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분 작곡, 한 달 작사
곡을 만드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나의 경우 다음과 같은 순서로 작업한다.
1. 마음에 드는 코드 진행 찾기/만들기
2. 코드를 연주하며 즉흥적으로 멜로디 얹어보기
3. Verse>Pre-Chorus>Chorus 순으로 멜로디 정리하기
4. 가사 쓰기
1. 마음에 드는 코드 진행 찾기/만들기
먼저 곡의 근간이 되는 코드 진행을 만들어야 한다. 곡을 만들 때는 같은 스케일(scale)의 코드로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 스케일이란 음의 배열 방법인데 이 배열 방법은 어떤 키로 시작해도 바뀌지 않는다.
근음, 온음, 온음, 반음, 온음, 온음, 온음, 반음, 근음
예를 들어 연주자들이 서로 소통할 때 "C key로 하자"라고 말하는 것은 C Major 스케일 기반의 코드와 음으로 연주하자는 뜻이다. 물론 스케일에서 벗어나는 코드가 몇 가지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코드는 특정 scale을 가리킨다. 음악 하는 사람들이 어떤 곡을 들었을 때 '아, 이 곡은 C key구나!'라고 바로 알 수 있는 건 그런 이유에서다.
좋아하는 곡의 코드 진행을 그대로 써도 되고, 조금 수정하거나 새로 만들어도 된다. 나는 평소 좋아하던 코드 진행인 Dmaj7 A Em(Bm7) G로 곡을 시작했다. 아련한 느낌으로 시작하고 싶었는데 잘 어울리는 것 같았다.
다음 단계는 Pre-Chorus. 곡의 분위기가 살짝 바뀌면서 코러스 전에 감정을 고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Bm7 G D A 순서로 연주를 하니 내가 원하던 분위기가 나오는 것 같다. 마음에 든다.
마지막으로, Pre-Chorus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듣기 좋은 코드를 조합하다 보니 Em7 A7 Dmaj7 진행의 코러스가 만들어졌다. 이 곡은 D Major 스케일인 것 같다.
2. 코드를 연주하며 즉흥적으로 멜로디 얹어보기
나는 이 부분이 제일 어려울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5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만들어 놓은 코드 진행을 기타로 연주하면서 생각나는 멜로디를 불러보니 금방 곡이 만들어졌다.
아,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녹음이다. 세상을 흔들어 놓을 만한 멜로디가 생각났다 하더라도 잊어버리면 아무 소용없다. 불안정한 기억력에 의존하지 말고 핸드폰 녹음 기능을 활용하자.
그리고 아직 가사를 쓰기 전이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는 허밍을 하던가 영어/외계어로 노래를 부른다. 작사와 작곡을 동시에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뇌가 두 개가 있지 않은 이상 그것은 아마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머릿속에는 음악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부분과, 문학적인 부분을 담당하는 부분이 나눠져 있어서일까? 가사를 먼저 쓰고 그걸 읽으면서 멜로디를 만들 수는 있겠지만, 멜로디를 만들면서 동시에 완벽한 가사로 노래를 부른다? 그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3. Verse>Pre-Chorus>Chorus 순으로 멜로디 정리하기
이제 녹음된 파일을 다시 들어보면서 멜로디를 정리한다. 어색한 부분, 연결이 잘 안 되거나 가사를 붙이기 어려운 음들이 있을 수 있다. 그런 부분들을 수정하거나 지우고 다시 만드는 과정을 반복한다.
곡의 구조는 송폼(Song Form)이라고 부르는데 Verse에서 Pre-Chorus/Chorus, 그리고 2절 후에는 Bridge(선택사항)가 추가되는 게 전형적이다. Pre-Chorus 없이 Verse에서 Chorus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곡도 많다. 예를 들어 이적-바다를 찾아서, Alec Benjamin-1994가 그런 곡이고, 반대로 The Weekend-Out of Time이나 Lauv-Sad Forever 같은 곡은 Pre-Chorus가 명확하다.
4. 가사 쓰기
대망의 하이라이트. 가사 쓰기!
나는 멜로디보다 가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내가 좋아하는 노래들을 보면 다 가사가 좋은 노래들이다. 그리고 멜로디가 아무리 좋은 노래여도 가사가 이상하거나 공감이 안되면 몇 번 듣다 말게 된다. 어떤 말을 써야 할까 한참을 고민하다가 문득 떠오른 장면은 해가 지면서 하늘이 붉게 변하는 모습. 그리고 그걸 바라보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다. 뭘 쫓는지도 모른 채 정신없이 하루를 보낸 후 잠깐의 여유가 주어진다면 나는 어떤 말을 듣고 싶을까?
하고 싶은 게, 해야만 하는 게 많을 때 조급해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산책을 하다 보면 내가 아무리 빨리 뛰어도 머리 위 하늘은 같을 거라는 생각에 내가 얼마나 작고 미미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 내 안의 내가 너무 커질 때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조금은 편안해지곤 했다.
해가 지는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지도 고민했다.
석양이 진다, 노을이 진다, 해가 진다
보다는 '해가 저 선을 넘긴다'라는 표현이 더 직관적으로 다가왔다. 그게 도시의 빌딩이든 시골마을의 산마루든, 지평선이든 수평선이든. 어쨌든 해는 무언가를 넘긴 뒤 조금씩 우리 시야에서 사라진다.
후렴 가사가 완성되고 나니 앞 뒤의 가사도 천천히 채워지기 시작했다. 어떤 말은 교수님 훈화 말씀 같아서, 또 어떤 말은 멜로디에 맞지 않아서 합격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도무지 어떤 말을 써야 할지 생각이 안 날 때 덮어두었다가 며칠 후에 다시 돌아와서 고민하기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한 달이 지났다.
나의 첫 자작곡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가제: Sunset
Verse
Dmaj7 A Em G
Dmaj7 A Bm7 G
똑같은 아침이 반복돼 똑같은 감정에 지치고
색다른 공간을 찾아 서성이고
습관처럼 내뱉던 말 내가 나인 게 싫다며
다시 돌아간다면 난 어디로
Pre-Chorus
Bm7 G D A
어느새 자라서 변해버린 난
지금 이 모습에 익숙해져가
어느새 자라서 변해버린 난
가끔 그 바다를 생각해
Chorus
Em7 A7 Dmaj7
해가 저 선을 넘기면 집으로 돌아가자
할 일이 쌓여 있어도 오늘은 덮어두자
아무리 빨리 달려도 하늘은 같으니까
천천히 걷자 조금 느려도 돼 널 기다릴게
Verse2
하고 싶은 일을 찾아도 문득 불안이 닥쳐와
아무 이유 없이 주저앉아
바삐 걸어가는 사람들 어딜 향해 가는 걸까
멈춰있는 건 나쁜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