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다리가 짧아 슬픈 짐승
“너 몇 킬로니?”
“50kg요.”
“그러면 무조건 너보다 키 크고 팔 긴 사람이 나온다고 봐야 한다.”
“그죠? 그러니까 5kg 더 빼서 45kg급으로 나가는 게 유리하겠죠?”
“키 작다고 복싱 못하는 거 아니다.”
복싱을 시작한지 몇 개월이 지났을 때다. 스파링이라고 하기엔 민망하지만 상대와 링에서 몇 번 주먹을 주고받았다. 그간 스승이 정말 많은 기술을 알려 주었다. 그런데 링 위에서는 아무것도 통하지가 않았다. 내가 뭐만 하려고 하면 상대의 팔에 전부 다 걸려버렸기 때문이다. 내 팔이 상대의 팔보다 짧으니 내 잽은 하나도 맞질 않고 상대의 잽은 전부 내 얼굴에 맞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심정으로 상대에게 돌진하면 기다렸다는 듯이 상대의 뒷손이 나왔다. 그렇게 내 주먹은 상대의 얼굴에 닿지 않고 상대의 주먹은 내 얼굴에 전부 꽂히는 일이 반복되었다(사실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 보다 못한 스승이 리치(팔길이) 차이를 극복하는 잽을 알려 주었다. 앞 발을 내며 잽을 치니 그제서야 내 잽과 상대의 잽이 동시에 맞았다. 문제는 그 다음에 스텝을 살려서 들어가든 빠지든 뭘 해야 하는데 나는 스텝도 제대로 못 뛴다는 것이었다. 스승이 카운터부터 필살기까지 리치를 극복하는 수많은 기술을 알려 주었지만, 나는 아직도 리치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팔이 짧은 게 이렇게 불리한 거야? 체급이 깡패라더니 리치가 깡패잖아!’ 스파링을 하면 할수록 억울해졌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내가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체중을 줄이자!’였다. 지금보다 가벼운 체급으로 나가도 딱히 내 리치가 유리한 건 아니겠지만, 적어도 비스무리한 조건까지는 갈 수 있지 않겠냐는 막연한 생각에서였다. 지금 체중에서 5킬로를 빼자니 그건 그것대로 아득해보였지만, 그래도 팔 길이와 키가 비슷하면 좀 나을 것 같았다. 몇 해전에 생활체육 경기를 나갔던 한 동생이 8킬로나 감량을 했던 게 생각났다. 그 녀석도 이런 심정이었군, 하면서 샐러드에 닭가슴살을 주문하려던 참이었다. 오전에 운동을 하며 스승과 나눴던 짧은 대화가 생각났다. 아니 정확히는 스승의 못마땅한 표정이 생각났다. 내가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때부터 키 작은 복서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세상에 키 작은 복서들이 이렇게 많다니. 일단 타이슨부터가 헤비급에서 제일 키 작은 복서였다. ‘에이, 타이슨은 힘이 세잖아. 난 힘도 약한 걸.’ 다른 선수를 찾아봤다. 현재 UFC에서 전설로 꼽히는 볼카노프스키 키가 168cm이었다. ‘에이, 볼카노프스키는 거리 조절의 장인이라며. 나는 스텝도 제대로 못 뛰는 걸.’ 어디서 주워들은 걸 떠올리며 또 다른 선수를 찾아봤다. 현재 3체급 세계챔피언인 저본타는 키가 166cm였다. 저본타는 발을 땅에 붙여놓고도 기발한 회피와 컴비네이션으로 상대를 밥먹듯 KO시킨다. ‘에이, 저본타는 메이웨더가 7살부터 가르친 천재잖아.’ 그런 저본타를 유일하게 몰아붙인 크루즈는 키가 저본타보다도 작은 163cm였다. 크루즈는 저본타처럼 재기발랄하게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오직 우직한 전진 압박과 단단한 가드로 저본타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스승이 알려준 세계챔피언 닉 볼은 심지어 키가 157cm였다. 닉 볼은 자기보다 머리 한 개는 더 큰 복서들을 펀치 한 방에 때려눕힌다. 우연히 보게 된 한 프로 복싱 이벤트 경기에서 80킬로쯤 나가보이는 한 아저씨 복서가 키 190에 몸무게도 100kg는 넘어보이는 상대를 30초 만에 기절시키는 걸 보고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졌다. 온 세상에 싸움 잘하는 호빗들이 다 몰려와 내 귀에 대고 외치는 것 같았다. “키 작다고 복싱 못하는 거 아니다.”
그제서야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웃음이 났다. '키 큰 놈 다 때려잡는 키 작은 놈.' 이건 우리 아버지(키 165cm)의 평생의 로망 아니던가. 아니 아버지보다 더 예전부터 내려오던, 우리 집안의 염원 아니던가. “이 몸으로 삽질을 하겄냐, 쌀 가마니를 들겄냐. 우리 집은 공부밖에 살 길이 없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던 할아버지 생각이 났다. 고등학생 때 유학 가서 키 큰 외국아이들에게 기 죽지 않으려고 죽기살기로 헬스해서 몸 키운 내 사촌 동생들도 생각났다. “키 작아서 못해 먹겠네”라는 마음은 내 생각보다 훨씬 뿌리 깊은 우리 가족의 습관(아비투스)이었다. 우습게도 단 한 번도 이루지 못했던 우리 집안의 염원을 내가 이루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언젠가 내가 복싱한다는 이야기를 하자 어린 사촌 동생이 “누나, 나 사실 마카체프 좋아해”라고 수줍게 고백했던 게 생각났다. 공부만 하는 모범생이라 UFC 팬인 줄 전혀 몰랐다. 언젠가 복싱을 잘하게 된다면 그 동생에게 누나한테 복싱 배우러 오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 나의 싸움은 우리 가족의 싸움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아직도 리치 차이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하고 있지만, 오히려 키가 작아서 좋은 점도 하나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키가 작으면 키 큰 사람보다 상대의 바디(배)를 때리기 훨씬 유리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나처럼 키 작은 사람이 가드를 단단히 하고 있으면 상대 입장에서 때릴 곳이 별로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위빙 같이 상체를 숙이는 회피도 유리하고, 키 작은 사람이 아래에서 위로 공격을 하면 제법 위협적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은 내가 ‘키 작아서 못해먹겠네’라는 마음을 버리고 나니 보이게 된 것이었다.
“결핍이 스타일을 만든다.” 언젠가 스승이 수업 중에 했던 말이다. 그 내용을 가지고 난 유튜브 영상을 제작한 적도 있다. 실제로 내 삶에서 나의 결핍이 나의 스타일이 되어간다는 걸 체감한 적도 있다. 예를 들면, 나는 지금 나만의 페미니즘을 나름대로 구축해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 페미니즘 ‘스타일’은 내가 여성으로서 가지고 있던 ‘결핍’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싱을 할 때는 나의 ‘결핍’이 나의 ‘스타일’이 될 잠재성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건 내가 복싱이라는 운동을 잘 몰라서이기도 하겠지만, 내가 지금까지 진정한 ‘결핍’을 만나본 적이 없어서이기도 할 테다.
복싱은 정말이지 내가 잘하는 게 단 하나도 없는 전장이다. 나는 언제나 내가 잘하는 게 적어도 한두 개 이상은 있는 전장에서만 싸워 왔다. 처음 철학을 배울 때도 모든 것이 거꾸로 된 세상에 갑자기 떨어진 기분이었지만, 그때도 내게는 그 새로운 세상을 빨리 파악할 수 있는 ‘똑똑함’이라는 무기가 있었다. 남자를 만날 때도 평범한 외모, 여성스럽지 못한 성격 등 이런저런 핸디캡이 있었지만, 그렇다고 내세울 게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복싱은 정말로 내세울 게 하나도 없다. 내가 가진 유일한 무기라고는, 내 실력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초일류 복싱 스승을 두었다는 것밖에.
진짜 ‘결핍’을 진짜 ‘스타일’로 만든 적이 있는가? 아마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내가 나만의 ‘스타일’을 가진 복서가 되었을 때 비로소 할 수 있을 테다. 진짜로 잘하는 게 하나도 없는 전장에서 나만의 싸움을 만들어나가는 것이 진정한 ‘실전’일 테니까 말이다. 언젠가 스승이 처음 철학을 시작할 때 공부하던 책을 본 적이 있다. 빽빽이 쳐진 줄 사이에 “어렵다. 정말 모르겠다.”라고 쓰여진 낙서가 있었다. 그 당시 스승에게 ‘철학’은 잘하는 게 단 하나도 없는 전장 아니었을까. 지금 내가 복싱을 하는 마음이 “어렵다. 정말 모르겠다.”이니까 말이다. 정말로 불리한 전장에서 이겨보고 싶다. ‘키 큰 놈 다 때려잡는 키 작은 놈’이 되어 보고 싶다. ‘팔다리가 짧아 슬픈 짐승’이 아니라 ‘팔다리가 짧아 기쁜 짐승’이 되고 싶다. 그렇게 케케 묵은 나의, 아니 우리의 굴레를 또 하나 끊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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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gWH8ZFZ-V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