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복싱 왜 하고 싶은 거니?"
"잘 모르겠어요."
"그래, 하다 보면 알게 되겠지."
스승과 일을 하러 가는 길에 나눴던 짧은 대화, 그때부터 1년의 시간이 지났다. 나는 복싱을 하고 있고 여전히 내가 왜 복싱을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한다. 말문이 터지기 전 어린 아이가 무언가 말을 하고 싶지만 말이 나오지 않아 그저 웅얼거리는 것처럼, 진짜 욕망은 늘 말이 없는 모습으로 날 찾아 온다. 어쩌면 하고 싶은 이유를 명확히 안다면 난 그것을 진정으로 원하는 게 아닐 수 있다. 진정한 욕망은 몸의 이끌림이니까. 몸은 말을 할 수 없으니까. 그저 하고 또 하고 또 해서 언젠가 "엄마"라고 말문이 트이는 아이처럼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릴 뿐이다. 어쩌면 삶은 그 이유를 찾기 위한 여행인지도 모르겠다. 나만이 찾을 수 있는 그 이유를 ‘의미’라고 부르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스승은 어린 시절 아버지의 무릎에 앉아 복싱 경기를 보던 것이 행복한 기억이라고 했다. 그 기억 때문에 복싱이 좋아졌다고 했다. 내가 아는 많은 남자들은 어린 시절 당한 폭력의 기억 때문에 처음 복싱장에 들어선다. 각기 다른 이유를 안고 복싱을 한다. 나 역시 아직은 찾지 못한, 하지만 모호하기에 더 뚜렷한 그 이유를 안고 복싱을 한다.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내 헤드기어는 소금끼 때문에 빨리 삭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흘리는 땀 만큼이나 흘리는 눈물도 많아서. 작은 키, 짧은 팔, 운동신경 제로의 몸, 그리고 마흔이라는 나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복싱을 하는, 아니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이제부터 그 이유를 찾아나서려 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 모르는 그 이유를. 그 이유를 알게 된 날, 헤드기어를 벗고 환하게 웃으며 눈물 흘리고 싶다.
나는 복싱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