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세우기
우리 집에는 '식사 시간은 모두가 함께 만든다'는 원칙이 있다. 그래서 아이들도 각자의 역할이 있다. 첫째 아이는 밥과 반찬을 챙기고, 그릇들의 자리를 찾아준다. 둘째 아이는 수저를 챙겨 각자의 자리에 놓는다. 그러다 가끔 둘이 충돌할 때가 있다. 아빠 자리가 먼저냐, 엄마 자리가 먼저냐 하는 걸로 다투는 것이다.
"엄마부터 놓아야지."
"아니야. 아빠가 먼저야."
"아니야. 엄마가 먼저 태어났으니까 엄마가 먼저야."
"아니라니깐. 아빠가 먼저야."
엄마 먼저라는 둘째와 아빠 먼저라는 첫째. 첫째 말대로 아빠 먼저 챙기는 것이 맞다고 알려줘도 며칠 지나면 또 같은 일이 반복된다. 둘째에게는 아직도 엄마의 서열이 아빠보다 앞서있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우리 가족은 시작부터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겠나.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니 방법을 찾아야지.
나와 남편은 소위 연상연하 커플이었다. 남편이 나보다 여섯 살 어리지만, 같이 살면서 남편이 어리단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연애할 때는 종종 어리고, 온실 속 화초 같은 느낌이 들긴 했는데 말이다. 지금도 외모만 보면 애 셋 있는 유부남으로 보이진 않을지도 모른다. 나야 매일 보는 얼굴이니까 어떤지 잘 모르겠지만, 가끔씩 차려입은 모습을 보면 확실히 젊은 30대 느낌이 난다.
연애를 시작한 건 '착각' 덕분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난 교원연수원에서 연수 만드는 일을 했고, 남편은 초등교사였다. 남편은 내가 일하는 사무실에 오프라인 연수를 들으러 종종 오는 '고객'이었다. 그런 고객님을 연수 모니터링하러 다니면서 외부에서도 종종 마주치게 되었다.
"언제 밥 한 번 먹을까요?"
자주 마주치는 게 반가워서 내가 먼저 제안했다. 남편은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인연이 시작되었다. 사실 남편은 사람 얼굴을 잘 기억하지 못해서 처음엔 내가 누군지도 몰랐다고 한다. 그래서 밥 먹자는 제안을 들었을 때 놀랐고, 작업을 거는 거라 생각했다고 한다.
'이 여자가 나한테 관심이 있구나.'
관심이 있긴 했다. 오프라인 연수를 자주 찾아다니는 사람이라서 궁금했던 것이다. 게다가 내가 모니터링하러 다녔던 것 중 가벼운 연수는 없어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고객님의 나이와 이름은 이미 알고 있는 상태였던 터라 연애 감정으로 접근했던 건 아니었다. 아무리 내가 연하를 만난다고 해도 여섯 살까지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밥 몇 번 먹다가 몇 개월 지나 연애를 시작했다.
남편과 결혼을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가끔씩 이게 마지막 연애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다. 연애의 결말은 언제나 감정 소모로 끝나는 게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다. 굳이 결혼을 하지 않더라도 남편과의 연애가 끝나면 연애생활을 청산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우리는 결혼도 하고, 아이는 셋이나 생겨 하나의 가족이 되었다.
남편이 가족세우기를 처음 접한 것은 2015년이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본격적으로 매달 한 번씩 가족세우기 워크숍에 참여하더니, 가족세우기 트레이닝 과정을 시작했고 여전히 참여 중이다. 나 역시 남편의 적극적인 제안으로 2018년에 트레이닝 과정을 잠깐 경험했다가 둘째를 낳고, 2021~2022년에 이어서 참여하게 되었다. 트레이닝 기간을 합하면 1년 정도 된다. 포털 사이트에 '가족세우기'를 검색하면 몇 개가 나오는데, 그중 우리가 참여한 것은 달마와 풀라님(줄여서 '달풀님)이 진행하시는 과정이다.
가족세우기의 원칙은 간단하다. 가족 안에는 서열이 있고, 그 서열에 균형이 깨지면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서열이 우열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모든 일에 순서가 있듯이 가족 안에도 '아빠, 엄마, 자녀 1, 자녀 2' 이렇게 순서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집에는 아빠보다 엄마가 1번이고, 어떤 집에는 자녀가 1번일 수도 있다. 우리 집은 아이가 1번인 경우가 많았는데, 아이가 어려서 당연했던 것이 계속 그렇게 흘러갔던 것 같다. 그때는 남편과의 보이지 않는 갈등이 많았던 시기였다. 가족세우기를 접한 뒤로 남편이 1번 자리에 있을 수 있게, 아이들보다 부부 관계가 먼저일 수 있게 노력하는 중이다.
가족세우기는 일반적인 상담과 기법이 좀 많이 다르다. 대체로 상담은 내담자에게 이슈(고민거리)가 있을 때, 내담자의 이야기를 많이 듣고, 어떤 해결 방법이나 위로의 말 같은 것을 건넨다. 반면 가족세우기에서는 내담자뿐 아니라 그의 주변 '관계'를 말 대신 이미지로 보여준다. 여기서 '관계'는 현재 가족의 관계인데, 결혼 이전의 '원래 가족'이나 '과거 연인'과의 관계를 보는 경우도 있다. 혹은 훨씬 윗대의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2018년, 처음 가족세우기 워크숍에 갔을 때 이슈가 뭐였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2021년에 다시 찾아갔을 때는 '아들과의 관계가 어렵다'는 것이 이슈였다. 그 당시 겨우 여섯 살이었던 첫째와 참 많이 다퉜다. 싸움을 한다는 것, 화를 낸다는 건 내가 아이와 비슷한 연령으로 전락한 것이다. 어른과 아이는 싸움을 하지 않는다. 비슷한 연령, 비슷한 서열이어야 싸움이 되는 것이다. 그건 표면적인 것이고, 더 깊이 들어가면 나는 아이를 '아빠'와 동일시하면서 '아빠'에게 쏟지 못했던 분노를 아이에게 표출하는 상태였다. 그걸 안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크진 않는다. 다만 해결할 숙제가 생기고, 그 숙제를 해결하면서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숙제 해결을 위한 노력은 필수고!
가족세우기 트레이닝에서 참여하면서 지금까지의 육아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더불어 육아의 신세계를 발견한 느낌이 들었다. 해법이 없었던 것 같던 길에 마치 정답을 찾은 느낌이랄까. 그 길을 가기 위해 어른도 아이도 강한 저항과 충동에 사로잡힐 때도 있겠지만, 우리의 관계가 차츰 나아지는 게 보이니까 멈출 수 없다.
내가 변하는 속도보다 아이들은 더 빨리 자란다. 게다가 아이는 셋이다. 세 아이가 아이답게 자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지금까지의 노력보다 더 큰 노력이 필요한 때이기도 하다. 그래서 또 하나 가족세우기의 연장선이기도 한 '구르지예프 무브먼트' 워크숍에 참여해 보기로 했다. '구르지예프 무브먼트'는 자기 탐구 명상법 중 하나로 동작 하나하나에 의미가 있고, 동작 치유의 춤이다. 매년 늦봄에서 초여름 사이에 공연을 하는데, 그 공연을 위해 1년을 준비한다. 남편은 올해로 세 번째 공연 무대에 올라갔다.
1년에 한 번씩 일반인 대상 워크숍을 하는데, 몇 번 일회성으로 참여해 봤다. 그때마다 이 몹쓸 몸뚱이로 어렵지만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있다. 워크숍 신청을 하기 전까지 많은 갈등이 있었다.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 그것과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의 갈등 말이다. 직면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 눈 감는다고 없어지는 게 아닌데, 자꾸만 숨기고 싶어 진다. 숨기고 싶은 마음보다 가고 싶은 마음이 아주 조금 더 커졌던 날, 워크숍을 신청했다. 그런데 막상 신청하고 나니, 오랜만에 반가운 사람들을 만난다는 생각에 신나게 들뜨게 되었다. 언제 갈등이 있었냐는 듯이 말이다. 비록 이번에도 일회성 참여지만, 기회가 된다면 남편처럼 공연 무대에 서는 경험도 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