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혜원 Apr 19. 2023

부부 싸움과 불화

어린시절 아빠 엄마가 부부싸움을 했다. 엄마는 울면서 소리를 질렀고, 아빠는 노발대발 화를 냈다. 흥분을 견디지 못하고 엄마가 찬장에서 접시를 꺼내 바닥에 던졌다. 쨍 하고 접시 깨지는 소리가 온 집안에 울렸다. 나는 내 방문 앞에 조용히 앉아 접시 깨지는 소리를 들었다. 우리집은 부부싸움이 잦은 집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접시 깨지는 소리는 참 선명하게 기억난다.


엄마가 울면서 아빠 욕을 할 때 나는 가만히 듣고 있었다. 아빠 편을 들 수도 없고 엄마 편을 들 수도 없었다. 엄마 앞에서는 아빠 욕을 하고 아빠 앞에서는 엄마 욕을 하는 지혜로움을 그때 알았다면 좋으련만, 뻣뻣하고 내성적이었던 나는 그러질 못했다. 엄마가 아빠 욕을 하면 마음이 답답했다. 나는 아빠가 좋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빠 욕을 하는 엄마를 무조건 비난할 수도 없었다. 나는 엄마도 좋았기 때문이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그 접시 깨지는 소리가 유독 마음에 남았던 이유를 알았다. 아주 오랜 시간이 지나 엄마가 아빠 욕을 할 때 왜 그리 마음이 답답했는지 이유를 알았다. 부모는 왠만하면 아이 앞에서 싸우면 안 된다. 엄마도 좋아하고 아빠도 좋아하는 아이는, 좋아하는 두 사람이 싸우면 마음이 두 갈래로 쪼개져 버리기 때문이다.





삶의 진짜 어려운 문제는 사랑과 증오가 겹쳐질 때 발생한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A)이 내가 좋아하는 다른 사람(B)을 미워했던 적이 있다. 그때 나는 마음이 양쪽으로 쪼개지는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기에 A가 B를 미워하는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랑은 감정의 동조 현상이니까. 그 말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어떤 사람을 미워하면 나도 그 사람이 미워진다는 의미다. 그래서 A에 마음이 동조되면 동조될 수록 나에게도 B를 미워하는 마음이 생겼다. 문제는 그 B가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이지. 나는 B를 좋아했기에 B에게도 감정이 동조되었다. 사랑은 감정의 동조 현상이란 말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누군가가 미워하면 나도 덩달아 마음이 아프고, 그 상처준 사람을 미워하게 된다는 의미다. 다행히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내가 좋아하는 다른 사람을 미워하는 그 부부싸움 같은 상황에서, B는 증오의 고리를 끊어주었다. 그는 자신을 미워한 A에게 다시 증오를 돌려주지 않았다. 그게 내가 엄마 아빠의 싸움 가운데에 낀 아이의 심란한 마음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다.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내가 어떤 이(C)에게 상처를 준 적이 있다. 그는 나를 좋아해주는 B가 좋아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C는 자기에게 상처준 나를 한동안 미워했다. B는 나를 좋아했듯 C도 좋아했기에 나를 미워하는 C의 마음을 당연히 이해해주었다. B는 나에게 상처받은 C의 마음도 이해했고, C에게 상처준 나의 마음도 이해했다. 사랑은 감정의 동조 현상이니까. 증오는 돌고 도는 걸까. 또 다시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어떤 이(D)가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D는 나를 좋아하는 B가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는 나에게 상처준 D가 미워졌다. D가 나에게 미안해한다는 걸 알지만 증오가 잘 가시지 않는다. 나를 좋아하고 또 D를 좋아하는 B는 나에게 상처준 D의 마음도, 상처받아 D를 미워하게 된 나의 마음도 이해한다. 그 사이에서 나는 참 마음이 복닥거린다. 좋아하는 두 사람이 불화를 겪는 것, 그리고 그 불화를 가만히 끌어안고 있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은 참 느리고 야박하다. 상처받은 마음은 잘 회복되지 않는다. 칼에 베었던 사람이 상처가 더 이상 아프지 않다고 말로는 떠들 수 있어도 막상 칼끝을 보면 몸서리가 처지는 것처럼, 마음의 상처가 회복되었다고 말로는 떠들 수 있어도 막상 그 대상 앞에서 요동치는 감정은 어쩔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내 마음도 불화 상태다. 나는 D가 나에게 진심으로 미안해하는 것도, B가 좋아하는 두 사람 사이에서 애를 쓰고 있는 것도 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D에 대한 복수심이 불쑥불쑥 올라오고, 더 유치하게는 B가 그냥 내 편만 들어줬으면 하는 마음마저 든다. 이렇게 편가르기가 시작되는 거구나 싶다. 편을 가르고 싶은 마음과 편을 갈라서는 안 된다는 마음 사이에 불화가 있다. 그러고보니 미숙한 부모들이 아이에게 상대방의 욕을 하며 아이가 자기 편을 들어주길 바라는 마음도 바로 이 마음인가 보다.


나는 불화 상태를 잘 견디지 못한다. 그게 내가 가장 미숙한 부분이다. 복닥거리는 마음을 그저 끌어안고 있는 힘이 부족하다. 그러고 보니 B에게 이런 불화의 순간이 얼마나 많았을까 싶다. B가 좋아하는 두 사람이 불화를 겪는 상황. 그 상황에서 B는 그 불화를 봉합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저 좋아하는 두 사람의 마음을 각자 끌어안아주었다. 내 마음의 불화도 마찬가지다. 마음이 복닥거려도 그냥 끌어안고 있어야 한다. 가만히 끌어안고 응축시켜 내 길을 가야 한다. 성급하게 불화를 봉합하려고 하면 마음이 곪아버리고, 성급하게 불화 사이에 선을 긋고 편을 가르면, 잠시 편해질 수는 있어도 마음이 공중에 흩어져 텅 비어지게 된다. 성급하게 불화를 봉합하려 해서 마음이 안으로 곪아버린 경험도, 성급하게 불화를 쪼개 마음이 휘발된 경험도 있다. 둘다 마음은 일시적으로 편해지지만,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불화를 끌어안는 힘이 곧 마음의 힘일 것이다. 복닥거리는 마음을 잘 끌어안아야겠다. 성급히 봉합하지도 성급히 터뜨리지도 않은 채 힘들지만 잘 응축시켜 내 마음의 힘으로 길러내야 한다. "제 갈길을 가라. 다시 만나기 위해." 나는 다시 만나고 싶다. 그러니 내 갈길을 갈 것이다. A도, C도, D도 그랬으면 좋겠다. 각자 갈길을 씩씩하게 잘 갔으면 좋겠다. 다시 만나기 위해.






작가의 이전글 일방통행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