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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Dec 02. 2022

'나'와 '돈', 그리고 '따뜻함'

나는 돈에 대한 상처가 없다고 생각했다. 평생 그렇게 생각해왔다. 부잣집에서 태어나서 평생 부잣집 딸내미로 살아왔으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돈 문제로 걱정해본 적도 없고, 돈이 없어서 사고 싶은 것을 못 산 적도 없고, 돈 때문에 드럽고 치사한 일을 겪은 적도 없고, 돈 때문에 가족끼리 서로 상처내며 싸우는 걸 본 적도 없다. 나의 부자 아버지는 자기가 돈 때문에 아팠던 과거가 있었기에, 나에게 종종 돈 없는 삶이 어떤 것인지 이야기해주곤 했다. “혜원아,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는 것은 힘들고 서러운 거야. 너는 운 좋게 (좋은 아빠 만나서) 그 아픔을 피한 것이니 그걸 특권이라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해.” 지금 생각해보면 본인 생색내려고 했던 말 같지만, 나의 아버지는 정말로 열심히 돈을 벌어 본인의 과거를 뒤집은 것이기에, 적어도 그 만큼은 나에게 돈에 대한 균형잡힌 인식을 심어줄 수 있었다. 아버지 덕에 내가 경험하진 않았어도 돈이 없는 것은 아픈 일이며, 내가 그 아픔을 별다른 노력 없이 피해갈 수 있었던 것은 특권이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적어도 나는 돈 없는 이들 앞에서 돈으로 뻐기거나 그들이 돈 때문에 겪었던 상처를 깎아내리는 몰염치한 짓은 하지 않게 되었다. 그게 내가 나와 경제적으로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이들과도 곧잘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다.


나의 돈에 대한 인식은 평생 거기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돈에 대한 상처가 없다. 그건 특권이다. 특권을 누렸으면 적어도 그것에 대해  닥치는 염치는 있어야 한다.”  거기까지. 하지만 최근에 나의 돈에 대한 인식이 확장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지혜로운 자를 스승으로  것은 정말 행운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자수성가한 나의 아버지보다 돈에 대해  확장된 인식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다.  확장된 인식은, 자본주의를 넘어서는 경험을 해본 자가 아니면 도달할  없는 영역일 테니까. 최근에 스승이 나에게 알려주었다. “혜원아, 너도 돈에 대한 상처가 있다. 이제 그걸 직면할 때가 왔다.” 아무도 꺼내주지 않았던, 아니, 꺼내줄  없었던, 내가  때문에 상처받았던 기억을 스승이 꺼내주었다.




돈 때문에 상처받았다.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돈이 많아서 상처받았다. 그게 뭔 개소리냐 하겠지만, 그게 내가 돈 때문에 상처받은 지점이 맞다. 돈이 많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언제든지 대체할 수 있다는 의미다. 돈을 가지고 있으면 이 상품도 살 수 있고, 저 상품도 살 수 있다. 심지어 돈을 가지고 있으면 어떤 문제에 대한 해결책도 살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자본주의가 돈에 대해 심어놓은 환상이다. 돈을 갖고 있으면 삶에 문제가 일어나도 쉽게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는 환상. 아니, 돈을 갖고 있으면 삶에 문제가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는 환상. 나의 돈에 대한 상처는 그 환상 때문에 생겼다.


돈은 거리를 만든다. ‘나’와 ‘너’ 사이에 ‘돈’이 끼면, ‘나-너’의 관계가 ‘나-돈-너’가 된다. 돈은 교환을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돈은 매개체다. 매개체란 무엇인다? 무엇과 무엇 사이에 끼는 존재다. 돈은 매개체이기 때문에 ‘나-너’ 사이에 끼고, 돈이 낀 순간, ‘나-너’의 관계는 ‘나-돈-너’가 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 (돈으로 교환할 수 있는 무엇) – 너’가 된다. 나와 너 사이에 돈으로 교환할 수 있는 무엇이 낀 순간, 나와 너의 거리는 그 만큼 멀어진다. 그게 내가 돈 때문에 상처받은 지점이다.


아플 때 곁에 있어주지 않았다. 나는 ‘너’가 필요했다. 하지만 ‘너’는 나에게 돈을 주었다. 그 돈으로 네가 원하는 것을 교환하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돈으로 살 수 있는 그것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너’를 원했다. 오랜 시간 우울증에 시달렸다고 부모에게 어렵게 고백했던 날, 부모는 나를 정신과 의사 앞에 데려다 놓았다. 나는 부모가 내가 왜 우울했는지 적어도 한번은 물어봐주길 바랬다. 나는 ‘너’를 원했다. 하지만 ‘너’는 돈으로 살 수 있는 ‘정신과 의사’를 내 앞에 갖다 주었다. 나는 그 정신과 의사에게 나의 아픔을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 정신과 의사는 나를 ‘너’로 받아들일 리 없었다. 애초에 그는 ‘돈’으로 교환된 ‘무엇’일 뿐이었으니까. 내가 슬플 때도 ‘돈으로 교환된 무엇’을 받았고, 내가 기쁠 때도 ‘돈으로 교환된 무엇’을 받았다. 내 주변에는 돈으로 교환된 ‘대리인’ 밖에 없었다. 그리고 돈으로 교환된 그 대리인들은 당연히 나를 ‘돈’으로 대했다. 나를 ‘돈’으로 보았기에 당연히 그들은 나에게 친절했다. 세상은 늘 나에게 친절했다. 세상 사람들은 돈에게 친절하니까. 그래서 나는 돈에 대한 상처가 없다. 모든 사람들이 친절한 세상에서 상처받을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하지만 나는 외로웠다. 그 친절한 세상이 너무 차가웠고 다 가짜 같았다. 트루먼쇼의 가짜 세계 같았다. 나는 ‘돈’ 뒤에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그 돈 뒤에 있는 나를 봐주지 않았다. ‘돈’을 받고 교환된 ‘대리인’들은 나를 봐줄 수 없었다.


학창시절 가족들끼리 싸우는 게 좋았다. 참 우스운 일이다. 작은 집에서 방도 없이 자란 친구는 가족들 간의 거리가 너무 가까워서 숨이 막혔다고 한다. 그 친구는 가족들끼리 끈적하게 들러붙어 서로 상처내고 싸우는 것에 신물이 난 듯했다. 그런데 참 세상 일이 우습다. 큰 집에 모두가 개인 방이 있는 집에서 자란 나는 가족들끼리 싸울 때 좋았다. 그 적막한 집에유일하게 큰 소리가 나는 순간이었으니까. 유일하게 가족들이 옹기종기 한 방에 모여 있는 순간이었으니까. 유일하게 대리인 없이 나와 너가 만나는 순간이었으니까. 내가 싸우든, 언니가 싸우든 집에 큰 소리가 나면 아버지가 와서 그만하고 다 방에 들어가라고 했다. 그때 나는 아쉬웠다. 밤새도록 소리 지르면서 싸우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가까이 있고 싶었다. 뒤엉켜서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그 감정 덩어리를 서로 내던지고, 서로 할퀴고 상처내도 그렇게라도 가까이 있고 싶었다. 언젠가부터 우리 집의 각자의 방문은 다 닫혀 있었다. 나는 강아지처럼 이 방 저 방의 방문 앞에서 노크를 했다. 그러다가 나도 내 방문을 닫았다. 집에 오면 쏜살 같이 방에 들어가서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다. 컴퓨터 안의 세상으로 들어갔다. 익명의 사람들. 컴퓨터 전원을 끄면 사라지고 전원을 켜면 나타나는 사람들. 나에게 상처를 줄수 있는 거리에 있지 않은 사람들. 그 사람들 사이에 나 또한 언제라도 전원을 꺼면 사라지고 전원은 켜면 나타나는 존재로 서 있었다. 그렇게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외로움을 달랬다.


그래서 나는 돈이 싫었다. 내가 사랑을 원할 때 돈을 주는, 혹은 돈으로 교환된 ‘무엇’을 주는 부모가 싫었으니까. 그리고 나를 '한 사람'이 아닌 '돈'으로 보는 사람들에게 상처받았으니까. 내가 나의 이야기를 하려고 하면 대부분 “그래도 너는 돈 많잖아"라는 말로 묵살되곤 했다. “돈이 곧 행복”이라는, 혹은 “돈 많은 삶에 문제가 있을 리는 없다”는 자본주의적 환상에 나의 아픔은 당연히 무화될 수밖에 없었다. 나 또한 그 환상을 깰 힘이 없었기에 나의 아픔을 들여다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문제 삼을 수밖에 없었다. 돈이 많으면 행복해야 하는데 왜 나는 행복하지 않지? 내 삶에는 아무 문제가 없는데 난 왜 살고 싶지가 않지? 그래서 나는 내가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다. 스승을 만나기 전까지, 내가 왜 슬픈지 그 누구도, 심지어 나조차도 몰랐다. 내가 돈이 많아서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유일하게 스승만 이해해주었다.




상처는 반드시 상흔을 남긴다. 그 상흔은 나의 삶을 제한한다. 나는 돈에 대한 혼란한 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나는 돈이 싫었다. 내가 사랑을 원할 때 돌아오는 것이 늘 돈이었으니까. 그래서 나에게 돈은 사랑의 반댓말 같은 것이었다. 돈에 대한 나의 인식에는 "돈으로 때운다”라는 관념이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래서 돈 앞에서 나는 늘 혼란스러웠다. 상흔은 사람을 주춤거리게 만든다. 나는 나를 돈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의 시선에 상처받았던 사람이다. 그래서 소중한 이에게 돈을 주는 게 늘 꺼려졌다. 내가 돈을 주는 순간, 그 또한 나를 돈으로 대할까봐 무서웠으니까. 그리고 돈은 권력관계를 만든다. 그것 또한 아버지가 나에게 심어준 돈에 대한 관념이다. 네가 누군가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한다면, 그 사람이 너의 주인이라는 것. 아직도 내가 아버지가 두려운 이유 중 가장 큰 이유가 그것이니, 나 또한 그러한 돈에 대한 관념에서 자유롭지 않다. 그래서 소중한 이에게 돈을 주는 것이 늘 주춤거려졌다. 나와 그 사이에 권력관계가 생길까봐. 더 정직하게 말하자면, 내가 돈을 주었다는 이유로 그를 착취하고 싶은 마음, 혹은 조금 더 함부로 대해도 되겠다는 마음이 생길까봐.


돈으로 사랑을 표현할 수 있을까? 나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에게 돈은 권력관계의 수단이거나, 내가 직접 개입하기 힘들고 무서울 때 대체제를 사기 위한, 그러니까 “쉽게 때우기” 위한 수단일 뿐이었으니까. 내가 받은 사랑이 그것이었으면 내가 하는 사랑도 그렇게 된다. 받은 사랑이 그래서, 나 또한 소중한 이가 아플 때 가장 먼저 “병원에 가봐”라는 말이 떠오르는 비루한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어린 시절 받은 사랑이 그것이었다고 해서, 소중한 이를 계속 그렇게 대하는 사람으로 남고 싶지는 않다. 돈이 있다고 해서, 소중한 이가 내가 필요한 순간에도 대리인을 사다 바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함께 있어야 할 순간에는 함께 있어주고, 슬퍼하는 순간에는 함께 눈물 흘려주고, 멍 때리고 있는 순간에는 정신 차리라 쓴 소리도 해주고, 돈이 필요할 때는 돈을 주고, 웃음이 필요할 때는 웃음을 주고, 그의 아픈 기억을 보듬어 주어야 할 때는 그가 되어 그 기억을 덜 아프게 꺼내 다시 예쁜 이야기로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정말이지 운 좋게 다 커서 (좋은 새아빠를 만나) 그런 사랑을 받았으니까.




돈이 참 무서웠다. 돈을 잘 몰라서 무서웠다. 소중한 이에게 돈을 주는 게 무서웠다. 그것 또한 나의 상흔만을 보았기에 생긴 두려움이었겠지. 돈을 주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그리도 좋아하는 걸 내가 사줄 수 있어서 기뻤다. 그의 기쁨을 내가 사줄 수 있어서 기뻤다. 그도 그 기쁨을 스스로 살 수 있었지만, 내가 그 기쁨을 사줄 수 있어서, 그가 내가 사준 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주어서 기뻤다. 고맙고 미안했다. 여태까지 주춤거렸던 것이.


“세상은 너를 빼껴먹을 사람으로 드글드글하다.” 아버지의 가르침이다. 아니, 아버지의 상흔이다. 돈을 많이 벌고나서 아버지는 자신을 ‘돈’으로 대하는 사람들에게 상처 받았다. 많은 이들이 아버지를 돈으로 대했고 아버지는 그 마음에 상처받았다. 그 반복된 상처에 아버지는 점점 익숙해져 갔다. 아버지의 상처를 알고 있다. 나 또한 같은 상처를 받았으니까. 하지만 아버지가 무지한 잘못 또한 있었다. 아버지는 자신이 ‘돈’이 되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돈 때문에 상처받은 아버지는 그 방법 외에 어떻게 사랑받아야 하는지 잘 몰랐다. 나도 몰랐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나-돈-너’가 아닌 ‘나-너‘의 관계를 어떻게 만드는지 잘 몰랐다. ’나-너‘의 관계를 만드는 법은 단순하다. 그냥 내가 너에게 다가가는 것이다. 내 몸과 너의 몸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다. 어제 친구가 새벽에 다리를 다쳤다. 새벽에 친구를 데리고 응급실에 갔다. 병원에서 친구를 휠체어에 앉히더니 '보호자‘분이 끌고 다니라고 했다. 친구를 앉히고 뒤에서 휠체어를 미는데 기분이 이상했다. 휠체어를 탄 그 친구의 몸이, 휠체어를 통해 내 손에 전달되는 그 몸의 무게가 어색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울렁거렸다.


차가운 집에서 자란 나는 따뜻한 관계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이제 하나는 알겠다. 따뜻함은 몸과 몸의 거리에서 나온다는 것을. 내 마음에는 늘 어떤 벽이 있었다. 그 벽이 이제 조금씩 허물어지고 있는 것 같다. 나는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게 나에게 익숙한 것이 아니라도 그렇게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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