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양귀자 ‘모순’

by 온유

10년 미룬 사랑니를 뺐다.


언젠간 탈이 날 거라는 말을 애써 무시해 온 결과는 오로지 내 몫이었다. 주기적으로 오른쪽 사랑니 부근이 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일이 정말 바빴던 날 사랑니 때문에 잘 먹지도 못하는 내가 갑자기 너무 한심해 보였고 그렇게 큰맘 먹고 치과 예약을 잡았다. 치과의자에 누운 듯 앉은 나는 아플까봐 뭔가 잘못될까봐 별별 생각에 빠진 과대망상 환자가 됐고 몸이 벌벌 떨렸다.


“따끔합니다. 따~끔”

“뻐근합니다.”

“거의 다 됐습니다. 소독할게요.”


본 게임은 시시했다. 잠깐 따끔하고 뭔가가 부러지는 느낌이 나더니 1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끝났다. 이렇게 간단한 걸 왜 그렇게 혼자 끙끙 앓았을까.


결국 모든 것은 불안 때문이었다.


잠이 오지 않는 밤이 주기적으로 찾아오고, 두 손 가득 넘처버릴 것 같은 일에 집중하지 못하고, 사람을 만나는 건 대체로 힘 빠지는 일이었던 이유 말이다. 미래를 볼 수 없고 모든 위험과 변수를 통제할 수 없다는 그 당연한 사실이 우습게도 나에겐 커다란 불안이 됐고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단 하루도 사라지지 않았다.


그와 나 사이의 미래가 그려지지 않을 때, 그에게 아주 작은 위험 요소라도 보일 때, 처음의 설렘은 연기처럼 사라졌고 또다시 불안만 알맹이로 남아 있다. 그렇게 난 가보지 않은 길 대신 안전한 혼자를 선택한다.


불안을 덮을 만큼 그만큼 좋아하는 사람을 아직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변명을 오래 했다. 그러나 그런 강렬한 감정만이 사랑일까 생각하면 또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어쩌면 깊은 사랑은 그만큼 깊어질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 문제는 내 불안이 그 시간을 인내할 수 없게 만든다.


서핑을 하다 보면 위험을 감내해야 하는 순간이 온다. 파도가 부서져 하얗게 물거품처럼 밀려드는 화이트워시(white wash) 구간을 넘어 조금 더 큰 파도가 치는 곳으로 패들링하는 거다. 밖에서 볼 때는 그냥 파도 같은데 물 안에 들어가면 왜 그렇게 무시무시하게 보이는 걸까. 나는 몇 번의 소심한 시도 끝에 포기하고 터벅터벅 물 밖으로 걸어 나왔다. 서핑 대신 패들보드를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며.


그때도 지금도 생각이 많은 게 문제다. 오늘을 살고 싶다. 누구보다 간절히 그렇게 살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겠다. 말은 쉽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

기꺼이 손해 보는 것.

그렇게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다정한 사람이 되는 것.


특별할 것 하나 없는 평범한 거리를 걷는다. 날씨마저 우중충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짝이는 무언가를 찾아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떠든다. 나에 대한 생각은 작아지고 서로에 대한 호기심이 그 자리를 채운다.


가야 할 곳은 분명한데 길을 나서는 게 어렵다. 목은 여전히 뻣뻣하고 어깨는 돌처럼 누른다. 나는 아직 제자리걸음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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