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싸고, 자면서 자라는 아이
아이를 키우다 보면 주변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는 때가 있다. 아이가 좀 어릴 때는, 특히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주로 이런 질문을 받는다.
- 밤에 잘 자나?
- 젖은 잘 나오나?(잘 먹나?)
아이가 좀 자라면 질문이 추가된다.
- 기저귀는 뗐나?
- 말은 잘하나?
생애 초기 질문이 본능과 관련된 부분이라면, 그 이후 질문은 아이의 발달이 순조로운지에 관한 부분이다. 첫째 아이 때는 이런 질문 하나하나에 의미 부여를 한 적도 있다. 그러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을 때도 생기는데, 돌아보니 진짜 궁금해서라기보다는 관심 표현, 혹은 "밥은 먹었니?" 같은 인사말인 것 같다. 별 거 아닌 이런 질문에도 속으로 '꽁' 할 때가 생긴다는 건 잘 안 되는 부분이 있다는 거다.
내가 특히 꽁 했던 질문은 '젖 잘 나오냐'는 질문이었다.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젖은 내가 원한다고 나오는 게 아닐 뿐 아니라 스트레스받으면 더 안 나온다. 몸이 힘들어도 안 나오고, 먹은 게 좀 부실하면 양이 줄어든다. 젖량 늘리겠다고 기름진 것 많이 먹으면 젖도 같이 기름진 상태로 변하고 말이다. 기름진 것 왕당 먹는 것보다 좀 쉬는 게 모유수유에는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이유식을 먹기 시작한 후로는 이유식 만들고, 먹이고, 치우는 일이 전부 일이었다. 어떤 걸 어떻게 먹여야 하는지 검색하는 것도 일이고 말이다. 게다가 요리에 관심도, 소질도 없는 나에게 너무 힘든 일이었다.
첫째 때는 그 힘든 걸 몇 달간 하다가 바로 밥을 먹였다. 둘째 때는 미음 이유식을 하지 않았다. 다만 먹을 것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할 무렵 과일이나 야채 같은 것을 주기 시작했다. 그때 알게 된 것이 '아이주도 이유식'이었다. 몇 가지 참고해서 만들어주기도 했지만, 역시 아이를 위한 특별식을 만든다는 게 나한테는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 내 스타일대로 대충 먹이다가 밥을 먹였다. 첫째와 둘째가 밥을 먹기 시작한 것이 돌 쯤이었던 것 같다.
막내는 더 신경을 안 썼다. 첫니가 10개월쯤 났고, 혼자 앉기 시작한 것도 6개월이 훨씬 지나서였기 때문에 이유식을 시작하지 않았다. 다만 과일은 종종 손에 쥐어줬고, 밥 먹을 땐 항상 내 앞에 앉혀놓았다. 이도 없던 막내는 항상 내 밥을 탐했고, 어느 순간부터 내 수저를 자기 수저인 양 잡아챘다. 그리고 내 밥그릇에 장난을 치기 시작해 밥 먹는 게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도 없는 애한테 밥을 주기 시작했다. 그게 7~8개월쯤이었는데, 곧잘 받아먹었다. 돌 때쯤 되니 숟가락질이 제법 익숙해져서 혼자서도 잘 떠먹었다. 물도 잘 마시고 말이다. 막내가 먹는 걸 볼 때면 종종 이런 생각이 든다.
'첫째 때 이유식은 왜 한 걸까. 그거 잘 먹는다고 야채 잘 먹는 거 아닌데...'
17~18개월쯤부터 김치를 먹었던 첫째는 지금 김치를 입에 대지도 않는다. 반면 둘째는 김치만 있어도 밥을 먹는다. 막내는 여전히 김치를 궁금해하고, 때로 시도해 보는데, 먹고 나면 매워해서 가끔만 먹는다. 여전히 먹지 않는 건 고기. 첫째는 이유식 시기에 맞춰 고기도 먹였는데, 둘째는 돌이 지난 후에 고기를 먹였다. 막내는 돌 지난 후에도 먹이지 않고 있다가 관심 가질 때 줘봤는데, 입에 넣자마자 뱉어냈다. 그러다 언젠가 또 먹을지도 모르겠지.
이유식에 힘을 뺀 것과 달리, 첫째에 이어 둘째 때도 열심히 천기저귀를 썼다. 처음부터 천기저귀를 쓴 건 아니고, 똥이 어느 정도 단단해진 후부터 사용했다. 초기에도 몇 번 쓰긴 했는데, 똥 처리하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애들이 언젠가부터 똥이나 오줌을 싸면 신호를 보냈다. 싸기 전이 아니라 싼 후에 말이다. 그때쯤 기저귀 하는 것을 싫어해서 집에서는 하의실종 상태로 지내게 되었다. 애들 따라다니며 오줌 닦는 게 내 주요 업무 중 하나였다.
아이들은 화장실에 대한 관심도 많았다. 그래서 매번 따라 들어가려 했고, 서서 오줌을 싸는 아빠를 보더니 어느샌가 그 모습을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기저귀와 작별을 하게 되었다. 첫째와 둘째는 만 2세 전후로 낮기저귀를 뗐다. 다만 둘째(5세)는 아직 밤 기저귀를 하고 있다. 첫째(8세)도 가끔 밤 기저귀를 할 때가 있다. 과일이나 물을 많이 마신 날 말이다.
막내는 여전히 기저귀를 하고 있지만, 기저귀 하는 걸 싫어한다. 나도 생리대 하는 걸 싫어해서 그 마음 안다. 오빠들처럼 천기저귀로 바꿀까 고민해 봤지만, 일이 너무 많아져서 안 하기로 했다. 막내는 똥 싸기 전에 엄청 신호를 많이 준다. 손으로는 배를 만지고 뭐라 뭐라 쫑알거리면서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나한테 온다. 기저귀를 잡아 뜯거나, 사타구니를 잡아 뜯기도 한다. 오줌을 쌀 때는 종종 쪼그려 앉아서 싸고, 다 싸고 나면 기저귀를 알아서 벗는다. 기저귀 벗고 있다가 오줌을 쌌을 때는 쫑알거리며 찾아와서 나를 그곳으로 데려간다. 오줌을 쌌으니 처리해 달라는 것이다. 슬슬 기저귀를 뗄 때가 왔다는 신호들인 것 같다. 그래도 서두를 생각은 없다. 때가 되면, 언젠가는 알아서 기저귀 벗고 변기로 갈 날도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요즘 막내가 착용하는 기저귀 뒷면에는 '오늘은 통잠 잘게요.'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첫째 아이 때는 '통잠'이 목표였던 적이 있었다.
- 어떻게 하면 통잠을 잘까?
- 몇 시부터 몇 시까지 자는 게 통잠일까?
- 통잠을 못 자면 수면의 질이 떨어질까?
- 우리 아이는 왜 통잠을 못 자는 거지?
- 몇 살쯤 되면 통잠을 잘까?
- 몇 살쯤 되어야 알아서 잘까?
- 수면교육을 해야 하나?
'통잠'과 관련된 온갖 질문들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보기도 하고, 인터넷 서핑도 엄청 했었다. 나보다 먼저 아이를 낳아 키우는 친구와 전화를 할 때마다 물어보기도 했다.
"지금은 잘 자?"
"아니. 그래도 초등학생 되니까 예전보단 잘 자더라."
그땐 친구의 대답을 들을 때마다 눈앞이 깜깜해졌다. 영원히 통잠을 못 자는 거 아닌가 해서 말이다.
친구가 말했던 '초등학생'이 된 우리 집 첫째 아이는 여전히 자다가 깬다. 5세인 둘째 아이도 마찬가지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혼자서도 이어 자는 게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가끔 자다 깨서 엄마를 찾아 온 집안을 서성이거나 '엄마'를 불러대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살짝 뒤척이다가 다시 잠든다. 엄마 찾아 깨는 횟수만 따지고 보면 첫째가 둘째보다 더 자주 깨는 편이다. 아무래도 첫째는 불안이 더 많은 편이고, 막내가 태어나기 전까지 품 안에서 잠들었기 때문에 그럴지도 모른다. 지금도 잠들 땐 꼭 나를 안고 자려하는데, 안고 있으면 더 빨리 잠들기도 한다.
막내는 뭐, 여전히 한 시간 간격으로 깨는 날도 있다. 여전히 밤 수유를 하는 중이고, 한 시간 간격으로 깨는 날은 깰 때마다 수유를 하기도 한다. 이런 날이 며칠 지속되면 상당히 피폐해진다. 나도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아이도 제대로 못 자니까 둘 다 신경이 곤두서 있다. 그런데 이런 날도 길어야 2~3일 정도면 지나간다. 대체로 원래 자던 패턴으로 돌아간다. 17개월쯤 된 지금은 3~4시간 정도 자다가 깨서 수유를 하고, 충분히 먹으면 이어서 잔다.
밤 수유를 없애면 아이가 더 잘 잔다고 해서 첫째 아이 때 시도를 했었다. 성공하는 듯할 때마다 아이가 아팠고, 밤 수유를 다시 시작했다. 그렇게 몇 번의 시도 끝에 '통잠'을 포기했다. '통잠'을 포기하면서 우리의 밤은 다시 편해졌다. 둘째와 막내 아이는 '통잠' 시도를 하지 않았지만, 잘 자는 날도 많다. 영원히 젖 먹고 자는 것도 아니고, 영원히 내 품에서만 자는 것도 아니다. 조급해하지 않고, 아이의 시간을 기다려주면 될 뿐.
사실상 통잠은 없다. 그저 잘 이어서 자면 그게 숙면인 것이고!
"엄마! 사람들이 나보고 여섯 살보다 말을 잘한대."
둘째는 '말 잘한다'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또래 아이들에 비해 발음이 좋고, 어휘력도 풍부한 편이다. 책을 많이 봐서 그런 것인지, 마스크 없이 자라서 그런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내가 관찰해 온 둘째는 지금보다 훨씬 어렸을 때부터 스토리텔링 능력이 있었다. 책을 읽어주면 외워두었다가 혼자 책을 꺼내 들고 중얼거리며 책을 보곤 했다. 그리고 혼자 인형을 가지고 놀 때도 이야기를 만들면서 놀았다. 역할극은 상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둘째를 보니 혼자서도 가능한 것이었다. 이런 것은 첫째에게 없는 능력이었는데, 같이 놀다 보니 첫째도 그 능력을 습득하게 되었다. 아이들은 함께 놀면서 서로에게 없는 능력을 배우고, 또 금방 흡수한다.
아직 어린 막내를 보면 정말 놀랍다. 오빠들이 하는 걸 가만히 지켜보다가 그대로 따라 한다. 엄마 무릎에 누워 양치를 하는 오빠를 보더니, 오빠가 일어나자마자 발라당 누워 양치를 해달라 한다. 놀이 사다리에 올라가는 모습을 한창 보기만 하더니, 이제는 혼자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드러눕기도 한다. 내가 뭔가를 가리키며 이야기를 하면, 내 앞에 앉아 똑같은 방향을 가리키며 쫑알거린다. 어린아이일수록 흡수 능력이 더 빠르게 느껴진다. 능력치를 너무 낮게 봐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아이들이 흡수하는 능력은 재미있어 보이는 것, 자기가 직접 선택한 것일수록 빠르다.
세 아이를 키우면서 느끼는 건, 아이에게는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는 것이다. 누구는 빠르고, 누구는 느릴 수 있지만, 발달에 문제가 있는 아이가 아니라면 언젠가는 다 해낸다. 내 아이가 조금 느리다고 조바심 내고, 조금 빠르다고 우쭐할 필요도 없다. 발달 단계를 차근차근 밟고 올라가다 보면 언젠가는 다들 만나게 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