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나와 '수민'은 대학교 룸메이트다. 우리는 미국 유수 명문대의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유학 시절, '수민'은 힘들고 외로웠던 나를 보살펴주던 고마운 친구다. 우리는 대학 졸업 후 한국에 돌아와 스타트업 회사를 차렸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도 사업은 잘 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수민'은 사업을 그만 두고 '쿠팡'에 취직했다. '쿠팡'이 지금처럼 큰 회사가 되기 전의 일이었다. '수민'은 '쿠팡'에 가서 열심히 일했다. 어느 날 '수민'과 점심을 먹었다. '쿠팡'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냐고 물었다. '수민'은 '쿠팡'맨 관리앱을 기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쿠팡'맨을 관리하는 데 어떤 애로 사항이 있는지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었다. '수민'은 그 애로 사항들을 어떻게 시스템적으로 방지하고 관리할 수 있는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마치 컨설팅 회사의 취업 면접 문제라도 받은 것처럼 함께 짱구를 굴렸다. 흥미로운 기획이라고 생각했다.
좋아하던 친구가 있었다. 나와 '준성'은 한 인문학 공동체에서 만났다. 나는 그 후로도 몇 년 동안 스타트업 회사를 붙잡고 있다가 결국은 사업을 포기했다. 인생의 목표가 성공한 사업가가 되는 것밖에 없었던 나는 크게 좌절했고 방황하다가 한 인문학 공동체에 다다르게 되었다. 거기서 나는 이제껏 결코 만날 수 없었던, 나와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을 만났다. 그중 한 명이 '준성'이었다.
'준성'은 경제적으로 넉넉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런저런 일로 생활비를 벌던 그는 어느 날 '쿠팡' 물류 센터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도 난 별 생각이 없었다. 단순히 ‘몸 쓰는 일이니까 많이 빡세겠네’ 정도로 생각했다. 그는 일을 마치고 돌아와 종종 '쿠팡'에서 겪은 일들을 나에게 말해주었다. 그 이야기들을 듣고 나는 마음이 쪼개지는 것 같았다.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주는 앱이 있다고 했다. 일하는 사람의 움직임을 추적하다가 한 자리에 몇 분 이상 멈추면 관리자에게 자동으로 알림을 보내는 앱. 실시간으로 물건 나르는 개수를 기록하고 분당 목표치 아래로 떨어지면 전체에 경고 방송을 울리는 앱. 그는 그 앱이 알림을 보내는 시간대를 추정해서 좀 쉬다가 알림을 보내기 직전에 움직이는 꼼수를 터득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하지만 그의 너스레에 나는 웃을 수가 없었다. 그 치사스러운 앱과 다를 바 없는 앱에 대해 실컷 떠들던 내가 생각나서였다.
치사스러웠다. '쿠팡'이라는 회사가. 한 여름에 일을 하는데 창고에 에어컨도 안 틀어준다고 했다. 제대로 된 휴게실도 없다고 했다. 일하다가 잠시 앉아 쉴 의자도 없어서 화장실에 가서 쉬어야 한다고 했다. 포장 일을 하는 아주머니들은 하루 종일 의자도 없이 서서 포장을 한다고 했다. 점심시간 빼고는 제대로 된 쉬는 시간도 없다고 했다. 쉬는 시간이 20분 있는데 알고 보니 그중 10분은 점심시간에서 제한 것이라고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헛웃음이 났다. 그렇게 해서 몇 푼 줄이겠다고, 치사해도 그렇게 치사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마냥 같이 욕을 하며 화내지도 못했다. 그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내 마음 속에서는 '쿠팡'의 다른 쪽 이야기가 동시 재생되었기 때문이다.
한강 뷰 아파트를 공짜로 준다고 했다. '쿠팡'의 이사장 ‘범석’은 이상하리만큼 해외파 인재들을 편애한다고 했다. 유학생도 아니고 외국인 인재들을 기가 막히게 스카우트해 와서 업계 최고의 대우를 보장해준다고 했다. 그 당시 그가 관리하는 인재들은 모두 50~60평대 한강 뷰 아파트에서 호텔식 서비스를 받으며 생활했다. 연봉은 해외의 잘나가는 대기업들 임원 수준으로 맞췄고 주식도 후하게 줬다. 몇 년 뒤 '쿠팡'은 IPO(기업공개)를 했다. 그 덕에 그 인재들은 모두 어마어마하게 많은 돈을 벌었다. 본인이 평생 놀고먹어도 될 정도를 넘어, 삼대가 평생 놀고먹어도 될 만큼의 액수였다. '수민'은 그들을 부러워했다. 자기도 조금만 더 일찍 '쿠팡'에 합류했으면 그 주식을 받을 수 있었을 거라고 했다. 그랬으면 지금쯤 은퇴하고 교외에 전원주택을 지어 가족들이랑 살 수 있었을 거라고 했다. 한편 '준성'은 물류센터에서 일하고 오는 길 지하철에서 '쿠팡'앱을 켤 때가 제일 기분이 이상하다고 했다. 어떤 날은 '쿠팡'에서 반나절 일하고 번 5만원 남짓한 돈을 퇴근길 '쿠팡'에서 생필품을 사다가 다 써버릴 때도 많다고 했다. '쿠팡'이, 아니, 자본주의가 ‘분업’이라는 이름으로 교묘하게 가려놓은 이야기들이 내 마음 속에서 어지럽게 피어올랐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수민'의 친구이기도 하고, '준성'의 친구이기도 했으니까.
나는 '수민'을 비난할 수 없었다. '수민'은 단지 회사에서 인정받고 싶었기에 직장에서 주어진 일을 성실히 해냈던 것일 뿐이니까. 또 그녀는 평소에 주변 사람들은 배려하고 보살펴주는 따뜻한 성품의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나는 '준성'을 옹호할 수도 없었다. 그는 물류센터에서 고된 일을 했지만, 기회만 된다면 언제라도 '범석’이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게 '쿠팡'을 둘러싼 '수민'과 '준성'의 이야기는 내 마음속에 묻혀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일론 머스크’에 대한 영상을 보게 되었다. 일론 머스크가 어린 시절 부모가 이혼을 하고 학교에서 왕따도 당해 애정결핍의 골이 깊어 여성 편력이 심하다는 내용이었다. 그 영상을 보고 갑자기 웃음이 났다. "내 그럴 줄 알았지!” 조롱의 감정이 들었다. '애정결핍도 참 글로벌 스케일로 하는구나. 우리 일론이, 돈도 많고 명예도 얻었는데 마음이 안 채워지니까 탐욕이 화성에까지 뻗었나 보네? 아이고, 지금쯤 누가 쟤 좀 사랑해주면 적어도 화성은 안 갈텐데. 쯧쯧.’ 그렇게 혼자 '일론 머스크'를 물고 뜯고 씹으며 낄낄댔다. 그런데 그 조롱 끝에 이상하게 찝찝함이 묻어났다. 또 한 참 시간이 흘러 그 찝찝함의 정체를 알았다. 나는 자본가를 대놓고 비난할 수 없어 자본가의 상징인 '일론 머스크'를 혼자 조롱한 것이었다.
사실 나는 '준성'도, '수민'도 아닌 '범석'을 욕하고 싶었다. '범석'의 삶은 모르지만, '범석'으로 대표되는 자본가들을 욕하고 싶었다. ‘너 이제 먹고 살 만큼 벌었잖아. 솔직히 너 이제 돈이 필요한 것도 아니잖아. 너 대단히 능력 있고 똑똑한 거 잘 알겠으니까 이제 그만 좀 처먹자.’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는 '범석'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자본가의 딸이기 때문이다. 내가 바로 ‘또 다른 범석’이 탐욕적으로 벌고 지켜낸 돈으로 놀고먹으며 자란 아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범석’이 왜 돈을 계속 벌고 지키고 싶은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그 ‘또 다른 범석’도 어린시절 가난했다. 어머니는 집 나갔고 형제들은 많았으며 아버지는 사랑해주지 않았다. 애정결핍이 생겼다. 그는 돈을 벌고 성공하고 가족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인정을 받았다. 그렇게 ‘또 다른 범석’에게 돈은 곧 사랑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돈이 많아도 계속 돈을 벌고 싶고, 돈이 많아도 돈이 없어질까봐 항상 불안한 사람이 되었다. 그에게 사랑은 곧 돈이니까. 하지만 돈은 사랑이 아니다. 이제 ‘일론 머스크’에게도, ‘범석’에게도, ‘또 다른 범석’에게도 말하고 싶다. 돈은 사랑이 아니라고. 그래서 돈으로 마음은 채울 수 없다고.
나는 자본가의 딸이다. 나는 자본가가 탐욕스럽게 벌고 지켜낸 돈으로 여전히 놀고먹으며 편하게 살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고 싶다. 돈이 많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어느 정도 먹고 살만 한데도 그 이상 돈을 벌고 지키고 싶은 마음은 탐욕이다. 내가 삼대가 먹고 살 만큼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면, 어떤 이에게는 삼대를 고생시킬 가난이 주어진다는 뜻이다. 내가 한강 뷰에 아파트에 살고 그 아파트 가격이 오르기까지 한다면, 어떤 이는 곰팡이 피는 반지하방에서 다음 달 오를 월세를 걱정하며 살아야 한다는 의미다. 내가 억대 연봉을 받고 있으면 어떤 이는 의자에 앉을 새도 없이 일을 해야 한다는 의미다. 지구의 자원은 한정되어 있기에 내가 적정 수준 이상으로 많이 가지면 반드시 다른 사람은 그 만큼 못 가지게 된다. 자본주의는 그 연결고리를 교묘하게 숨겨놓는다. 세상에는 다른 이가 먹고 있는 사과를 직접 뺏어 먹고 싶은 사람은 많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이의 사과를 뺏는 것인지 모르게 한다. 내 친구가 아무 생각 없이 만든 앱이 내 또 다른 친구의 노동을 착취했던 것처럼 말이다.
나는 그 연결고리를 보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돈이 많은 게 부끄러운 일이라는 걸 안다. 그건 내가 착해서가 아니다. 그건 내가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이들과 함께 생활하며 그 친구들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내가 다니던 경영대에서는 고용유연화에 대해 가르쳤지만, 나와 매일 밥을 먹는 친구가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급작스레 계약해지되어 알바를 전전하며 고생하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동네에서는 이명박 때문에 법인세 줄었다며 좋아했지만, 나와 함께 공부하던 친구가 이명박 때문에 저소득층 장학금이 갑자기 취소되어 대학교에서 짤릴 뻔 했던 걸 알기 때문이다. 나 또한 스타트업할 때 당시 존경하던 중국의 사업가 마윈이 "서른 다섯까지 가난하면 그건 당신의 책임이다"라고 말한 것에 동의했지만, 이제는 세상에는 마윈보다 훨씬 가난했던 사람도 많으며, '노력할 수 있는 힘’ 자체가 그 사람이 지나온 상황들이 만들어낸 결과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가난 때문에 상처받고 고생한 친구들의 삶을 보며 온몸으로 느꼈기 때문이다. 남의 돈을 뺏어서 부자가 된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착취한 걸 알았다면 알아서 부끄러운 일이고, 몰랐다면 몰라서 부끄러운 일이다. 아무도 사랑하지 못했다는 것은, 안쓰러운 일일 수는 있지만 부끄러운 일이다. ‘일론 머스크’도, ‘범석’도, ‘또 다른 범석’도 저마다 안쓰러운 사연이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아무도 사랑하지 않은 삶을, 아무도 사랑하지 않아서 생긴 탐욕을 정당화할 수는 없다. 나와 다른 삶을 살아온 이를 한 명만 사랑해보면 안다. 내가 아무 생각 없이 한 일이 너에게 어떤 고통을 끼칠 수 있는지. 돈이 많다는 것은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은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나는 그 부끄러움을 조금이라도 덜며 살고 싶다. 나는 ‘나'도 아닌, 나와 비슷한 '또 다른 나'도 아닌, 나와 다른 ‘너’의 편에 서고 싶다. 삶은 누구의 편에 서느냐에 달려 있다. 나는 ‘너’의 편에 서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