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조건축에서 시작한 환경 외길
최근 온라인상에서 화제를 모았던 10년 전 안동역 영상의 주인공들이 재회했다. 2015년 방영된 ‘다큐멘터리 3일‘에서 당시 내일로 여행 중이던 여대생 두 명과 제작진이 카메라 앞에서 “10년 뒤에 여기서 다시 만나자”며 약속을 맺었다. 정확히 10년 뒤인 2025년 8월 15일, 제작진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안동역으로 향했다. 설마 그 약속을 기억하고 여기까지 나와줄까 떨리는 마음을 안고 기다리던 촬영감독에게 한 여성이 다가왔다. 그들은 그간의 안부를 묻고 기념사진 촬영을 했다.
이번 재회와 10년 전 영상이 화제가 되었던 이유는 낭만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 때문이다. 빛나던 청춘이 지나가며 했던 말을 잊지 않고 10년이 지난 후에 같은 자리에서 만난다면 얼마나 순수한 마음일까. 대학합격자 발표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모두의 시선은 2025년 8월 15일 안동역으로 향했다.
10년 전 나는 어디서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2015년에 나는 LG글로벌챌린저라는 대학생 대외활동 프로그램에 목재건축 재료인 CLT를 주제로 지원하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나 포함 네 명이 팀을 이뤄 연구와 탐방계획을 제출하면 LG가 심사해 최종합격자를 가른다. 합격한 팀은 약 1년간 계획했던 연구를 진행하고 해외탐방을 가게 된다. 해외탐방은 LG측 전액 지원으로 가고 싶은 나라로 갈 수 있어 인기가 높았고 가장 중요하게는 본상 수상자에게 수여되는 상이었다. 바로 LG 입사 자격이 주어졌는데 심지어 어떤 일을 할 건지까지 택할 수 있었다.
대학 후의 미래가 너무 불안했던 나는 해외여행뿐만 아니라 취업 문제까지 단번에 해결된다는 사실에 온 열정을 퍼부어 준비했다. 대학생 시각에서 중요한 사회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게 이 대회의 주목적이었기 때문에 우리 팀은 자연스레 환경 문제로 관심을 틀었다. 자료를 찾던 중 최근 CLT(Cross Laminated Timber) 개발을 통해 고층 목조건축이 가능해져 환경오염과 탄소배출이 큰 콘크리트 건축을 대체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환경뿐만 아니라 건축 과정과 건물 사용 단계에서 건강과 안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거기다 CLT는 나무를 통으로 쓰는 것이 아니라 교차해서 붙이고 압축하는 공학목재이기 때문에 제재목이 부족한 우리나라 임업에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하여 우리의 슬로건은 “경제와 환경, CLT에서 만나다!“
탄소감축과 흡수로 기후변화에 대응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 임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다시 살려 경제에도 이로운 CLT라니! 우리 팀은 CLT를 주문처럼 외우며 밤을 새우며 준비했고 결국 서류전형과 면접전형까지 뚫고 최종 팀으로 선정됐다.
국내탐방 후 한 달간의 유럽 탐방은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오스트리아 그라츠대학교에서 CLT의 아버지라 불리는 교수님을 만났다. 영국 해크니에서 CLT로 건축 중인 아파트 주변을 서성거리다 공장관리인에게 눈에 띄어 안전헬멧을 쓰고 공사 현장 안까지 들어가 봤다. 대표적인 CLT아파트 앞에서 주민들에게 설문지를 돌리며 방음, 온도 등 주거환경에 대한 만족도를 물었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목조건물을 설계한 건축사무소에 방문했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는 지속가능한 산림경영을 선도하는 연구소에 방문해 인터뷰했다. 국내외에서 만난 모든 분들은 대학생들이 보낸 cold email 한통에 흔쾌히 응해준 고마운 분들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그때 시작된 환경의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대학원과 여러 분야의 직장을 옮겨 다니며 한 번도 놓치지 않았던 건 환경과의 연결점이었다.
신기하게도 나는 LG글챌 이전에는 환경문제에 관심이 높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데 글챌 대원으로 보낸 1년 남짓의 시간이 씨앗이 되어 지금까지도 환경 문제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그때 내 유일한 동기는 LG입사와 공짜여행이었는데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칠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나에겐 10년 전 안동역과 같은 LG글챌. 나는 그때 우연히 내 열정을 찾아서 꾸준히 걸어가고 있는 걸까 아니면 용기가 없어서 불안해서 아직 과거에 매여있는 걸까.
지금까지도 늪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나를 보며 10년 전의 나는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초심을 기억하고 다시 열심히 해보자 같은 뻔한 말은 절대 아닐 것 같다. 오히려 지금 내가 손에 꼭 쥐고 있는 일의 시작은 그리 거창하지 않았음을. 그러니 내 과거와 미래를 너무 깊이 고민하지 말라고. 다른 분야여도 좋으니 그냥 지금 하고 싶은 걸 하라는 말. 나는 지금 그 말이 듣고 싶은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