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의 신부전 투병 일기
그 날은 너무 이상한 날이었다.
동생이 예정되어있던 일정을 앞당겨 토리를 조금 급하게 동물병원을 데려갔고
괜찮을거라고, 별일 아닐거라고 매번 현실 부정을 하면
감사하게도 바라던대로 별일 아닌 일이 되었는데
이번엔 생각보다도 더 최악의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토리의 병명은 신부전 말기
처음 진단을 받은 작은 동물병원에서는 신장의 기능을 판단할 수 있는
BUN, 크레아티닌 수치 등이 측정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정상 수치를 넘는 상황이었다.
그 이야기를 전화로 듣고 있으니 심장이 쿵하고 내려 앉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정신이 없는 상태에서
회사에서도 안 좋은 일이 연달아 터졌다.
( 상세하게 설명 할 수 없지만, 정말 핵폭탄 급의 일들이었다. )
그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때, 이상하리만큼 몸이 가볍고 개운하게 아침을 맞이 했는데
현진건의 단편소설인 <운수 좋은 날> 이 생각나는.. 그런 날이었다.
그래도 정말 다행인건..
토리의 치료비로 쓸 수 있는 금전적 여유가 있는 상황이었던 것.
회사를 나갈 수 없는 상황이, 금전적으로 쫄릴 수 있는 상황이 오래 지속되지 않았고 바로 일을 구할 수 있었다는 것. 토리가 아픈건 너무너무 슬픈 일이었지만, 어쩌면 토리는 내가 금전적인 이유 때문에 쉽게 치료를 포기하고 최악의 상황에 힘 없이 자신의 손을 놓는 그런 상황을 겪지 않게 하려고 지금까지 버텨준게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모든 것 하나하나에 감사 할 수 밖에 없었다.
( 입원 열흘만에 보리 정기검진 비용 약 50만원 가량을 포함해 400만원 정도의 돈이 들어갔다 ... ㅠ_ㅠ )
물론 토리가 지금도 완치가 되었다거나 완전히 좋아졌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우리 입장에선 지금 토리의 검사 결과 조차 기적인 상황이라.. 이렇게 좋아진 예후가 혹시 우리와 비슷한 상황에 있을 다른 고양이 그리고 그 아이의 가족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몇글자 남겨본다.
지난주 수요일 4/14 에 초음파와 혈액검사 등을 통해 신부전이 많이 진행되고 결석 등이 있는 상황을 알 수 있었는데 토리의 신장 모양이 주머니 형태로 울룩불룩 한 것을 미루어보아 이미 만성으로 많이 진행 됐다고 판단했다.
기능적인 수치를 판단하는 대표적인 지표는 BUN과 크레아티닌 수치 2가지가 특히 좋지 않았는데, BUN 수치는 정상 범위가 17.6-32.8mg/dl 라는 것을 미루어봤을 때 170 이 훨씬 넘는 토리의 검사 결과는 충격 그 자체였다. (첫 병원에서는 140 이상인 수치가 측정이 되지 않아서 140으로만 나왔다.)
크레아티닌 최초 검사 수치는 10.57mg/dl 로 정상 범위인 0.80-1.80mg/dl 에서 10배가 넘게 웃도는 수치였다.
육안으로 봐도 토리의 컨디션이 급격히 좋지 않다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고, 언제 갑자기 심정지가 와도 이상하지 않았기에 중환자실에 토리를 입원시키며 병원에서는 만일의 경우에 CPR을 시행하겠냐고 묻고 보호자의 서명을 부탁했다. CPR을 하게 되면 비용이 추가 되냐고 묻는 내 자신이 너무 비참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조금 더딘 속도로 수치가 떨어졌다.
BUN은 그래도 꾸준히 떨어졌는데 크레아티닌 수치는 7대로 떨어졌다가도 다시 8대로 올라갔다.
병원에서도 수치 변화가 너무 없으면 더이상의 연명치료가 불필요 하다고 판단하고 퇴원조치를 했을 텐데
그래도 토리는 병원 치료와 입원 생활을 비교적 잘 버텨줬다. 콧줄 없이 밥도 잘먹고 약도 곧잘 먹었다.
그래서인지 8로 다시 올라갔던 크레아티닌 수치는 그 다음날 보란듯이 다시 6대로 떨어졌다.
그 다음부터는 우리도 학습 효과가 있었는지 다시 7대로 올라갔을 땐 크게 놀라지 않고 다음날 5대로 떨어지길 기도하게 되었다. 기도했던 대로 그 다음 부터는 계속 쭉쭉 크레아티닌 수치가 떨어졌고 퇴원을 하게 된 오늘 최종적인 수치가 BUN은 50대까지 크레아티닌은 4.3까지 내려왔다.
처음엔 탈수 증상이 심해 몸무게도 평소보다 600g이나 빠지고 오히려 빈혈 수치가 정상으로 나왔지만
신장 수치가 조금씩 좋아지고 탈수 증세가 돌아오면서 약간의 경련 증세가 보였고 빈혈 증상도 나타났다.
그래서 조혈제(적혈구를 생성해주는) 주사를 맞았고 이 결과는 최소 7~10일 정도가 지나야 알 수 있다고 했다. 그래도 토리는 다행히 밥과 간식을 아주 잘먹어주고 있어서 컨디션이 빨리 돌아온 것 같다.
토리는 그렇게 10일 간의 투병을 마치고 4/25 일요일인 오늘
그리웠던 따뜻하고 포근한 집으로.. 언니들의 품으로 돌아왔다..
이제 처방 식단을 하며 식이요법과 약, 피하수액 등의 홈케어를 받으며 지내야 하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우리 곁에 돌아와줘서 얼마나 기쁜지..
분명히 알고 시작한 일이었다.
언젠가는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
끝이 정해져있는 것들.
우리는 그렇게 '죽음' 이라는 피할 수 없는 끝을
애써 외면하고 부정하며
새로운 만남을 계속해서 만들어 간다.
'결혼' 이라는 새로운 가족을 만드는 일을 핑계로
사랑하는 내 새끼, 내 아가들을 소홀히 한 것은
부정 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이번 일을 통해 아이들에게 너무 무심했던 나를
스스로 크게 꾸짖고 반성하고 많은 것들을 깨우쳤다.
그러니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지..
토리를 입원시키며 약속했던 것 처럼..
1년이라도.. 아니 한 달만이라도 좋으니 언니랑 더 같이 있자. 오래 같이 있자..
분명 끝은 언젠가 다시 다가오겠지만,
그 알 수 없는 때가 왔을 때 맥 없이 너희를 포기하지 않도록
후회로 가득한 하루 하루를 보내지 않도록 내가 더 잘할게..
사랑해. 토리 그리고 보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