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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Jan 24. 2022

5. 초선형성 - 강아지가 '보는' 세상

『천 개의 고원』 (질 들뢰즈) 제4장 강독 후기

강아지가 보는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호두랑 뒷산에서 산책을 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단풍이 아름다웠고 선선한 바람에 낙엽이 흩날렸다. 그 색깔과 낙엽소리 밟는 소리가 좋다는 생각을 했다. 단풍잎의 색을 봤다. 빨갛지도 노랗지도 않은 색. 호두도 기분이 좋은지 낙엽길을 걸으며 끊임없이 킁킁 댔다. 땅에 코를 박고 걷다가 바람이 불면 고개를 들어 바람 냄새를 맡았다. 순간적으로 지금 나와 호두는 같은 공간을 다르게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두가 보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

호두에게 후각은 인간에게 시각일까. 호두가 보는 세상을 보려면 후각 정보를 등고선으로 그려야 하나. 호두의 세상에서 냄새는 높낮이로 느껴질까 아니면 색의 채도나 명도처럼 느껴질까. 개의 시각은 흑백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색이 개에게 후각일까. 내가 호두가 보는 세상을 표현한다면 흑백 시야에 후각 정보를 색의 채도로 구분하게 될까. 냄새가 진하면 진한 색으로, 냄새가 옅으면 옅은 색으로. 냄새의 구분은 색깔로 구분하고. 호두가 좋아하는 색은 무슨 색일까. 호두가 좋아하는 냄새를 내가 좋아하는 색깔로 표현하면 좋겠다. 근데 호두가 좋아하는 냄새는 뭘까?




몇일 전에 친한 언니가 시각장애 아동들을 위해 그림책을 읽어주는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고 했다. 언니는 수업에서 시각장애인들은 그림을 보지 못하니까 최대한 책에 있는 시각 정보를 있는 그대로 묘사해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배웠다고 했다. 예를 들면, 그림책에 있는 그림을 "단발 머리를 하고 파란색 체크무늬 잠옷을 입은 5살짜리 여자아이가 주황색 이불을 덮고 노란색 매트리스가 있는 침대 위에서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고 있습니다"라고 묘사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그림을 묘사함과 동시에 그림책의 텍스트 정보(그림책의 이야기)도 전달해야 한다. 언니는 그림을 어디까지 묘사하는 게 좋을지 고민이라고 했다. 난 그 말을 할 때 언니 얼굴 주변에서 반짝임 같은 걸 보았다.


동시에 나도 그 작업에 굉장히 흥미가 갔다. 언니 말을 듣자마자 "시각장애인들에게 주인공이 일어난 침대의 매트리스 색이 주황색인 게 정말 의미있는 정보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게 의미있는 정보인지 아닌지를 '비장애인'이 판단하는 것 자체가 폭력일 수 있다는 건 안다. 그래서 그 교육에서도 최대한 우리가 보는 모든 것을 빠짐 없이 전달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던 것이겠지. 하지만 내 솔직한 심정은 그건 욕 먹지 않기 위한 방법이지, 최선의 방법은 아닌 것 같았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스승이 시각장애인들을 청각으로 정보를 받아들이는 데 익숙할 테니 청각이 우리 시각만큼이나 예민할 것이라며, 우리가 시각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를 청각화하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다. 예를 들면, 비장애인이 그림책을 볼 때, 거기에 있는 모든 이미지 정보를 다 같은 중요도로 받아들이지 않으니 그 시각의 높낮이를 청각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였다. 예를 들면, 중요한 정보는 큰 소리로 말하고, 주변 정보는 뒤에 깔리는 배경음처럼 처리하고. 그때 스승의 이야기를 들으며 되게 신박하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스승도 그림책은 애초에 '시각'인들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니 그걸 '청각'으로 변환(번역)하기보다는 청각인들의 '그림책'은 어떤 모습일지 고민해 보는 게 더 좋을 것 같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시각장애인 주인공이 빗소리로 이미지화한 사랑하는 이의 얼굴 - <데어데블> 중


만일 내 아이가 시각장애인이라면 어떨까? 상상해봤다. 시각장애인 아이에게 '주황색'을 가르치는 게 의미가 있을까? 그 아이에게는 청각과 후각과 촉각의 색이 있을 텐데 말이다. 나는 그 아이가 보는 세상을 보고 싶을 것 같다. 그리고 그 아이가 세상을 보는 방식에 맞추어, 내가 보는 세상을 보여주고 싶을 것 같다. 만일 호두가 내 아이였다면, 나는 호두가 좋아하는 냄새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호두처럼 땅에 코를 박고 냄새를 맡아 보았을 거다. 그렇게 호두가 감각하는 세상에 한걸음이라도 가닿아 보려고 부단히 애를 썼을 거다. 결코 그가 보는 세상을 나는 볼 수 없지만, 그가 보는 세상의 그림자나 희뿌연한 윤곽이라도 보려고, 그를 관찰하고 그에게 질문하고 그처럼 행동해보았을 것이다. 그게 -되기 아닐까.


예전에 청각장애인이 그린 "나는 귀머거리다"라는 생활 웹툰을 매우 인상깊게 본 적이 있다. 거기에 작가가 처음으로 음악을 '본' 경험에 대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작가는 선천적 청각장애인이라 '음악'을 개념으로만 알 뿐 감각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날 티비에서 퀸의 음악이 나왔는데, 그 음파의 진동을 피부로 느끼고 '이게 음악'이라는 걸 직관적으로 느꼈다고 했다. 그 뒤로 그녀는 퀸 음악에 빠져 큰 스피커를 사 그 스피커를 껴안고 퀸의 음악을 피부로 '들었다'고 했다. 쌤이 그림책을 청각화하는 이야기를 하는데 그 장면이 딱 떠올랐다. 그녀가 큰 스피커를 껴안고 피부의 진동으로 음악을 '듣고 있는' 장면이 떠올랐는데, 순간적으로 그 장면이 너무 아름답게 느껴지면서 살짝 울컥했다. 그녀의 옆에서 그 스피커를 껴안고 함께 음악을 '듣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웹툰 <나는 귀머거리다>의 작가 라일라님. 퀸과 레드 제플린 덕후시다.




산책을 하며 호두가 보는 세상을 상상해 보고 있는데, 순간적으로 내가 보고 있던 풍경이 생경해보이면서 세상이 생동감 있게 보였다. 표현이 잘 안되는데, 순간적으로 세상이 꿈뜰하는 느낌이었다. 호두는 코로 냄새를 맡으며 발바닥으로 흙과 낙엽을 움켜쥐며 바람을 맞으며 걷고 있구나. 강아지는 땅을 움켜쥐면서 걷기 때문에 모래바닥이나 잔디밭, 낙엽더미 위를 걷는 것을 좋아하고 콘크리트 바닥을 싫어한다고 했다. 낙엽을 움켜쥐며 걷는 기분은 뭘까. 호두의 발바닥은 뭘 느끼고 있을까.


피부는 감각의 최전선이자 마지노선이지 않을까. 시각, 후각, 청각, 미각 장애는 있어도 선천적 촉각 장애는 없다. 어떤 이유로 피부 전체가 마비되면 어떤 기분일까. 하긴 후각과 미각은 점막(피부)의 감각이고, 청각은 고막(피부)의 공명이며, 시각도 망막에 빛의 자극이 감각되는 거구나. 그렇다면 모든 감각은 다 촉각이라 할 수 있다. 점막도, 고막도, 망막도 결국은 피부이니까. 피부는 세포막이다. 그렇다면 감각이란 세포막과 외부 환경이 공명이라 할 수 있다.


세상은 지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온갖 감각 지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시각의 지층, 후각의 지층, 청각의 지층. 애초에 시각, 후각, 청각으로 감각을 나누는 건 무의미할지도 모른다. 생동감으로 꿀렁이는 그 무엇. 초선형성으로 가득차 있는 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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