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고원』 (질 들뢰즈) 제4장 강독 후기
오늘 아침 일어나서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점심을 먹고 강아지를 산책 시키다가 강아지가 갑자기 뒷산으로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예기치 않게 뒷산을 오르게 되었다. 단풍이 아름다웠다. 나는 '이 단풍이 어디까지 빨간색이고, 어디까지가 노란색인지 픽셀 단위로 구분해주마!'라고 생각하며 킥킥 웃었다. 낙엽을 밟으며 산책을 하는데 머릿 속에 '소요유'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소요유. 산책하듯 사는 삶.
어제 내가 쓴 글을 다시 읽어 봤다. 제일 마지막 문단에 "내가 보지 못하는 걸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기쁨이지 않을까"라고 적어 놨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게 많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까지는 좋았으나, 저 문장을 다시 읽으며 내가 여전히 빈틈을 메우고 싶어하고 그 도구로서 타자를 이용하려는 욕망이 있다는 걸 알았다. 어휴. 진짜 나는 철 들려면 멀었다.
내가 차이를 부정했던 진짜 이유는 흔들림이 싫어서다. 아니, 흔들림이 무서워서다. 아마 그것도 '구분짓기'와 연관이 있지 않을까. 내가 살던 동네 강남 사람들의 구분짓기를 떠올리면 두 가지 이미지가 생각난다. 하나는 섬마을에 불이 나서 몇몇 사람들이 구명 보트를 타고 탈출해 불타는 마을을 보며 슬퍼하는 게 아니라 '어휴, 난 살아서 다행이다'라고 안도하는 이미지. 다른 하나는 아이들이 바글바글 모여있는 운동장에서, 누군가가 바닥에 원을 그린 뒤 그 원 안에 들어가야만 살 수 있다고 명령하고, 그 원 안에 더 작은 원을, 더더 작은 원을 그리는 이미지. 갑자기 들뢰즈가 말한 게 생각난다. "다수파는 추상적 표준 속에 분석적으로 포함되는 한 결코 그 누구도 아니며 항상 <아무도 아닌 자>이지만, 소수파는 그가 모델로부터 일탈하는 한에서 모든 사람 되기이며 모든 사람의 잠재적 역량을 갖게 되기이기 때문이다."
다수파는 왜 구분짓기를 할까? 그게 다수파가 권력을 유지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소수의 사람이 독점할 때만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권력'이 된다. 모든 사람이 권력을 쥐었을 때, 권력은 모든 사람들의 것이며 누구의 것도 아니게 된다. 아마도 <차이와 반복>에서 들뢰즈가 '왕관을 쓴 무정부주의자'라는 표현을 썼던 게 이러한 상황을 뜻하는 것일 테다.
난 다수파의 핵에서 태어나, 평생을 '구분짓기'에 매진하며 살아왔다. 나의 특별해지고 싶은 욕망은 구분짓기가 극단으로 치닫은 결과일 뿐이다. 그러니까 나는 다른 강남 아이들에 비해 원을 더 작게 작게 그리다가 좌초한 케이스다. 첫번째 좌초는 더 작은 원, 더더 작은 원에 들어가는 게 너무 힘들어서 왔고, 두번째 좌초는 그렇게 원 안에 들어가봤자 그 작은 원에는 결국 나만 남게 된다는 사실을 인지해서 왔다. 첫번째 좌초의 시점이 내가 철학공동체에 기어 들어온 순간이다. 나는 자본주의에서 탈진해 철학 응급실에 실려와 인공호흡 받으면서 겨우 기력을 회복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해왔던 게 구분짓기밖에 없어서 난 이 공동체에서도 구분짓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철학공동체 안에서 구분짓기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난 머리로만 원을 꿈꾸는 스타일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핵에 있을 때도 원 안에 들어가려고 온몸으로 애를 썼다. 그건 철학을 배우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참으로 아이러니하지만 나는 '구분짓기'를 하려고 철학을 열심히 했다. 이렇게 쓰면 별로 절박해 보이기 않는데, 강남인들에게 '구분짓기'는 지적허영처럼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악세사리' 같은 문제가 아니다. 강남인들에게 '구분짓기'는 생존 본능, 예를 들면 '마을이 불타고 있는데 내가 구명보트를 탈 수 있나 없나'처럼 절박한 문제다. 이미 먹고 살기 충분한 이들이 뭐 그리 오버하나 싶을 텐데(그리고 오버하는 거 맞는데), 그 안에 있으면 그게 정말 생존 문제처럼 느껴진다.
생각이 튀는데, 갑자기 강남인들은 영토에 대한 집착이 강한 사람들 아닐까 싶다. 지박령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자신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영토에 붙어있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영토 밖의 세상은 거의 불지옥에 다름없다. 들뢰즈가 '질 들뢰즈 A to Z' 인터뷰에서 전쟁 후 도빌 해변에 노동자 계급이 몰려들어온 상황을 묘사하는 부분이 생각났다. 도빌 해변은 원래 오랫동안 부르주아들이 찾아 오는 해변이었는데, 전쟁 후에 유급 휴가를 받은 노동자 계층이 도빌 해변에 몰려오자 들뢰즈의 어머니가 매우 싫어했다고 한다. 부르주아들에게 노동자들이 도빌 해변에 몰려왔다는 사실은 독일군이 탱크를 몰고 해변으로 진격하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이었을 거라고. "내 생각에 부르주아는 그런 두려움을 세습하는 것 같다네." 들뢰즈가 이 말을 했을 때 깊이 공감했다.
안전한 영토를 규정하고, 그 영토를 사수하는 것. 그게 다수파의 욕망이다. 그런데 왜 그들은 안전한 영토를 규정하고 싶을까? 불안해서다. 불안하니까 안전한, 아니, 더 정확히는 '안전하다'고 기표를 붙여놓은 한 영역을 만들어 놓고, 그 안에 있으면 '영원히' 안전하다고 믿고 싶은 거다. 나는 항상 궁금했다. 왜 다수파는 구분짓기를 멈추지 않을까. 안정감을 느끼고 싶어서 안전한 영토 안에 안착했으면 안정을 찾아야지, 왜 또 불안하다고 그 안에 '더 안전한' 영토를 구축하려고 할까. 나는 '구분짓기'의 동력이 뒤틀린 탐욕이나 야심 때문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닌 것 같다. '구분짓기'의 동력은 불안이다.
불안하니까 안전한 영토를 만들었는데, 그 안에 있어도 불안하니까 또 안전한 영토를 만드는거다. 세상은 원래 흔들림인데, 흔들림을 없애려는 시도가 다수파의 헛발질이다. 나도 그랬구나. 나는 이제서야 강남에서 진짜 탈주하기 시작한 것 아닐까.
영토에 대한 집착. 그게 내 특별하고자 하는 욕망이었지. 어쩌면 극도의 불안감이 날 살렸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너무나도 불안했던 거다. 불안한데 불안을 껴안는 방법은 몰랐으니, 강한 아버지라는 영토에 극도로 집착했던 것이다. 아버지처럼 안전한 영토가 없어 보였다. 아버지는 혈육이니까 나를 버릴 일은 없고, 경제적으로도 안전했으니까. 근데 아버지의 영토에 있으면서도 나는 근원적 불안감을 느꼈다. 이제서야 그게 참 다행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의 영토에 있으면서 애매하게 안정감을 계속 느꼈으면 난 탈주하지 못했을 거다. 나는 진짜 너무나도 불안한 영혼인 나머지, 아버지처럼 안전하디 안전한 영토 안에서도 졸라 불안감을 느꼈다. 그래서 아버지한테 더 집착하고 더 집착하다가, 결국 그 영토가 황폐화된 나머지 다른 쪽으로 튀어버린 거다.
그 튀어버린 곳에 지금의 철학 스승이 있었다. 하지만 내 정서적 아버지가 바뀌어도 불안은 사라지지 앟았다. 그래서 나는 이번에는 또 스승과 철학공동체라는 영토에 졸라 의존하고 집착했다. 영토만 강남에서 영등포구청으로 바뀌었을 뿐, 양태는 비슷했다. 이 안에서 구분짓기를 하고 싶었던 것도, 계속해서 불안을 느꼈던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영토 밖 세상에 대한 공포심은 영토가 바뀌어도 여전했다.
근데 참 이 철학공동체는 묘한 영토였다. 이곳은 영토였지만 열려 있는 영토였다. 테두리는 있지만, 세포막 같은 테두리가 있는 영토. 난 공동체 안에서도 안정감을 느끼면서도 계속 불안정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영토 밖 세상은 '차이' 아닌가. 강남인들은 왜 영토에 집착할까. 그들은 차이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매우 큰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차이인데 차이가 공포스러우니 차이 없는 허상의 영토에 숨은 사람들이다. 그러니까 나에게도 그 아비투스는 있다. 나는 차이가 공포스러웠다. 그래서 안전한 영토 안에 숨었는데 이 철학공동체는 차이에 열려있는 영토 아닌가. 이 안에서 나는 안정감과 불안감을 동시에 느꼈다. 처음에는 차이를 무화시켰다. 그러다가 몇번의 헛발질 끝에 차이를 이해하려 했다. 그건 빈틈을 싫어하는 내 성격도 한 몫했다. 이질성을 마주했을 때 두려우니까 빨리 그 이질성을 이해하려고 하는 거다. '얘는 왜 이런 행동을 할까, 얘는 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을까?' 그 사람을 구성하는 항들을 찾아서 그 사람의 구조를 이해해 이질성의 불편함을 희석시키려는 시도.
그런데 그게 내 한계가 아니었을까. 물론 예전보다는 훨씬 낫다. 예전에는 이질성을 만나면 자동소총으로 쏴버렸다. 그런데 이제는 이질성을 일단 '존재'로 받아들이긴 하니까. 그런데 이질성의 불편함을 없애려는 시도 자체가 이미 이질성을 부정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차이를 무화시키는 애새끼'에서 '차이를 인정하는 인간'까지는 왔는데, 거기서 다시 공허함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생각이 또 튀기 시작한다. 나는 왜 타자의 잠재성을 잘 보지 못하는 것일까. 나는 현재 상태를 스냅샷 찍어서 이게 왜 이런지 설명하는 것은 꽤 잘하는 편이다. 철학을 배우고 내 혼란한 무의식을 논리로 정돈하고, 이질적인 이들을 논리로 이해해보려고 노력한 결과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이해했을 뿐, 사랑하지는 못했다. 그건 내 자신에게도 마찬가지다. 나는 날 이해하지만, 사랑하지는 못한다. 그래서 내가 지금 왜 이런지는 잘 분석하지만, 내 안의 잠재성은 잘 보지 못하는 것이다. 내 자신도, 타자도 '펄떡펄떡 살아움직이는 존재'로 만나는 게 아니라, 엑스레이 화면을 통해 만나는 것이다.
차이가 너무 무서우니까 빨리 이해하려고 엑스레이를 찍는다. 차이가 나면 그냥 차이가 나는 대로 일단 가만히 두면 되는데. 모호함을 견디지 못하니 빨리 기표를 붙여야 속시원한 것이다. 그리고 기표를 붙이는 순간, 애정은 급감된다. 나는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는 게 문제가 아니다. 나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있다. 다만 너무 빨리 기표 붙이려고 할 뿐.
하지만 사람은 오래 볼 일이란 생각이 드는 게, 나의 엑스레이도 차이나는 반복을 한다. 예전에는 엑스레이를 한번 찍고 말았다면, 여기 있는 사람들은 긴 호흡으로 계속 만나니까 엑스레이를 갱신해서 찍을 수밖에 없다. "어? 얘가 바뀌었잖아. 왜 그러지?"하면서 한번 또 찍고, 그러다가 또 바뀌면 한번 또 찍고. 나는 그 엑스레이의 반복으로 인간은 무정형의 연속체라는 사실을 깨달았나 보다. 그러니까 '기표 붙이기'의 반복으로 '기표-없음'의 세상이 있다는 걸 알아챈 거다. 기표를 한번만 붙이는 건 문제지만, 계속 갱신해서 붙이는 건 '차이나는 반복'이구나. 엑스레이를 계속해서 찍다가 더 이상 엑스레이를 찍을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아버린 것 같다.
오늘 아침 '소요유'라는 단어가 떠오른 것도 그 때문일 테다. 차이가 혐오의 대상, 이해의 대상이 아니라 애정의 대상이 될 수 있음을 약간은 깨달은 것 같다. '너는 이런 색깔을 가져서 사랑스럽고, 너는 이런 주름을 가져서 사랑스럽구나!' 이런 생각을 진심으로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구별짓기'의 흑백 세상에서 이제 막 탈주하기 시작했나 보다. 그래서 오늘따라 단풍의 다채로운 색깔이 예뻐보였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