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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잎새 Oct 22. 2023

오로지 젖, 젖, 젖

이런저런 모유수유 이야기

"저 입 좀 봐. 어쩜 저리 귀여울 수가 있어. 내가 저 입모양 보려고 돌까지 젖을 먹였다니까."


강변 산책을 하다가 벤치에 앉아 수유를 하던 날이었다. 근처에 앉아 계시던 아주머니 한 분이 친구와 이야기 나누시는 소리가 들렸다. 젖을 찾아 삐죽거리며 움직이는 막내 딸내미의 입을 보며 하시는 얘기였다.


내 눈에만 귀여운 게 아니었구나.


슬쩍 웃으며 딸내미가 젖 빠는 모습을 한 번 더 쳐다보게 되었다. 다시 봐도, 몇 번을 봐도 귀엽다. 중독성 있는 귀여움이다. 잠투정을 부리고, 온갖 떼를 쓰다가도 젖을 물면 얌전히 품에 안기는 모습은 사랑스럽고, 그때만큼은 온 세상이 고요하고, 평온하게 느껴진다. 젖 빨고 있는 아기와 스킨십을 하는 것도 기분 좋은 일 중 하나다. 그래서 셋째가 돌이 지난 지금까지 여전히 모유수유를 하고 있기도 하다.





별의별 모유수유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 모유수유에 대해서는 고민을 전혀 하지 않았다. 애를 낳으면 당연히 젖이 나오는 것, 그냥 자연스러운 생리현상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니 만만하게 볼 일이 아니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아기는 내 배 위에서 젖을 찾아 얼굴을 움직이다가 오물오물 젖을 물었고, 그렇게 모유수유를 시작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젖이 차서 가슴이 부풀어 오르기는 하는데, 빠는 힘이 약해서 젖이 잘 빠지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슴은 가슴대로 아프고, 아기는 아기대로 잘 먹지 못해 황달이 심해졌다. 아주 심각한 정도는 아니라 모유수유를 계속 이어가며 몇 차례 황달검사를 하게 되었다. 하루에 한 번 정도 분유와 병행해서 먹는 양을 늘려주라는데, 분유 냄새를 맡더니 고개를 돌려버리던 첫째 아들. 꾸역꾸역 손으로 젖을 짜면서 먹이고, 울 때마다 먹이고, 주야장천 입에 물려주며 몇 주가 지나니 가슴 아픈 것은 조금 줄어드는 것 같았다. 아이는 젖을 빨다가 잠드는 경우도 많았고, 나 역시 수유하다가 잠들거나 조는 경우도 많았다.


모유수유를 시작한 지 4~5개월쯤 되었을 때 가슴마사지를 받게 되었다. 남편 추천으로 말이다. 아주 신세계였다. 물총을 쏘는 것처럼 젖이 발사되는 모습이 부끄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막혔던 유선이 뚫린 것인지 마사지받은 후로는 가슴이 잘 뭉치지 않았다. 덕분에 조금 더 수월하게 모유수유를 이어나갔다. 그리고 그 시기쯤 되면 아기의 빠는 힘이 강해져서 젖이 잘 뭉치지 않아야 하는 것 같다. (그땐 몰랐지만 말이다.)


둘째, 셋째 아이는 젖이 뭉칠 틈이 거의 없었다. 첫째 아들이 30개월쯤 되었을 때 둘째 아들이 태어났다. 그리고 두 아이를 동시에 수유하게 되었다. 동시 수유를 하다 보니 둘째 아들 먹는 양이 턱없이 모자랐는지 황달이 엄청 심해졌다. 광선치료도 받고, 초유는 가급적 둘째에게 주려고 보건소에서 유축기를 빌려 유축을 시작했다. 20~30분 수유를 하고, 이어서 유축을 했다. 그러고 나면 1시간 정도가 훌쩍 지났고, 잠시 눈을 붙이면 또 수유할 시간이 되었다. 모유수유만 할 때보다 잠이 훨씬 부족했고, 유축기를 가슴에 대고 있다가 졸기도 많이 했다. (유축할 땐 진짜 소가 된 기분이었다.) 유축양이 적지는 않았지만, 아이가 그걸 잘 먹진 않았다. 분유도 몇 번 시도했지만, 금방 토해버렸고, 젖 빠는 걸 더 좋아했다. 결국 첫째 아들의 수유 횟수를 과감히 줄여 잘 때만 젖을 빨게 했다. 둘째 아들이 원할 때는 언제든지 젖을 물렸다. 그랬더니 조그맣고 볼품없었던 둘째 아들은 금방 살이 올라 잘 생겨졌고, 황달도 서서히 나아졌다.


셋째 아이를 임신한 사실을 알았을 때는 둘째 아들만 수유 중이었다. 한 번 겪었던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셋째가 태어나기 전에 둘째 아들은 단유를 시도했다. 다행히 한 번에 성공했다. 둘째 아들이 36개월쯤일 때 셋째 딸이 태어났고, 어김없이 황달이 심했다. 하지만 아이는 힘차게 젖을 빨았고, 천천히 회복해 나갔다. (황달은 백일이 한참 지난 후에 완전히 사라진다.) 셋째 역시 오빠들처럼 주야장천 젖을 찾았다. 첫째 때는 수유텀 만들기도 시도해 보곤 했는데, 셋째는 그냥 달라는 대로 줘봤다. 그랬는데도 저절로 수유텀이 생겼다. 한번 먹기 시작하면 몇 십 분씩 빨아댔다. 빨다가 잠들어서 빼면 다시 깨서 먹었다. 잠잘 때가 되었을 때 젖을 빨기만 하면 잠들던 오빠들과는 달리 셋째는 젖을 빨아도 충분히 먹지 않으면 절대 자지 않는다.


모유수유만 몇 년째 하는 중인데도 매번 새로운 일을 겪게 되는 게 참 신기하다.




모유수유를 선호하는 이유


유축을 하던 시기(아주 잠시였지만)에 모유수유의 장점을 절실히 깨달았다. 내 몸뚱이 하나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든지 아이에게 수유할 수 있다는 것! 깨끗한 용기, 적절한 온도, 적당한 양... 다 필요 없다. 그저 내 몸을 내어주면 아이가 먹을 뿐. 젖량을 눈으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아이가 먹고 잘 싼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졸리면 꾸벅꾸벅 조는 게 아니라 누워서 수유할 수도 있다. 그러다 잠 오면 자는 거고 말이다.


모유수유를 하면 나른해지면서 졸린다. 나만 졸린 건 아니고, 아이도 졸린다. 열심히 빨다가 배불러서 졸기도 하고, 빈젖을 빨다가 지쳐서 졸기도 하고 말이다. 그래서 우리 집 삼남매는 모두 젖잠(젖 먹으며 자는 것) 아기로 자랐다.


첫째 때는 '젖잠 아기'에 대한 걱정이 많아서 바꿔보려 노력했지만 쉽지 않았다. 가장 큰 걱정은 이가 썩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젖잠 아기로 자란 둘째(5세)는 아직 썩은 이가 없다. 첫째(8세)는 썩은 이가 제법 많다. 단 것을 먹을 때 8세 아이는 빨아먹고, 5세 아이는 씹어 먹는다. 젖이 아니라 시중에 유통되는 '단 것'에 노출되는 빈도가 썩은 이를 만드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둘째 때부터는 '젖잠 아기'에 대한 걱정 따위 하지 않았다. 쉽게 재울 수 있으니 얼마나 좋아!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받아들였다. 젖 먹다 졸린 건 당연한 일이니까 말이다. 생리현상을 막을 순 없는 일 아닌가.


그런데, 젖잠 아기도 아기 나름인 것 같다. 첫째와 둘째는 젖을 빨기만 하면 잠이 들었지만, 막내는 젖을 먹어도 잘 안 잔다. 잠자리에 누워 젖을 먹어도 에너지를 충분히 발산할 때까지 더 뒹굴다가 잔다. 내가 먼저 잠들기도 하는데, 자다가 깨서 보면 한쪽 구석에 굴러가서 자고 있다.





모유수유보다 더 어려운 것


큰 결심 없이 모유를 시작한 것과 달리 단유는 큰 결심을 해야만 했다. 내게 '단유'는 그만큼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권장하는 간헐적 모유수유 기간은 2년이다. 완모 6개월 이후에는 애착형성을 위한 활동인 셈인데, 밥과 함께 먹는 물처럼 마시는 젖, 심심할 때 심심풀이용 젖, 기분이 별로일 때 달래는 젖, 잠잘 때 먹는 젖 등 아주 다양한 종류의 젖이 있다. 이걸 대체하는 공갈젖꼭지(쪽쪽이)도 있지만, 우리 집 아이들은 한 번도 사용해 본 적이 없다. 아이들이 젖을 요구할 때마다, 장소가 어디든, 젖을 내어주었다.


첫째 아이가 만 2세가 되어갈 때쯤 '단유'에 대해 검색을 했다. 여러 가지 단유 방법을 찾았고, 지인들의 경험담도 참고했지만, 쉽게 결심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고민만 하다가 첫째 아이는 만 4.5세가 되어서야 단유를 했다. 심지어 둘째가 태어난 후, 단유를 시도했다가 며칠 만에 다시 수유를 하기도 했다. 내 우유부단했던 태도가 단유 실패의 원인이었던 것 같다. 둘째 아이는 만 3세가 되는 날부터 젖을 먹지 않기로 약속하고, 한 번에 단유를 했다. 너무 쉽게 받아들여서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그 당시는 잘 때만 먹는 중이었던 터라, 젖 대신 손을 잡고 자는 방법으로 바꿨다. 그래서인지 둘째 아이는 여전히 잘 때 내 손을 잡고 자려한다. 막내는 둘째보다 이른 시기에 단유 하는 게 목표다.  


젖을 끊는다는 건 아이들에게 큰 상실감을 줄 거라 생각했다. 그리고 단유 후에는 잠을 어떻게 재워야 하나, 그것이 제일 걱정이었다. 아이들도 그 정도 상실감은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있었고, 젖을 끊어도 잠은 잘 잤다. 지금 돌이켜보니 참 미련한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줄 수 있는 게 '젖'뿐이어서 집착을 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젖'이 아니어도 줄 것이 많은 엄마가 되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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