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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Jul 25. 2019

10. 피라미드 밖의 사람들

'국민'이 되지 못한 여성들

“우리는 필연적으로 사회를 음모의 소굴로 보게 됐습니다. 그 음모는 일상에서 남자 형제의 의식을 잠식해, 그를 큰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불끈 쥐고 분필로 바닥에 미신적인 경계선을 긋는 유치한 수컷 괴물로 만들고, 그 경계선 안에서 인간들은 인위적으로 분류돼 꼼짝 못 하게 고착됩니다. 야만인처럼 깃털로 장식하고 화려한 금붙이와 자줏빛 벨벳으로 치장한 그들은 그 소굴에서 비의를 이어가고 권력과 지배에서 비롯된 미심쩍은 쾌락을 맛보는 동안 ‘그의’ 여자들인 우리는 그의 사회를 구성하는 어떤 집단에도 속하지 못한 채 집에 갇혀 있어야 합니다.” 
- 버지니아 울프


 8화에서 알아보았듯이 남성성이라는 허구의 동질성을 만들어낸 주체는 '국가'다. 국가는 '내 편의 승리'를 위해 국가에 도움이 되는 자질을 갖춘 자에게는 권력을 나누어주고, 그렇지 못한 자는 배척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남성들을 길들여 왔다. 그래서 남성성은 피라미드의 모양에 비유될 수 있다. 국가가 꼭대기층을 차지하고, 국가가 원하는 자질에 부합할수록 상층부로 올라갈 수 있는 구조다. 남성들이 '남성성'을 갈망하는 마음 또한 피라미드의 위층으로 올라가겠다는 권력의지 혹은 밑바닥으로 떨어지진 않겠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추동된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국가는 남성들 사이에 서열이라는 '미신적인 경계선'을 그어 넣고, 남성들로 하여금 국가를 위해 '큰소리를 지르며 주먹을 불끈 쥐는 수컷 괴물'이 되기를 은밀하게 부추겨 왔다. 


 하지만 여성들의 역사는 이와 사뭇 다른 양상을 띤다. 남성 중심의 역사에서 여성은 언제나 '네 편'이었다. '내 편'은 '네 편'과 섞이는 순간 더 이상 '내 편'이 아니기에, 남성들은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여성들이 자신들의 피라미드 속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철저히 통제했다. 물론 귀족이나 공주처럼 사회적으로 고위층에 속하는 여성들은 있었지만, 그것은 오직 남성을 통해서만(고위층 남성의 자식이든, 고위층 남성과 결혼을 하든) 가능할 뿐, 여성이 스스로 피라미드의 사다리를 오르고 내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버지니아 울프의 말처럼 남성들이 그들의 소굴에서 권력과 지배에서 비롯된 쾌락을 맛보는 동안, 여성들은 사회를 구성하는 어떤 집단에도 속하지 못한 채 그저 '부인'과 '딸'의 역할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즉, 남성의 역사가 피라미드 안의 투쟁이었다면, 여성의 역사는 피라미드 밖의 역사다. 


 물론 최근 들어 여성들의 사회·경제·정치 활동이 가능해짐에 따라, 여성들도 남성들의 피라미드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다. 그 결과 예전에는 남성들에게만 요구되던 자질, 예컨대 '돈을 잘 버는 능력'이나 '책임감', '리더십' 같은 자질이 여성들에게도 요구되기 시작했다. 오늘날의 여성들은 전통적으로 요구되어 오던 '여성성'과 과거에는 남성들에게만 요구되어 오던 '남성성(이 경우 여전히 남성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이 더 크다)'을 동시에 충족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요구되는 '남성성'은 지난 글에서 다룬 '남성성'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앞으로 이어질 몇 편의 글에서는 전통적으로 여성들에게 요구되어왔던 '여성성'에 대해서만 다루도록 하겠다. 




 왜 역사적으로 여성들에게는 '남성성'이 요구되지 않았을까? 그것은 역사가 시작되고 최근에 이르기까지 국가는 여성들을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혹자는 여성들이 원래부터 '남성적'이지 않았기에 국가가 여성들에게는 '남성성'을 요구하지 못한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말이 맞으려면, 예외적으로 남성만큼 힘이 세거나 유능했던 소수의 여성들만큼은 남성들과 동등하게 대우를 받았어야 한다. 하지만 역사 속에 그런 예가 있었던가? 오히려 남성들보다 더 '남성적'인 여성들은 마녀사냥의 표적이 되기 일쑤였다. 아주 최근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불문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민'은 오직 남성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이었다. 


 역사적으로 국가가 여성을 '국민'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증거는 명명백백하다. 여성의 선거권은 1893년 뉴질랜드에서 최초로 허용되었고, 한국에서는 1948년에, 사우디아라비아는 2015년에 이르러서야 허용되었다. 한국에서 여성들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부터로, 60년이 채 되지 않았다. 그 전 여성들에게 허용되었던 경제활동은 삯바느질이나 농사처럼 사회의 피라미드 밖에서 이루어지는 소소한 생계활동뿐이었다. 경제활동을 할 기회가 없었으니 교육의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조선시대부터 여성들은 벼슬을 할 수 없었고, 한문을 배워서도 안 됐다. 참정권, 노동권, 교육권, 재산권에서 소외된 자를 '국민'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럼 국가에게 여성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여성들은 남성에게 딸린 식솔, 지금으로 치면 '어린이'와 비슷한 위상으로 취급되었다. 이는 2015년에 완전히 폐지된 호주제의 내용만 봐도 확연히 드러나는 사실이다. 호주제는 여성을 혼인 전에는 아버지가 호주인 호적에, 결혼 후에는 남편이 호주인 호적에, 남편이 사망하면 아들이 호주인 호적에 올라야 하는 예속적인 존재로 규정했으며, 호주가 사망한 경우 호주의 승계는 '호주의 아들 → 손자→ 미혼인 딸 → 미혼인 손녀 → 배우자 → 어머니 → 며느리'의 순으로 정해 법적으로 여성을 남성보다 낮은 위치에 두었다. 또한 1958년에 폐지된 '처의 무능력 제도'에 따르면 여성은 취업, 대출, 부동산 거래, 소송, 증여, 상속, 이혼 등의 법률 행위를 할 때 반드시 남편의 허가를 받아야 했고, 남편의 허가 없이는 자신의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할 수도 없었다. 지금 들으면 터무니없는 제도이지만, 당시 한국 최초 여성 변호사 이태영이 이를 문제 삼자 대법원장 김병로는 "1천5백만 여성들이 불평 한마디 없이 다 좋다고 잘 살고 있는데 어째서 평지풍파를 일으키느냐?'라고 호통을 쳤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에서만 나타났던 현상도 아니다. 놀랍게도 전 세계적으로 여성이 '국민'이 된 지는 채 100년도 되지 않았다. 


변호사 이태영 선생. 호주제 폐지, 부모친권, 동성동본 결혼금지 제도의 폐지 운동을 주관하였다. 남편 정일형과 함께 김대중 대통령의 최대 후원자이자 정치적 선배로 꼽힌다. 




 오늘날의 어린이들이 부모님의 허락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20세기에 이르기까지 여성들은 남편이나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별다른 활동을 할 수 없었다. 그 당시 여성들에게 남성과 결합하지 않고 사는 것은 마치 부모 없는 고아로 사는 것처럼 두려운 일이었다. 여성들이 피라미드 안에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피라미드 안의 남성에게 거두어지는 방법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사회가 유독 싱글 여성이나 과부를 멸시의 대상으로 삼았던 것만 살펴봐도 쉽게 눈치챌 수 있는 사실이다. 


 전통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관계는 오늘날의 부모와 어린 자식의 관계, 혹은 사장과 직원의 관계에 가장 흡사하다. 부모의 품을 떠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린 자식의 입장에서 부모는 자신의 생존권을 쥐고 있는 절대자다. 그래서 아이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부모가 원하는 사람이 되려고 하고 부모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늘 조심한다. 당연히 그 과정에서 자기의 욕망은 억압되지만, 부모의 눈밖에 나는 공포가 더 크기 때문에 참을 수밖에 없다.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여성들은 수천 년의 시간 동안 남성들이 만들어놓은 사회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자기의 욕망을 억누르고 남성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려고 애쓸 수밖에 없었다. 

 

 정리하자면, 국민이 아닌 여성들에게 '국가'는 '남성'을 의미했다. 때문에 '남성성'이 국가가 남성에게 요구하는 동질성이었다면, '여성성'은 남성들이 여성에게 바라는 요구하는 동질성이라고 할 수 있다. 남성들은 국가라는 '내 편'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남성성에 부합하려고 했다면, 여성들은 남성들로부터 쫓겨나지 않기 위해 여성성에 부합하려고 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사실이 하나 드러난다. 남성들 없이 생존할 수 없었던 사회 구조 속에서, 여성들은 여성들끼리 또 다른 '내 편'을 구축할 생각을 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이다. 여성들은 자신과 비슷한 다른 여성들과 편을 맺기보다는, 아버지, 남편, 아들과 결합하여 '남성의 편'에 편입되려고 했다. 이는 노동자들이 자기 회사 사장을 뒤에서 욕하기는 해도, 다른 회사 노동자들과 연대해서 권력에 대항할 생각은 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사회에서 '편'은 강자들이 먼저 만들어 버린다. '편'에 들어가지 못한 자들은 자기들끼리 편을 구축하기보다는 기득권이 그어놓은 테두리 밖에라도 최대한 붙어있으려고 애쓸 뿐이었다. 이 점에서 20세기부터 전 세계적으로 대두된 페미니즘은 역사상 처음으로 여성들이 남성의 편에 편입되려고 하지 않고, 다른 여성들과 '내 편'을 구축하려는 움직임이다. 그것만으로도 매우 의미있는 사건이라 할 수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들이 처음으로 남성이 아닌, 다른 여성들과 '편'을 구축한 사건이다. 



 

 남성들이 여성들에게 요구했던 '여성성'의 구체적인 실상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다. 하지만 각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 가지 분명히 해두고 싶은 것이 있다. 혹자는 이제 여성들도 남성들과 동등하게 '국민'의 자격을 얻었으니 양성평등의 세상이 온 게 아니냐고 물을 수 있다. 하지만 여성들이 남성들이 구축해 놓은 피라미드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다고 해서 그것을 평등이라고 보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힐러리가 미국 대통령이 된다 한들 남성 중심적 사회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여기엔 두 가지 문제가 남아있다. 첫 번째는 오랜 억압의 역사 때문에 여성들의 내면 자체가 이미 남성 중심적으로 왜곡되었다는 것, 더 중요한 것은 애초에 그 피라미드는 여성들이 구축한 사회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페미니즘은 남성들의 피라미드에 들어가기 위한 투쟁이었다면 최근의 페미니즘은 남성 중심적으로 왜곡된 여성들의 내면을 되돌아보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둘 다 반드시 거쳐가야 할 중요한 과정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피라미드 안에 들어가 남성들과 동등하게 경쟁하고, 남성들의 욕망의 대상이 되려는 마음을 버렸다고 해서, 여성들에게 진정한 자유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여성들이 '남성'에게서 벗어나면, 아니, 엄밀히 말해 여성들이 '남성'이 되어 버리면 그 다음에는 '국가'가 우리를 억누를 것이니까. 지금 단계에서 여성들이 남성들에게 대항하는 것은 큰 의미가 있지만, 어쩌면 진정한 여성 해방의 길은 여성을 억압하는 모든 종류의 권력에 대항하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여성 철학자 시몬 드 보부아르는 이렇게 이야기했나 보다. 


 “권력을 남성의 손에서 빼앗는 것이 아니다. 그런다고 세상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핵심은 권력의 개념을 깨부수는 것이다.”


 피라미드에 들어가는 게 아니라 피라미드를 부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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