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치유와 지연접종
지난 9월, 막내의 첫 접종을 시작했다. 남들은 태어난 지 한 달 만에 다 접종하는 BCG를 1년 5개월이나 지나서 맞으려니 여간 번거로운 일이 아니었다. 일단 결핵반응검사를 해서 면역 반응을 보고 음성이어야 접종을 해주는데, 결핵반응검사 자체를 해주는 병원이 드물다. 이 동네에는 대형병원 두 군데에서만 한다.
막내를 카시트에 태우고 운전을 하는 건 복불복이다. 어떤 날은 기분 좋게, 어떤 날은 처음부터 끝까지 울고... 그래서 운전대를 잡을 때마다 심호흡을 크게 하고 시작한다. 내 딴에는 정말 큰 마음먹고 병원 예약을 잡았다. 다른 일정이 생겨 2주나 일정을 미뤄야 했지만, 검사 자체가 어렵거나 불편하진 않았다. 손목과 팔꿈치 중간쯤 위치에 결핵균을 주입하고, 얼마나 붓는지 24시간 후에 확인하는 것이다. 막내는 주입 흔적 자체가 없어서(음성) BCG 접종을 하게 되었다. 한 방에 끝나는 피내용을 맞기 위해 또 다른 날짜를 예약해야 했다. 피내용은 일주일에 한 번만 접종을 한다는 것이다. 세 번이나 대형병원에 들락거려야 한다는 게 썩 내키진 않았지만, 피내용 접종해 주는 소아과가 없다고 하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참 번거롭고 불편한 일이다. 그래도 내가 선택해서 지연접종을 하게 된 것이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이전에도 여러 번 말했어요. 접종만 하고 갈게요."
결핵반응검사부터 BCG 접종을 하기까지 세 번, 병원에 갈 때마다 간호사들은 '지연접종'에 대해 의문, 의심, 의혹이 담긴 질문을 쏟아냈다. '왜?'라는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말이다. 내 이야기를 한참 듣던 한 간호사는 끝끝내 입으로 내뱉기도 했다.
"그러니까, 왜요?"
라고 말이다.
지연접종 하는 것 때문에 병원에 갈 때마다 의사나 간호사들에게 한소리씩 듣는 건 이미 익숙하다. 처음엔 일일이 반론했었지만, 지금은 그냥 사무적으로 하는 말 정도로 듣고 넘긴다. 그들의 말을 요약하면 결국 '접종이 많이 늦었으니 지금부터라도 잘 맞춰라'는 내용이다. 그런데 이 동네 의료진들의 반응은 내가 알던 것과는 사뭇 다르다. 일단 지연접종에 대한 놀라움, 당혹감을 먼저 표현하고, 미접종시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 수도 있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받은 적도 있다. 왜 이런 극단적인 반응까지 나오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지연접종이 범죄는 아니지 않은가!
병원에 들락거리면서 세 아이가 돌아가며 아데노바이러스에 감염되어 무려 4주간 고생한 기억이 떠오른다. 전염병에 노출되기 가장 쉬운 곳이 병원인 것 같다. 온갖 환자들이 다 모여있는 대형병원은 더욱 그렇고 말이다. 감기에 걸려도 웬만해선 병원에 잘 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특히 환절기나 전염병이 유행할 때는 병원에 더 안 가려고 하는 편이다.
둘째 아이의 지연접종은 '코로나 효과'였다. 2019년 3월생인 둘째는 BCG 한 방을 동네 병원에서 맞고, 그 뒤로는 병원에 가지 않았다. 코로나는 점점 심각해졌고, 자연스럽게 지연접종을 하게 된 것이다. 다행히 아이가 건강했기 때문에 굳이 예방접종시일에 하지 않아도 큰 병 없이 잘 자랐다. 건강한 아이라면 지연접종을 해도 잘 자란다는 건 첫째 아이 때 이미 경험해서 알고 있는 일이었다.
첫째 아이 때는 지연접종에 대해 잘 몰랐다. 그저 작은 아기에게 약물 주입하는 게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시일보다 조금 늦게 접종을 했다. 지금은 지연접종에 대해 공부를 좀 하고 이유가 확실해졌다. '예방접종도우미' 사이트에 들어가면 '미접종 소아의 예방접종 일정표'가 나온다. 그걸 보면 지연접종을 했을 때, 몇 개의 주사는 접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Hib나 PCV는 만 5세 이상의 건강한 아이는 접종하지 않아도 된다. 예전엔 필수 접종이 아니었던 로타바이러스 백신은 생후 8개월이 지나면 접종하지 않아도 된다.
어린아이일수록 접종해야 할 것이 많다. 면역력이 약해서 그럴 것이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다 맞추기엔 주사 역시 화학물질이라 그걸 어린아이 몸속에 주입하는 것에 거부감이 생긴다. 그래서 그 숫자를 조금 줄여보기로 한 것이다.
지연접종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병원과 멀어진다. 아이들이 가장 많이 걸리는 감기! 감기는 어차피 대증요법 말고는 방법이 없다. 집에서 증상에 맞게 대처해 주면 되는 것이다. 웬만해선 약 안 먹고 평소처럼 지내다 보면 감기는 지나간다. 열이 39도를 넘길 때는 꼭 해열제를 먹인다. 39도가 넘으면 아이들 상태가 평소와 달라지는 게 눈에 보인다. 약 기운으로라도 평소처럼 힘을 내고, 몸을 움직이면서 땀을 내면 열은 금방 떨어진다. 길어야 2-3일이면 고열은 집에서도 잡히는 편이다. 2-3일이 넘어도 고열이 나는 건 감기가 아닐 수도 있어서 병원에 가보곤 하는데,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막내가 6-7개월쯤 되었을 때, 고열이 며칠 동안 지속된 적이 있다. 그 당시 엄청 시골로 이사를 한 상태였고, 30분 정도 운전해서 읍내에 나가야 병원이 있었다. 원래 하던 대로 집에서 해열제를 먹이며 지켜보다가 읍내 병원에 갔더니 진료를 거부했다.
"입원을 해야 할 수도 있는데, 우리 병원에서는 못하니까 더 큰 병원으로 가세요."
그래서 옆 동네 대형병원 응급실에 갔더니 코로나 검사, 폐 검사 등을 했다. 전부 이상이 없으니 해열제를 줬고, 관장을 한 번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배가 좀 빵빵해지고 구토를 몇 번 했다는 것에 대한 처치였다. 관장을 할 때부터 아이는 상당히 괴로워했다. 관장 부작용인지 며칠을 설사만 했다. 탈수가 걱정될 정도로 말이다. 어차피 젖 먹는 아이라 젖 먹으면서 천천히 회복하면 되는데, 괜히 관장을 한 것이다. 그날 이후로 병원, 특히 응급실은 정말 급할 때 아니면 안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부분은 아이가 태어나면 초기에 접종하러 병원에 수시로 들락거리게 된다. 그리고 예방접종일정표에 나온 일정보다 천천히 접종을 하는 경우가 있다. 간혹 무접종도 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것은 어른의 몫이다. 나처럼 지연접종을 하거나 무접종인 경우에는 병원에 갈 때마다 잔소리를 듣고, 동사무소에서 전수조사를 받아야 할 수도 있다. 게다가 아이가 좀 자라서 병원에 가려고 하면 도무지 쉽게 갈 수가 없다. 주사 맞으러 가자고 하면 더 거세게 반발할 수도 있다. 아무것도 모를 때 접종했으면 이런 고생은 안 해도 됐을 텐데, 후회할 수도 있다. 그것도 받아들여야 한다. 아이는 자기 의사를 표현하는 것뿐이니까.
아이가 아플 때도 마찬가지다. 건강한 아이라면 앓아눕더라도 금방 일어난다. 열이 좀 나도 뛰어놀고 싶어 하며, 에너지를 발산할 줄 안다. 식욕이 없어도 조금씩은 먹어보려고 시도할 줄도 안다. 아이가 낫기를 기다리다 보면 혹시 큰 병의 전조증상은 아닌지 불안한 마음이 들 때도 있다. 그런 불안한 마음은 아이에게 옮아가기 쉽다. 그런 마음이 들 때는 병원에 가도 되고, 아이의 회복력을 조금 더 믿어보는 것도 괜찮다. 결국 선택은 어른의 몫이고, 그 후의 일은 어른이 책임을 지면 된다. '보호자'는 이럴 때 필요한 것일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