실이 또 다른 밤송이가 되었다.
직업을 얻자 마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가장 악착같이 돈을 모았다. 내가 타고 태어난 본성은 그리 꼼꼼하지도 철저하지도 못한 성미다. 허술하고 덤벙대는 일이 많아서 타고난 대로만 살았으면 아마 본의아니게 잃는 돈이나 새는 돈이 생겼을 것이다. 타고난 성질과는 반대로 눈을 부릅 뜨고 단 한 푼도 못 빠져나가게 움켜쥐며 살려니 스트레스가 적지 않았다. 그래서 최대한 '현타'를 겪지 않으려고 내 감정이 어떤지에는 일부러 무심하게 시간을 흘려보냈다. 월급에서 숨 쉬고 사는데 필요한 돈을 뺀 나머지는 시간만 보내면 쌓였다. 한 푼 두 푼 아낀 것이 모여 꽤나 덩치를 불려가는 내내 지루하고 답답했지만, 그래도 결과는 확실했다.
평생 놀고 먹을 만큼의 돈은 아니지만 애초에 내 결핍은 '평생 놀고 먹지 못해서' 생긴 게 아니었다. 대학원에 가고 싶어지면 지금 당장이라도 일 때려치우고 달려가도 내 입 먹이고 내 배 불리고 내 등 덥힐 수 있다는 가능성. 엄마나 동생이나 내 신랑이 아프면 당장의 병원비와 간병비가 마련되어 있다는 자신감. 나도 내 소중한 사람들도 당장 필요한 수백, 수천의 돈 때문에 막막해하며 울지 않아도 된다는 안심. 내 결핍은 여기에 있었다.
해변가를 산책하다가 뒤를 돌아보면, 나는 곧게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모래에 남겨진 발자국은 제법 이리저리 흔들려 있다고들 한다. 모래톱이 끝났다고 시커먼 바위들이 없는 건 아니겠지만, 단단한 바닥을 만났으니 두 발을 딛고 바로 설 수 있었다. 발이 빠지는지 안 빠지는지 바닥을 쳐다보지 않아도 되는 순간 고개를 들 수 있었고, 고개를 들고 나니 비로소 다른 사람과 눈을 마주칠 수 있었다.
제목에 쓴 것처럼 '샀다'는 표현이 온전하게 딱 들어맞는 건 아니다. 무언가를 사면 댓가로 지불한 것이 내 수중에서는 사라져버리니까. 내 결핍이 비교적 충족하기 쉬운 것이었다는 건 크나큰 행운이고 감사한 일이다. 물론 밑빠진 독처럼 어느날 갑자기 쏟아져버릴 수도 있겠으나, 한 번 채워본 것은 또 채울 수도 있다는 확신이 등을 떠받치는 한 언제든지 얼마든지 다시 시작하면 되는 일이다. 지금은 깨진 독도 열심히 막아주는 예비신랑이라는 두꺼비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