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열 번 말해보세요. 그러다 문득. 영하의 온도에서 주춤거리는 자동문을 기다리다가 문득. 피가 거꾸로 흐르면 시계도 거꾸로 돌지 않겠어요. 주먹만 한 심장이 작아졌다가 커졌다가. 피를 거꾸로 쏟아내면서. 정맥은 동맥이 되고, 동맥은 정맥이 되고. 그러면 사람은 땅에서 나와 배로 들어가고. 태어날 땐 조용히 조금은 엉망이 된 얼굴로, 죽을 땐 힘차게 오밀조밀한 모습으로. 두 줄은 고요히 꺼져가는 생명을 알리고. 시작에 슬퍼하다가 끝에는 기뻐하겠죠. 세상 예쁘겠다.
세상을 열 번 말해보세요. 그러다 문득. 사람 가득한 서점 계산대, 답답한 할아버지가 늘인 줄을 기다리면서 문득. 고드름 끝이 뭉뚝해지지 않고 내내 날카로우면 액자 속에서 살아가지 않겠어요. 아무것도 만들지 않고 묻히지 않고. 고작 삼천 원 짜리 책갈피 하나 사러 수만 개의 종이책이 쌓여 있는 곳에서 복잡한 계산 하지 않고. 말도 잘 주워듣고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없이. 김 씨, 통닭 하나에 삼천 원이야. 집 가서 따습게 먹어. 이렇게. 실랑이 없이 끝났겠죠. 세상 예쁘겠다.
세상을 열 번 말해보세요. 그러다 문득. 평소보다 해가 더딘 어느 늦여름 새벽, 고요한 나무들을 훑어보고 매미들의 행방을 고민하다 문득. 주름진 배를 짜내며 힘을 주던 성가신 매미들이 돌연 한 밤에 여름 내내 없었다던 듯 멸종하면, 기묘한 허전함이 남지 않았나요. 그러니까 갖은 낭비로 기억하면서, 눈을 감고, 규칙적인 가슴의 오르내림이 멈추고, 귀가 먹먹해지고. 의사의 선고를 뒤로한 채 모두들 귀 앞에 모여서 부족하고 아쉬운 말을 밀어 넣는 거겠죠. 세상 예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