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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Dec 24. 2024

[여성성] 나는 '핑크색 복싱화'처럼 살 테야!

내 복싱화는 핑크색이다. 분홍색 가죽에 빨간색 끈이 매어져 있다. 누군가가 보이기에는 어린 소녀들이나 신을 법한 유치한 색깔이다. 나 역시 이 신발을 처음 보았을 때 그런 생각을 했다. 나이 마흔에 핑크색은 너무 주책맞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왠지 나의 복싱화는 핑크색이어야 할 것 같았다. '핑크색 복싱화'만큼 나의 삶을 함축적으로 보여주는 물건도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이 핑크색 복싱화를 신고 레슬링도 하고 복싱도 한다. 이제는 세월의 흔적이 묻어 조금은 때가 타고 색도 바랬지만 나는 여전히 내 핑크색 복싱화가 마음에 든다. 오늘은 이 핑크색 복싱화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려고 한다. 이것은 '핑크색'과 '복싱'을 좋아할 수 없었던 한 소녀가 '핑크색 복싱화'를 좋아하게 된 이야기다.




나는 핑크색을 좋아할 수 없던 아이였다. 아들을 바랬던 아버지는 집에 딸만 둘이 태어나자 둘째인 나를 아들처럼 키우고 싶어 했다. 아버지는 내가 남자아이 같은 행동을 하면 좋아하고 여자아이 같은 행동을 하면  좋아하지 않았다. 아버지는 '기지배' 같은 것을 싫어했다. 바비 인형을 가지고 노는 것, 예쁘게 보이려고 하는 것, 잘 울고 잘 삐지는 것, 예민하고 까탈스럽게 구는 것, 감정적이고 감성적인 것,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것은 '기지배' 같은 것이었다. 반대로 레고와 미니카를 가지고 노는 것, 수수하고 털털한 것, 화통하고 시원시원한 것, 이성적이고 냉철한 것, 대담하고 용기있는 것, 능동적이고 독립적인 것은 '기지배' 같지 않은 것이었다. 기지배로 태어난 나는 아버지에게 사랑받기 위해 기지배가 되지 않으려 애썼다. 어린 시절에는 치마도 입지 않고 머리도 묶지 않았다. 조금 더 크고 나서는 친구들이 삐지고 서운해하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보다 더 크고 나서는 남자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마음을 숨기며 살아왔다. 나는 '여성성'이 금지된 아이였다. 나는 핑크색을 좋아해서는 안되는 소녀였다.


아버지는 내가 '남자'처럼 살길 바랬다. 왜 그랬을까? 아버지가 보기에 '남성적'인 삶이 '여성적'인 삶보다 훨씬 더 자유로운 삶이었기 때문이다. "능력만 있으면 여자는 남자 없이 사는 게 훨씬 더 속 편하다." 아버지가 종종 하던 말이다. 아버지에게 '남성성'과 '여성성'을 가르는 핵심 키워드는 '의존'이었다. 아버지에게 남성적인 삶, 즉 의존하지 않는 삶은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기에 자유롭고 행복한 삶이었다. 반대로 여성적인 삶, 즉 의존하는 삶은 끊임없이 누군가의 눈치를 봐야하기에 부자유하고 불행한 삶이었다. 아버지는 내가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길 바랬다. 그래서 혼자 살 수 있는 능력을 길러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고 살길 바랬다. 아버지가 나에게 바라던 여성상은 한마디로 말하면 '남자가 필요 없는 여자'였다. 아버지는 의존할 필요가 없다면 여자에게 남자는 필요하지 않은 존재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것은 슬프게도 아버지가 그런 존재로밖에 여자에게 사랑받아본 기억이 없어서였을 테다.


나의 이십 대는 아버지의 말처럼 '남자가 필요 없는 여자'가 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시기라고 할 수 있다. 남자에게 경제적으로 의존하지 않기 위해 학벌이나 스펙 같은 능력을 착실하게 쌓았고,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돈을 벌어보려 스타트업을 창업하기도 했다. 정서적으로도 의존하지 않기 위해 힘든 일이나 슬픈 일이 있어도 대부분은 누구에게도 이야기하지 않고 혼자 삭히며 해결해왔다. 그 과정에서 점점 남자는 나에게 사랑받고 싶은 대상보다는 경쟁해서 이겨야 하는 대상이 되었다. 실제로 아버지는 내가 어린 시절 남자아이들과 싸워서 이기고 돌아오면 함박미소를 지으며 칭찬을 해주곤 했다. 아버지는 내가 남자에게 이기는 여자인 게 좋았던 것 같다. 나 역시 내가 남자에게 이기는 여자인 게 좋았다. '뭐야, 남자 별 거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면 들수록 '남자가 필요 없는 여자'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여성이 되어간다고 믿었다. 이 모든 것이 나의 거대한 쉐도우복싱이란 걸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뒤였다.



우울증에 걸리고 사랑에 실패하고 많은 좌충우돌을 겪은 뒤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남자에게 의존하지 않는 여자‘는 될 수 있어도 ’남자가 필요 없는 여자'는 될 수 없다는 걸. 그것은 '사랑이 필요 없는 사람'이 되겠다는 말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버지는 여자가 '의존' 때문에 남자를 필요로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경제적으로든 정서적으로든 의존하지 않을 수 있다면 남자 없는 삶이 여자에게 더 자유로운 삶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너무나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었다. 여자는 남자 없이 살 수 있지만, 남자 없이 행복할 수는 없는 존재다. 이는 남자 역시 마찬가지다. 남자도 여자 없이 살 수 있지만, 여자 없이 행복할 수는 없는 존재다. 남녀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이성애적인 '사랑'을 원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여자는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고 남자는 여자에게 사랑받고 싶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자유를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능력이라 여겼기에 그 자명한 사실을 놓친 것일 테다. 아버지가 나에게 금지했던 마음은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 마음을 금지당했기에 나는 흔히 '여성성'이라 여겨지는 많은 모습들을 억압한 채 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예뻐 보이고 싶은 마음, 자꾸만 그의 눈치가 보이는 마음, 그의 행동 하나하나에 전전긍긍하는 마음, 사랑받지 못할까봐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 그 모든 마음이 뒤엉켜 울었다 웃었다 감정이 널뛰는 마음. 그 모든 '여성성'이 '한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아버지와 나는 거기서 갈렸다. 아버지는 '한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 그래서 그의 눈치를 보고 그가 원하는 대로 하고 싶은 마음을 '부자유'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에게 남자에게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을 살라고 말한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마음이 부자유해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한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정직하게 따르는 삶이 더 자유로워보였다. 오랜 시간 부정했던 여성적인 모습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랑받기 위해 눈치보고 예뻐보이기 위해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유치하고 찌질해보이는 것이 아니라 어여쁘고 사랑스러워보였다. 어느 날 뒷산을 오르다가 이제 막 빨갛게 물드려고 하는 단풍잎을 보며 깨달았다. "나 사랑받고 싶은 여자구나!" 그 자명한 사실이 온몸을 휘감는 깨달음으로 찾아왔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테다. 나는 여성성을 긍정해보기로 했다. '한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있는 힘껏 따라가보기로 했다.



서른이 넘어 사춘기 소녀가 되었다. '한 남자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을 긍정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중심을 버리고 너의 중심에 나를 맡기겠다는 선언과도 같았으니까. 아버지가 왜 그것을 '부자유' 혹은 '불안정'이라고 여겼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의 말 한 마디에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사람이 되었다. 그의 눈빛 하나에 나락에 떨어졌다가 또 구원받았다. 그가 나의 마음을 조금이라도 몰라주거나 오해하는 것 같으면 하늘이 무너져내리는 것 같았다. 티를 내지 않았지만 나는 누구보다 잘 삐지고 잘 서운해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에게 예쁘게 보이고 싶었다. 예쁘게 보여서 사랑받고 싶었다. 항상 자유롭고 싶었던 나는 더 이상 자유롭고 싶지 않아졌다. 그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 가장 큰 자유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는 그 앞에서 작은 공연을 했다. 이십 몇년 만에 바이올린을 켰다. 오랜만에 켜는 거라 긴장해서 제대로 연주하지도 못했다. 그런데 그가 객석에서 큰 소리로 외쳤다. "혜원이 너무 예쁘다." 그 말이 날아와 심장에 보석처럼 박혔다. 오랜 시간 꽁꽁 얼어있던 마음 한 조각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나는 수줍은 소녀마냥 부끄러웠다. 가장 예뻐보이고 싶었던 사람에게 '예쁘다'는 말을 들었으니까. 예쁘다고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그는 빛날만큼 예뻐서 예쁘다고 한 것일 뿐이라 답했다. 그날 나는 '예쁜 소녀'로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누군가에게 간절히 예뻐보이고 싶은 사람만큼 예쁜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한 사람에게 예뻐보이고 싶은 그 핑크빛 마음을 소중히 품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예쁘다는 말을 들으면 온 세상이 핑크빛으로 물드는 소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어느 덧 나는 핑크색을 좋아하는 소녀가 되어 가고 있었다.


By 정주현

한편 아버지가 나에게 훈육한 '남성성'은 반쪽짜리였다. 나는 분명 평균적인 한국 여성들에 비해서는 '남성적'인 면모가 많은 편이었다. 나는 비교적 주체적이고 독립적인 태도로 삶을 대해오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한 '남성성'이라고 보긴 어려웠다. 아버지가 '남성적인 삶'을 추구해던 것은 '자유'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을 수 있다면 자유로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의존하지 않음이 곧 자유는 아니었다. 아버지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지만 자유로운 삶을 살지는 못했다. 그것은 아버지가 자유를 잘못 정의했기에 벌어진 일이었을 테다.


자유는 내 몸이 하고 싶은 것을 내 몸으로 해낼 수 있는 역량이다. 내 몸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않는 것도, 내 몸이 하고 싶은 것을 다른 사람의 몸을 통해 하는 것도 자유라고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아버지의 삶은 아버지의 몸이 하고 싶은 것을 충분히 하며 살아온 삶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그랬다. 오랜 시간 내 몸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했고, 또 내 몸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면서도 그것을 내가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몸을 통해 충족하려 했다. 그것은 나에게 훈육된 '여성성' 때문에 발생한 일이기도 했다. 여성은 평균적으로 남성에 비해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잘 하지 못하는 삶을 한다. 사회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따르는 일이 남성보다 여성에게 훨씬 더 강하게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자유를 욕망해서였을까? 나 역시 자유를 욕망하는 마음이 있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오토바이를 타고 싶었다. 오토바이가 자유로워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인 내가 오토바이를 타는 것은 남자가 오토바이를 타는 것보다 정서적, 환경적으로 훨씬 더 많은 허들을 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나는 오토바이를 타지 않았다. 대신 오토바이를 타는 남자를 만나 그의 뒷자리에 타는 것에 만족했다. 복싱도 마찬가지였다. 내 몸은 복싱을 하고 싶어 했다. 누군가를 때리고 맞는 그 원초적인 폭력의 역동을 경험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여자인 내가 복싱을 하는 것은 남자가 복싱을 하는 것보다 정서적, 환경적으로 훨씬 더 많은 허들을 넘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나는 복싱을 하지 않았다. 대신 복싱하는 남자를 만나 그의 경기를 응원하는 것에 만족했다. 이처럼 나는 내 몸이 원하는 것을 내가 직접 하지 않고, 다른 사람(남자친구)을 통해 간접적으로 하는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았다. 이것은 비단 나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테다.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욕망을 직접 해소하지 않고 다른 이(배우자, 연인, 자식 등)를 통해 간접적으로 해소하는 삶을 산다. 하지만 이러한 삶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주변 사람들이 힘들어진다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다. 이 삶의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방법으로는 여성 자신이 결코 온전한 기쁨을 누릴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토바이를 타는 것의 진정한 기쁨은 뒷자리에 앉아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법이다. 복싱도 마찬가지다. 복싱의 진정한 기쁨은 누군가를 응원하는 것으로는 결코 느낄 수 없다. 진정한 기쁨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자신의 몸으로 직접 하고 있을 때만 누릴 수 있는 법이다. 기쁨은 언제나 온몸으로 체감될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



자유를 쫒지 않았다. 대신 기쁨을 쫒았다. 오토바이의 진정한 기쁨을 느끼고 싶어서 작은 오토바이를 샀다. 작은 오토바이를 몰고 이곳저곳 누비며 다녔다. 오토바이를 타는 기쁨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얼굴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 스로틀을 감으면 붕 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느낌, 덜덜거리는 진동과 엔진소리, 기어를 바꿀 때 철컥하고 걸리는 기계의 느낌, 이 작은 오토바이와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다는 자유로움. 그것이 뒷자리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오토바이의 기쁨이었다. 복싱 역시 마찬가지였다. 복싱의 진정한 기쁨을 느끼고 싶어서 복싱을 시작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쉐도우를 연습하고 미트를 쳤다. 복싱의 기쁨이 온몸으로 전해졌다. 미트를 팡팡 치는 소리, 주먹이 꽂힐 때의 감촉, 땀을 뻘뻘 흘리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는 기분, 원투를 칠 때 쭉 뻗어나가는 느낌, 정신 없는 스파링 속에서 내 몸이 나도 모르게 반응할 때의 쾌감. 그것이 응원하는 것으로는 결코 느낄 수 없었던 복싱의 기쁨이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복싱을 하며 자유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자유는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않기에 무엇이든 내 마음 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뜻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그 상태에서 인간은 부자유해진다. 무엇이든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가 되면 오히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더 모호해지기 때문이다. 자유는 내가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기쁨을 무슨 일이 있어도 지키겠다는 태도다. 그리고 자유는 내가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기쁨을 계속 발견하고 다듬고 넓혀나갈 수 있는 역량이다. 자유는 기쁨의 영토의 확장이다. 그리고 나는 진정한 남성성이란, 그 기쁨의 영토를 지키고 쟁취하고 확장할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한다. '복싱화'를 신는다. 복싱을 하며 온몸으로 기쁨을 느낀다. 기쁨의 영토를 지키고 쟁취하고 확장하는 힘을 배운다. 나의 복싱화는 '핑크색'이다. 수줍은 소녀의 마음을 안고 원투를 날린다. 나는 '핑크색 복싱화'처럼 살고 싶다. 너에게 예뻐보이기 위해 힘을 기르고, 힘을 길러 우리의 삶을 더욱 더 핑크빛으로 물들이고 싶다. '핑크색 복싱화'의 이름은 사랑과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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