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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Dec 08. 2022

미래의 '너'에게 - 영화 '테넷'

시간을 넘나들 수 있는가. 시간은 넘나들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으면 타임머신이 없어도 시간을 넘나들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자꾸만 나의 옛기억들이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저 사람만이 나의 불행했던 과거를 바꾸어줄 수 있다는 나의 무의식의 간절한 외침인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나의 과거를 조심스레 꺼낸다. 그가 나의 울지못했던 과거를 안아준다. 너 힘들었다고 외로웠다고 상처 받았다고 말해준다. '울지 못했던 나의 과거'는 '사랑하는 이 앞에서 눈물 흘리는 현재'가 된다. 그 순간 과거는 바뀐다. '울지 못했던 과거' 위에 '사랑하는 이 앞에서 아이처럼 운 과거'가 덧씌워진다. 사랑하는 이가 예쁘게 반창고 붙여준 상처는 더 이상 상처가 아니다.


사랑하는 자의 의무는 무엇인가. 사랑하는 이의 과거에 침투하는 것이다. 영화 테넷의 '주인공The protagonist'처럼. '주인공'은 제3차 세계대전을 막기 위해 시간을 돌려 과거로 돌아가 전쟁을 일으킬 과거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재배치한다. 사랑한다는 것은 그 임무와 비슷하다. 내가 사랑하는 이의 과거로 침투해서 그의 과거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재배치하는 것. 그의 과거로 들어가, 아무도 봐주지 않아 몇 십년을 방치되어 있던 아픈 상처들을 찾아 찢고 고름짜고 약을 바르는 것. 그도 모르게 그의 과거의 순간들을 넘나 들며 곳곳의 상처에 반창고를 붙이는 은밀한 임무를 수행하는 것. 그것이 사랑하는 자의 첫번째 임무다.


사랑하는 자의 두번째 임무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의 미래에 침투하는 일이다. 테넷의 '닐'은 미래에서 온 자다. 미래에서 온 '닐'은 '주인공'이 겪을 미래를, 마치 지혜로운 철학자처럼 내다본다. '닐'은 '주인공'에게 자신의 존재를 숨긴다. 그저 '주인공'이 위험에 빠질 때마다 얼굴을 가린 채 나타나 '주인공'도 모르는 사이에 그를 구원해줄 뿐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미래에 침투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주인공'에게 미래 어느 시점에 터질 씨앗들을 심어놓는 것.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어른이 되면 언젠가 마음에 떠오를 말들을 미리 해놓는 것. 미래의 너에게 미리 편지를 써놓는 것. '닐'은 마지막 작별인사를 하고 '주인공'을 떠난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우정의 끝이네." '주인공'은 그제서야 '닐'이 자신을 위해 지금까지 해주었던 모든 것을 알게된다. '주인공'은 눈물을 흘리며 말한다. "나에게는 지금부터가 우리 우정의 시작이야."


사랑은 시간을 넘나드는 것이다. 현재의 ''만을 보는 것은 사랑이 아니다. 집착이다. 현재의 '-' '' 과거와 미래, 그리고 '' 과거와 미래로 가는 회전문일 뿐이다.  회전문을 통해 '' 과거에, 그리고 '' 미래에 침투하는 . 그렇게 '' 과거와 '' 미래 또한 재배치되는 . 스승과 함께 '테넷' 보았던 나의 과거가 오늘 재배치되었다. 나는 '주인공'이다. 나는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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