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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찌냥 Jan 03. 2019

등산을 싫어했던 내게 일어난 일

혹시 극한체험이 나에게 더 잘 맞았던 건 아닐까? 생각되는 노고단 등반

묵묵히 고독하게 나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 인생과 닮았다



나는 심한 고소공포증과 멀미, 그리고 계단 공포증 때문에 ‘등산’에 기본적인 거부감이 있는 편이다.

물론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아름다운 풍경과 상쾌함은 올라오는 과정의 힘듦을 잊게 해 주기 충분했지만

내려오면 그뿐. 취미나 꾸준한 운동으로 삼기에는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러다 어느 날 코어스 멤버인 우상이를 통해 ’노고단’에서 2019년 새 해 일출을 맞이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있었고 그렇게 나는 홀린 듯 산에서 처음 맞는 일출에 동행하게 되었다.






수 많은 아웃도어 틈바구니에서 무스탕+레깅스+모직스커트로 버티는 나...

앞서 얘기했듯 평소 나는 등산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기에

복장도, 준비물도 뭐가 필요한지 몰랐다.

(실제로 니트 레깅스에 모직 주름치마를 입고 등산을 했으니 말 다한 거 아닌가?)



노고단=백지연 ㅇㅇ

‘노고단’ 하면 백지연 아나운서만 떠올렸지 위치가 전라남도까지 가야 하는지도 몰랐고,

내가 올라야 하는 산이 어떤 산인지 얼마나 높은지도 몰랐다.

이쯤 되면 알고 간 게 뭔지...?



2018년의 마지막 해가 저물어가는 풍경, 잘가!


설렘 반 걱정 반으로 2018년의 마지막 해가 저물어가는

노을 풍경을 보며 기분 좋게 성삼재 휴게소까지 올라갔다.


산을 오를 때는 이미 짙은 어둠이 깔려 아주 살금살금 조심스레 산을 올라가야 했다.

성삼재 휴게소부터 우리가 묵을 노고단 대피소(숙소)까지 또 산길을 따라 2-3km 정도를 올라가야 했는데 운 좋게도 관리공단 차량 트럭에 히치하이킹?을 하게 되어 정말 편하게 올라갔다!

사실 대피소는 오후 8시면 전체 소등을 하기 때문에 좀 더 빨리 도착했어야 했는데 일행들보다 내가 너무 늦게 도착해버린 탓이었다.




역시 야외에서 먹는건 다 맛있다



우여곡절 끝에 대피소에 체크인(?)을 하고 짐을 푼 뒤 일행과 함께 숙소 밖으로 나왔다.

생전 처음 경험하는 국립공원 산속의 대피소, 취사장 캠핑도구로 끓여먹는 컵라면, 커피 모든 것이 생경했다.



실제로 보는 별 풍경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 와중에도

쏟아지는 별,

설레는 사람들의 표정,

따뜻한 배려까지 기분 좋았던 밤.

쉬이 잠들 수 없었다.




잠자리가 불편한 탓도 있었지만 설레는 맘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밤을 꼬박 지새웠고

나름대로 여러 겹 껴입고 왔는데도 새벽부터 나부끼던 눈발에 살짝 걱정이 앞섰다.


드디어 사람들이 일출을 보기 위해 맞춘 알람들이 울리기 시작했다.

우리도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가장 어둡다는 일출 직전의 시간, 오전 6시 40분 정도부터

약 1km? 정도의 산행을 시작했다.


유일하게 등산화를 신지 않은 나를 위해 일행 분이 기꺼이 아이젠을 빌려주셨다.

웬만하면 초면에 신세 지기 싫어했겠지만 두 번 거절할 상황이 아니었다. 그때는 목숨을 빚진 느낌이랄까.


정상에 오를수록 숨은 점점 가빠오고, 사람들은 말 수가 눈에 띄게 줄어갔다.

사람들의 헤드라이트로 간신히 비치는 돌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가며

‘묵묵히 고독하게 나의 길을 가야 하는 것이, 등산이라는 것은 참 인생과 닮았구나’ 생각했다.

산을 오르는 동안 한번 더 조용히 지난 한 해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2019년을 어떻게 살아 나갈 것인지

다짐할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노고단 정상까지 거의 다 왔다고 생각했던 갈림길이 있었다.

그곳을 올라서자 정말 거짓말처럼 미친 칼바람이

내 몸을 붕-하고 떠밀었다. 신기하고도 무서운 경험이었다.


모자, 외투 할 것 없이 하얗게 변해가는 일행의 모습. 덕분에 괜히 전문 산악인 포스가 난다며 웃었다.

정상에 오른 이들은 마치 북극에서 서로의 온기로 버티려고 하는 펭귄들처럼 옹기종기 모여

서로를 병풍 삼아 추위를 피하고 있었다. 우리 역시 머리카락, 속눈썹이 하얗게 얼고 심지어 코털까지 얼어가는 게 느껴질 정도의 추위와 싸우며 약 3-40분 정도를 더 버텨야 했다.

다행히 정상에 오르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우리 뒤로 병풍이 생겨 다행히 조금 덜 추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저 멀리 떠오르는 일출, 2019년의 첫 해 / photo by. @whitebear9055


떠오를 해를 기다리는 내내 하늘은 점점 밝아지는 게 보이지만

운해가 짙게 깔렸다 없어졌다를 반복하며 감질나게 해는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일출시간으로 알려졌던 오전 7시 37분이 되니 정말 갑자기 거짓말처럼 운해가 쫙 걷히면서

사람들이 기다리던 방향의 약간 왼쪽에서 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의 감동과 경이로움은 뭐라 표현하기 어려운 경험이었다.



‘산은 아래에서 볼 때가 가장 아름답다’ 고 농담처럼 이야기하곤 했지만

사실 오늘 내 눈으로 본 풍경의 아름다움은

사진으로는 차마 다 담아낼 수 없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래서 잠시 갖는 풍경 감상 시간


지리산은 정말 운해가 예술이다.


맹추위 속에 덜덜 떨며 손과 바꾼(?) 사진들
휴게소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풍경은 이렇다


photo by. @whitebear9055
뉴스에서만 보던 눈꽃을 처음 본 날 / photo by. @whitebear9055






이번 산행으로 얻은 것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이렇게 준비가 안된 상황에서도 동행의 도움으로 안전히 등하산을 마칠 수 있었다는 놀라움과 감사함. 그리고 함께해준 사람들.


둘째는, 이 어려운 것도 버텨냈으니 살다가 힘든 순간이 오면 이때를 떠올리며 무너지지 않고 견뎌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과 삶에 대한 의지. (등산에 대한 흥미와 용기는 덤)


셋째는, 웬만한 해외여행 다녀온 것 보다 더 많은 경험과 이야기거리. 



삶은 고독하고 묵묵히 혼자 견뎌야 하는 것. 하지만, 우리가 산을 오를 때처럼

도와주고 끌어주고 잡아주고 온기를 함께 나눌 수 있는 동행이 있어야만

더 오래, 끝까지, 안전하게 마칠 수 있듯 혼자서만 살아낼 수 없는 것 역시 인생이다.

이렇듯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 모습과 닮아있는 등산이 새삼 숭고하게 느껴지는 기분 좋은 새 해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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