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다는 마음

by 온유

“발표가 내용이 하나도 없구먼. 개념만 남발하면 끝이 아니야! 좀 더 잘 설명을 해야지!”


한 학회에서 내 발표가 끝난 후 맨 뒤에서 두 번째 줄에 앉아있던 중년 남성이 손을 들고 말했다. 나는 애써 웃으며 그가 한 질문에 최대한 조목조목 답했다. 행사가 끝난 후 이어진 저녁 식사 자리에서 나는 그에게 다가가 인사를 했고 명함을 건네며 좋은 조언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는 명함을 받는 듯 마는 듯했고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자네는 한국어가 서툰가?”


발표 중 영어를 섞어서 사용했던 게 탐탁지 않았나 보다. 극도의 무례함에 순간적으로 당황했지만 나는 다시 웃으며 그렇지 않다고 친절히 설명했고 원문을 영어로 썼기에 일부 용어의 한국어 번역어가 바로 생각이 나지 않아서 그렇게 느끼실 수 있다고 말했다. 안녕히 가시라고 한 후 그렇게 집에 왔다.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정말 부끄럽지만 죽고 싶다는 감정에 시달렸다. 당시엔 아무렇지 않은 듯 대응했고 그렇게 대응했기에 이후에도 아무렇지 않을 거라고 짐작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꽤나 큰 충격을 받았나 보다.


죽고 싶다는 마음.

정확하게는 이 감정이 계속되는 한 너무 괴로워서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가 없다는 결론.


그럴만한 일은 아닌데. 무례한 인간이 한 말은 마음에 두지 말고 잊어버리면 되는데.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이렇게 순간적으로 압도되는 상황과 그 파편에 휩쓸리다 보면 감정의 원인과 결과가 뒤죽박죽 섞이게 된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하고 오바스러울까 참 어처구니없기도 하고 답답한 마음에 거리를 서성거리다가 동전노래방에 가서 시끄러운 노래 10곡을 내리 불렀다. 노래를 부른 던 중 계속 차올랐던 감정은 그 교수에 대한 분노다. 어떻게 복수하지. 왜 나는 그때 그 사람의 무례함을 지적하지 못했을까. 정말 분하다. 그 사람의 얼굴을 다시 떠올리며 험한 욕을 읊조렸다.


마지막 곡까지 다 부르고 “우리 다시 만나~“로 시작하는 노래방 끝날 때 나오는 노래가 들리자 힘이 쭉 빠졌다. 몸에 힘이 빠지자 순간 마음에 단단하게 맺혀있던 게 몰캉해졌다. 문득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분노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아무 근심 없이 발 뻗고 잠만 잘 자고 있을 텐데 나는 내 소중한 시간을 왜 그 사람 생각하는 데 쓰고 있지? 이미 지나간 일인데?


늦었지만, 이미 조금 망가졌지만, 그래도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오기로 한다. 나는 언제쯤 돼서야 무례한 이를 만날 때 당황하지 않고, 무조건적인 미소로 얼버무리지 않고, 줏대 있게 현명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누군가 무심히 던진 돌에 사람이 죽는다. 계속되는 문화예술인들의 자살 소식을 떠올린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조금은 더 친절해지기를. 나부터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내가 제일 바쁘고 힘든 것 같이 느껴지던 날의 내 얼굴, 일상의 크고 작은 장면들. 애꿎은 반찬 투정, 큰 소리로 짜증 낸 것, 주위 사람들에게 관심 갖지 않고 무표정으로 보냈던 출근 날.


타인의 무례함에 분노로 답하지 않고 그저 시선을 옮기는 것. 그렇게 친절을 배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곳에 마음이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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