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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Dec 08. 2022

아름다우면 된 거 아니야? - 다큐멘터리 '모어'

모어(I am More, 2021), 이일하

남모를 애환을 딛고 세상 앞에 스스로 가장 아름다운 존재로 튀어 오른 독보적인 드래그 아티스트 모어(MORE 毛漁 모지민)의 삶과 예술을 감각적인 음악과 영상으로 스토리텔링한 작품 -다음영화




“아름다우면 된 거 아니야?” 


영화를 보는 내내 이 한 문장이 마음에 울렸다. 아름다웠다, 모지민이란 사람. “양년들은 천원짜리밖에 안 줘.”라고 쌍욕하는 것도, 기괴한 복장과 기괴한 표정과 기괴한 춤을 추는 것도, 너무나 아방가르드한 옷을 입고 깡시골마을 고향집에서 괭이질을 하고 소반에다가 밥을 먹는 것도. "아버지 나 호모새끼라고 놀렸던 놈들 다 죽여버리지 그랬어"라고 복받치며 말했던 것도. 옷을 입었을 때도 벗었을 때도. 가장 화려하고 분내나는 화장을 하고 너무나 연극적이고 인위적인 옷을 입고 너무나도 부자연스러운 움직임을 할 때도, 반대로 옷 하나 걸치지 않고 모든 것을 드러낸 채 맨몸으로 춤을 출 때도. 그의 옆 턱선이 고고하게 느껴졌다. 그 꼿꼿함에서 많은 고통과 상처가 묻어있는 어떤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그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고 나이대도 잘 모르겠다. 실제로 봤을 때 더 그랬다. 누드모델 일을 했을 때 그가 모지민인 줄 모르고 그를 처음 봤다. 그는 남자도 여자도 아니고 나이대도 처음에는 나보다 어리게 봤다가 나중에는 50대 같았다. 아름다웠다. 그는 너무 아름다웠다. 왜 제냐가 발레복 입고 시골집 마당에서 춤을 추는 지민을 함박 미소를 지으며 핸드폰으로 담으려고 하는지, 왜 이일하 감독이 지민의 사진을 보고 매료될 수 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누드모델 했던 때, 왜 그 화실의 모든 사람들이 그에게 홀릴 수밖에 없었는지 알 것 같았다. 씨발, 지민은 뭔 지랄 옘병을 해도 아름다웠다. 


지민은 왜 저렇게 되었을까. 영화를 보며 그 생각을 했다. 라캉을 배울 때도 그 생각을 했다. 동성애자는 왜 동성애자가 되는 걸까. 어쩌면 나는 모든 존재를 쿨한(척 하는) 남자의 시각으로 바라봤던 것은 아닐까. 쿨한(척 하는) 남자들이 동성애자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점이 그런 것이다. '저 사람도 저렇게 된 이유가 있겠지.' 그건 '분석(을 가장한 무관심)'일 수는 있어도 '사랑'은 아니다. 이 영화를 보면서 순간적으로 그 생각을 했다. 지민의 부모님이 지민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지민의 학창시절 친구들 이야기가 나올 때, 무의식적으로 지민의 서사를 기대했다. 나는 지민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궁금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장면, 지민이 논에서 한강변에서 시장에서 춤을 추는 모습을 보고 느꼈다. 이유가 뭐가 중요해. 아름다우면 된 거 아냐?



나는 왜 이유가 알고 싶었던 걸까. 그게 그녀를 이해하는 데 어떤 도움이 된다고. 이유를 알아서 뭐하게. 그녀가 ‘소수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상황적 조건들을 알아서 뭐하게. 내가 티탄의 '알렉시아'를 보던 관점도 비슷했다. 나는 늘 개연성을 원했다. 그녀가 그런 소수성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합당한 이유를 원했다. 그 이유를 알고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를 ‘이해’하고 그녀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게 나의 후진 근대적 감성이다. 알렉시아는 그냥 알렉시아다. 지민은 그냥 지민이다. 어떤 이유와 어떤 항 때문에 지금의 그 모습이 되었겠지만, 그걸 아는 게 뭐가 중요한가. 영화를 보며 그 마음이 들었다. “아름다우면 된 거 아니야?” 그 마음이 들고 나서부터 지민의 삶이 더 아름다워 보였다. 포켓몬을 잡는 제냐도 아름다워 보였다. 


티탄도 그렇다. "아름다우면 된 거 아니야?" 티탄을 같이본 친구가 쓴 후기글에 마음에 와닿은 문장이 있었다. 그 친구는 알렉시아가 '무엇'을 낳는 장면에서 이렇게 느꼈다고 했다. "그치. 새 생명의 탄생 앞에서 친자, 양부, 개인의 깊은 고통, 기계의 자식이라는 것을 과연 논할 필요가 있을까? 새 생명이 무사하면 됐지.” 비슷한 감정을 지민에게 느꼈다. 지민이 여자든 남자든 발레리나든 발레리노든 트렌스젠더든 드랙퀸이든 태어날 때부터 정체성이 그랬든 아니면 어떤 사건으로 만들어진거든, 그게 뭔 상관이야. 아름다우면 된 거지. 지민아, 넌 정말 뭔 지랄 옘병을 해도 아름답더라. 




지민은 해방되었다. 그녀가 처음 드랙퀸 쇼에서 춤을 췄을 때 어떤 기분이었을지 상상해보았다. 지민은 정상인의 삶을 산다. 하지만 '무대'에서는 그녀의 괴물을 해방시킨다. 나의 괴물을 보여줄게. 이게 내 모습이야. 어때. 이상하니? 아름답지 않아? 나는 이런 존재야. 어둡고 밝고 기괴하고 아름답고 기쁘고 슬프고 아프고 웃음 짓는 존재. 옷을 입고, 옷을 벗고, 가면을 쓰고, 가면을 벗고, 짙은 화장을 하고, 맨 얼굴을 드러내고. 반삭한 머리 같은. 나는 긴 머리를 가지고 있기도 하고, 짧은 머리를 가지고 있기도 해. 나는 근육질의 다리를 가지고 토슈즈를 신어. 가슴이 없지만, 튀튀를 입고. 백조가 아니고 흑조도 아니고. 커다란 깃털을 달고 만원 지하철을 타. 나는 왕자님이었어. 발레리노 시절에는. 나는 공주님이 되고 싶었는데. 아니야. 나는 사탄이 되고 싶어. 이 세상은 신이 만들지 않았어. 이 세상은 사탄이 만들었어. 나도 내가 누군지 몰라. 맞춰볼래. 어떤 가면이 진짜 나인지. 이 모든 가면이 다 나야. 난 발레리노도 아니고, 발레리나도 아니야. 드랙퀸도 아니고 뮤지컬 배우도 아니야. 난 그 모든 것이 아니고, 또 그 모든 것이야. 나는 이름 붙일 수 없어. 아름다운 것에는 이름을 붙일 수 없어. 이름이 붙은 아름다움은 아름다움이 아니니까. 티탄의 검은 기름이 생각났다. 알렉시아가 붉은 피가 아닌 검은 기름을 흘리며 쇳덩어리를 출산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그 장면이 사탄의 아름다움처럼 느껴졌다. 그게 지민의 춤과 비슷해보였다. 



나는 내가 해방의 목전에 와 있다고 생각한다. 언젠가부터 그 느낌이 들었다. “나를 죽여줘.” 나는 나의 괴물을 해방시킬 무대 뒤에 웅크리고 있다. 나의 첫 번째 무대는 무엇일까. 예전에 내가 조금 더 글을 잘 쓰고 싶다고 하자, 스승이 나에게 ‘여자의 몸’이라는 제목으로 연재 글을 써보라고 했다. 그때 갑자기 마음 한 구석에서 무언가가 꿈뜰하고 움직이며 뇌의 시냅스가 퍼즐처럼 맞춰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부터 계속 마음 한 구석에 그 욕망이 떠다닌다. 그냥 다 쓰고 싶다. 내가 여자의 몸을 가지고 겪었던 모든 일들. 나의 몸에 새겨진 금기와 그 금기의 해방. 내 몸에 새겨졌던 기억들. 쾌락. 상처. 치유. 억압. 해방. 그 모든 것을 다 써버리고 싶다.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 근데 그냥 다 써버리고 싶다. 해방되고 싶다. 나는 이런 사람이라고. 내가 내 몸으로 느낀 것은 이런 것이라고. 그게 내가 보았던 세상이라고. 그게 '비정상'의 모습일지라도 나는 그냥 이렇게 살고 싶다고. 내가 뭔 지랄 옘병을 해도 아름다운지 모르겠지만, 내가 뭔 지랄 옘병을 해도 아름답다고 말해주는 사람, 한 사람만 있으면 되니까. 나에게는 그런 사람이 있으니까. 나는 착하고 예쁘고 멋지고 고상하고 고결한 사람이 아니야. 나는 더럽고 혐오스럽고 기괴하고 나조차도 스스로 앞뒤가 안 맞다고 생각할 정도로 분열되어 있어. 그런데 나는 이런 내가 좋아. 네가 나에게 말해주었으니까. 혜원아, 네가 뭔 지랄 옘병을 해도 넌 아름답다. 너는 빛날 만큼 예쁘다고 말해주었으니까. 사람만 죽이지 말라고 말해주었으니까. 아무것도 신경쓰지 말고 내 기쁨을 쫒으라고 그게 나의 기쁨이라고 말해주었으니까. 그거면 된 거다. 제냐가 있으면 지민은 살 수 있다. 성기를 잘라내지 않아도 살 수 있다. 이빨을 뽑지 않아도, 비녀를 버리지 않아도 살 수 있다. 


나는 해방되고 싶다. 절박함은 어디서 오는가. 기다림에서 온다. 왜 사랑은 드물고 귀한가. 마음을 다해 10번 사랑해도 한두 번 돌아올까 말까 하는 게 사랑이라고 했다. 그 삶의 진실이 어렴풋이 보인다. 내가 사랑하기로 마음 먹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삶의 진실. 씨를 심는다고 모든 씨가 싹을 틔우지는 않는다. 씨를 열 개 심으면 한 두개 싹을 틔울까 말까다. 햇살과 토양과 시간과 모든 조건이 맞아떨어져야만 비로소 씨는 싹을 틔울 수 있다. 그것이 사랑이 드물고 귀한 이유다. 


나는 기다린다. 싹을 틔울 그 순간을. 나는 무대 뒤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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