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자를 위한 플레이리스트

환승이직 말고 쌩퇴사자만 오세요

by 온유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정하고 여러 가지 감정에 휩싸였다.

1) 분노 -> 2) 우울 -> 3) 회고/반성 -> 4) 다음에 무엇을 할지에 대한 고민

위 순서로 진행됐는데 현재는 3번에서 4번 사이에 있다.


쌩퇴사는 처음이다.

돌아보니 이직 또는 학업을 위한 퇴사는 여러 번 있었지만 퇴사를 위한 퇴사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매일 극과 극을 오가는 감정에 괴로워했고 여기서 회복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직감했다. 다행히 이번 추석은 길었다. 더 이상 괴로워하지도, 다음 목적지를 찾으려 분주히 노력하지도 않기로 마음먹었다. 괴로워하지 않기로 한 부분은 잘 되지 않았지만.


평소처럼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듣고 싶은 노래가 여러 곡 생각났다. 나 같은 퇴사자를 위해 엄선한 곡들을 아래 플레이리스트에 담았다.

https://youtube.com/playlist?list=PLqfSm8vnqSSwV7qnvoxwx91y5rT3re2VE&si=E3sof7qcXse25EyB


1. 김동률 -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

2. 이상순 - 완벽한 하루

3. 토이 - 우리


사실 그렇게 큰일이 아니다. 직장을 다니는 걸로 큰 유난 떠는 사람 없는 것처럼 직장을 다니지 않는 것도 유난스럽게 대할 일이 아니다. 일상은 계속 흘러가고 결국 마지막에 남는 건 사람 밖에 없다는 걸 잘 안다.


4. 조규찬 - Drive

5. 김현철 - City Breeze & Love Song


내가 시골에서 자급자족하는 사람이었다거나 농사를 업으로 하는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회사라는 이상한 등장인물과 싸울 일도 없었을 거다. 도시에 살고 이곳에서 통용되는 말과 행동을 하고 그렇게 남의 돈을 받는다는 건 이따금씩, 특히 이럴 때일수록, 견디기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도시이기 때문에 누리는 것도 많다. 이 기회에 시티팝을 들으며 구석구석 서울여행을 하는 것도 특혜이지 않을까? 물론 보복성이지만…


6. 나상현씨밴드 - Shine

7. 까치산 - 징크스

8. 엘르가든 - My Favorite Song

9. 오아시스 - The Masterplan


한국밴드부터 일본, 영국 밴드까지 잡탕처럼 구성된 것 같지만 가사를 잘 들어보면 같은 맥락으로 묶인다. 혼자가 아닌 함께 만들어내는 사운드는 특유의 낙천성이 묻어 있다. 특히 나는 중고등학생 때부터 엘르가든과 오아시스의 노래를 들으며 자랐다. 모든 일이 내가 알지 못하는 큰 계획의 어쩔 수 없는 일부임을 아무 근거 없이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다음 주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드라마를 기다린다. 아주 신나게. 외교관 시즌3 커밍쑨


10. Andrew Garfield - Why

11. 이적 - 흔적

12. 푸른초록 - 함께해줘서 고마워

13. 루시드폴 - 아직, 있다.


뮤지컬 렌트와 틱틱붐을 쓴 조나단 라슨은 긴 무명생활을 견디고 마침내 렌트의 브로드웨이 진출을 성사시켰지만 개막 하루 전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Why라는 곡은 뮤지컬 틱틱붐에 수록된 곡으로 친구와 평범함 하루를 보낸 뒤 “what a way to spend the day”라고 반복하며 마지막에는 ”i’m gonna spend my time this way”라고 말하며 끝난다. 나는 대체로 시간이 많은 것 같다고 느껴왔지만 이런 가사를 들을 때면 중심을 다시 잡게 된다. 흔적이라는 노래의 “나는 그걸 생각하지 못했죠, 적어도 항상 되새기진 못했죠” 부분도 그렇다. 지르는 후렴보다 반대로 힘 빼는 후렴이 좋다. (내 노래도 슬쩍 껴넣었는데 저작권료 때문은 절대 아님. 주제와 잘 맞음!)


14. Lawrence - Don’t Lose Sight

15. 차세대 - 악광무


이제 조용한 노래들은 충분히 들은 것 같으니 풍악을 울려 보자면.. Lawrence는 내가 요즘 제일 좋아하는 밴드인데 보컬, 악기, 리듬 등 여러 부분에서 정말 독보적이고 새롭다. 국내 밴드 중엔 차세대의 앨범이 쉽게 질리지 않는다.


16. 이문세 - 이세상 살아가다 보면

17. Kirk Franklin - Love Theory

18. 김승주 - 주인공법칙


몇 해 전 올림픽공원 잔디마당에서 열린 이문세 콘서트에 갔는데 콘서트 내내 비가 내렸다. 마지막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돗자리에 고인 물에 옷이 흠뻑 젖었다. 그런데 오히려 좋았다. 우비를 입고 모두가 무대 앞까지 돌진해 (그래도 되는 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뛰어놀았다. 날이 맑은 것도, 비가 세차게 내리는 것도, 그치고 구름이 서서히 걷히는 것 모두 각기 나름의 의미와 재미가 있다. 변덕스러운 날씨에도 그저 사랑으로 일하고 살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을 것 같다. 좋은 소식도 있다. 주인공법칙에 따르면 주인공은 절대 잡히지 않고 피 흘리지 않는다. cameraman never dies.


그림자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알맹이는 귀찮고 껍데기만 남기고 싶다는 비겁한 마음일까.

내가 되고 싶은 모습과 내 안에 여러 모습 사이의 괴리가 매일 새롭게 불편하다.


19. 곽진언 - 자유롭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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