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블스플랜2가 시작한 악플전쟁

일부의 일부를 본다는 것

by 온유

데블스플랜2가 화제다.

넷플릭스에서 공개된 이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은 7일간 합숙하며 매일 새로운 게임에 참가하고 그 결과에 따라 생존자와 탈락자가 나뉜다. 마지막까지 생존한 1인은 3억원가량의 상금을 차지하게 된다.


최종회가 공개된 후 시청자 반응은 처참했다. 정현규, 윤소희, 규현 이 세명의 플레이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연합해 유리한 고지를 점했고 결국 이들 중에 우승자가 정해졌다. 사람들은 이들의 연합이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지나치게 불리하게 작용했고 게임의 재미도 반감시켰다며 열을 올렸다. 개인 SNS와 관련 영상 밑에 댓글은 욕으로 도배됐다. 나도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들의 플레이가 꼴 보기 싫었다. 익명의 네티즌들이 배설하듯 써놓은 댓글들을 읽으니 이상하게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쌤통이다."


정신을 차려보니 그 세명의 프로그램 참가자에게 진심으로 분노하고 있는 내가 있었다. 나는 그들을 개인적으로 알지도 못하고 촬영 현장에 있지도 않았는데 이 분노의 근거는 도대체 뭘까.


편집된 영상이 대중 매체를 통해 모두에게 공개될 때 영상에 나오는 사람들은 고유한 인격체가 아닌 등장인물 중 하나로 소비된다. 카메라 앞에서 참가자들이 하는 행동과 말은 너무나 당연히도 그들의 평소 모습의 극히 일부일 것이다. 카메라는 모든 것을 담을 수 없을뿐더러 촬영된 영상 중 일부만이 편집을 거쳐 대중에 공개된다. 최종 소비자인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일부의 일부에 불과하다.


무언가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선 일정 수준의 노력과 시간, 역지사지의 헤아림,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생각보다 많을 수도 있다는 겸손이 필요하다. 이해할 노력 조차 하지 않고 혐오해버리면, 세상엔 혐오할 것이 너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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