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맹'이 '복서'가 되는 방법

천 번의 '안 돼!'가 있어야 한 번의 '돼!'를 가르칠 수 있다.

by 김혜원

스승은 나에게 복싱을 가르치며 기본기의 중요성을 자주 얘기한다. 처음에 기본기를 잘 잡아놓지 않으면 나중에 이상한 자세가 굳어져 고치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복싱은 고사하고 몸을 움직이는 것 자체에 대한 이해가 거의 전무하다. 오죽하면 스승이 “넌 몸 쓰는 분야에 있어서는 ‘경계선 지능 장애’다”라는 농담을 했을까. 기본기가 왜 중요한지 모른 채로 기본기를 배우기 시작했다. 반년 동안 복싱의 기본기인 원투, 훅, 어퍼컷을 배웠다.


문제는 복싱의 기본기가 나에게 너무 어려웠다는 것이다. 스승이 시범을 보여주면, ‘대체 저 요상한 움직임은 뭐지?’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스승이 내 몸을 붙잡고 하나하나 자세를 잡아줄 때도, ‘세상에 이렇게 불편한 움직임이 있다고? 이걸 시합에서 해야 한다고?’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찼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럴만도 했다. 나는 어려서부터 몸을 써본 적도 없고, 육체적 싸움을 해보기는커녕 복싱이나 격투기 경기를 관심 있게 본 적도 없었다. 오죽하면 첫 번째 스파링 때 제일 먼저 든 생각이 ‘사람을 어떻게 때리는 거지??'였으니까. 나에게 복싱 훈련은 어느 날 갑자기 아무 말도 들리지 않은 외국에 떨어진 느낌과 같았다. 조선땅에 표류한 하멜이 된 기분이었다.


어퍼컷. 지금도 정말 요상한 자세라고 생각한다. 어렵고 그래서 더 간지 난다. 언젠가는 시합에서 해볼 수 있을까.


원투는 어찌어찌 했다. 훅과 어퍼에서 고비가 찾아왔다. (원투도 그렇지만) 훅과 어퍼는 몸의 회전력을 이용해서 주먹에 무게를 싣지 않으면 팔만 허우적거리는 모양새가 된다. 팔만 휘저어서는 타격을 줄 수도 없고, 동작이 커서 카운터를 맞을 위험도 커진다. 여기서부터 스승의 무한 가르침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말로 설명을 해주었다. 스승은 복싱을 가르치기 전에 나에게 오랜 시간 철학을 가르친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해야 가장 빨리 알아듣는지 잘 알고 있었다. 물리 법칙을 예로 들어 회전력과 충격량의 원리를 설명해주었다. 당연히 머리로는 알아 들었다. ‘그래, 회전력을 충격량으로 바꿔보자!’ 하지만 몸은 알아 듣지 못했다. 아니 정확히는 나는 몸의 회전을 잘 사용하여 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스승은 자꾸 나보고 팔만 휘두르고 있다고 지적하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럴만도 했다. 애초에 몸의 회전을 쓰는 ‘감각’을 모르는데, 지금 내가 몸의 회전을 쓰고 있는지 아닌지 스스로 구분할 수 있을 리가. 아마 그때쯤 나와 스승 모두 눈치챘던 것 같다. 나는 ‘몸치’가 아니라 ‘몸맹’이라는 사실을.


‘눈멀 맹盲’. 그게 그 당시 내 몸의 상태였다. 실제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 속에 혼자 멍청하게 서 있는 기분이었다. 한번도 세상을 보지 못한 맹인에게 ‘사과’를 어떻게 가르쳐줄 것인가? 아마 그것이 그 당시 스승이 당면한 과제가 아니었을까 싶다. 맹인에게 ‘사과’를 말로 설명해줄 수는 있다. “사과는 빨갛고 둥근 과일이야.” 맹인은 그 설명을 듣고 ‘아, 사과는 그런 거구나!’라고 받아들일 수는 있다. 하지만 지금 내 앞에 놓여진 물체가 ‘사과’인지 스스로 구분할 수는 없다. ‘어퍼는 몸의 회전력을 팔로 전달해 직선 방향의 힘으로 전환하는 거야!’ 나 역시 스승의 설명을 듣고 ‘아, 어퍼는 그런 거구나!’라고 받아들일 수는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움직이는 것이 ‘몸의 회전력을 직선 방향으로 전환시키는 것’인지는 구분할 수가 없었다. 한번도 몸으로 해보지 않을 것은 말로 가르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때부터 스승은 정말 많은 방법들을 총동원해 나에게 기본기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모든 동작을 쪼개서 알려주었다. 일단 몸을 회전시키려면 회전축을 만들 수 있어야 하는데, 그걸 모르니 회전축이 되는 앞발을 까치발을 들게 해 강제로 무게가 실리게 했다. 그 다음에는 몸을 회전시키는 감각 자체를 가르치기 위해 태극권에서나 볼 법한 양팔을 휘휘 돌리는 동작을 연습시켰다. 가장 어려운 어퍼를 가르칠 때는, 맹인의 입에 그냥 사과를 처넣는 방법을 썼다. 몇 주 동안 스승은 내 몸을 뒤에서 붙잡고 냅다 돌려버렸다. 스승이 강제로 만들어주는 회전력에 맞춰 팔을 뻗는 연습을 했다. 그렇게 어찌어찌 복싱의 기본기를 흉내는 낼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에 우습게도 어린 시절 읽었던 헬렌 켈러 위인전이 자꾸만 떠올랐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헬렌 켈러에게 말을 가르치기 위해, 설리번 선생님은 헬렌 켈러의 입에 직접 손을 넣어 혀의 모양을 잡아 주었다고 했다. 그러면 헬렌 켈러가 소리를 냈고, 그 소리에 맞춰 그에 상응하는 사물을 만지게 하여 단어를 가르쳤다고 했다. 그게 ‘몸맹’인 나를 스승이 가르친 방식 아니었을까.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것을 할 수 있게 하려면 일단 몸이 개입하는 수밖에 없다. 스승이 내 몸을 붙잡고 냅다 돌려버렸던 것처럼. 이 시기에 필요한 건 서로에 대한 절대적 신뢰다. 스승과 제자 둘다 자신의 몸에 대한 통제권을 온전히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한다. 가르치는 사람은 제자의 입에 손을 넣어 침범벅이 될 때까지 혀를 잡아줄 수 있어야 하고, 배우는 사람은 타인의 손이 입에 들어와 연약한 혀를 이리저리 주무르는 걸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비로소 ‘말문’이 트일 수 있다.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님

헬렌 켈러는 이제 설리번 선생님이 혀를 잡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혀 모양을 만들어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나 역시 스승이 몸을 돌려주지 않아도 스스로 복싱의 기본기를 흉내낼 수 있게 되었다. ‘몸맹’에서 ‘몸치’가 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어둠 속에 있다가 모든 것이 희뿌옇게 보이는 짙은 안개 속으로 넘어왔다. 이제는 무엇을 해야 할까? 무작정 걸어야 한다. 단, 내가 조금이라도 길을 벗어나면 삐삐 울리는 경보기를 귀에 차고서.


말을 한다는 건 생각보다 굉장히 섬세한 작업이다. 헬렌 켈러가 설리번 선생님이 잡아준 혀의 모양을 떠올리며 ‘사과’라고 발음을 해도, 그걸 다른 사람이 듣고 대번에 ‘아, 사과!’라고 떠올리긴 어려웠을 것이다. 외국인이 한국어 단어를 말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외국인이 꽤 근접한 발음으로 한국어 단어를 말해도, 조금만 어눌하면 우리는 그 단어를 알아듣지 못한다. 헬렌 켈러는 ‘사과’를 또렷이 발음할 수 있을 때까지 어떤 연습을 해야 했을까? 아마 “스가” “서가” “사가” 하고 계속 소리를 낼 때마다 설리번 선생님이 무한 ‘교정’을 해주지 않았을까? 그러다 어느 날 ‘사과’라고 정확히 발음한 순간이 오지 않았을까? 그때가 안개가 걷히는 순간 아니었을까?




“팔 떨어졌잖아. 팔 붙여.”

“팔 휘두르지 말고 몸으로 쳐야지.”

“머리는 정면. 옆으로 돌리지 말고.”

“다리 15도 유지.”

“상체 또 뜬다.”

“앞발 움직이잖아.”

“아니야.”

“틀렸어.”

“40점.”


모든 것이 희뿌옇게 보이는 짙은 안개 속에서 어떻게 길을 걸을 것인가? 일단 무작정 걸으면서 귀에 울리는 경보음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한 걸음 가면 “삐- 오른쪽으로 너무 많이 갔습니다”라고 울리고, 다시 왼쪽으로 틀면 “삐- 이번엔 왼쪽으로 너무 많이 갔습니다.”라고 울리는 경보음. 그렇게 수많은 경보음을 들으며 경보음이 울리지 않는 단 하나의 좁은 길을 섬세하게 찾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게 ‘몸치’ 단계에서 내가 기본기를 배운 방식이다.


말하는 것만큼이나 싸우는 것도 섬세한 작업이다. 내가 ‘사과’라는 정확한 발음 대신 ‘스가’ ‘서가’라고 말하면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듯, 내가 정확한 자세 대신 흉내만 내는 펀치를 치면 아무도 타격을 받지 않는다. 싸우는 상황에서 상대에게 타격을 주지 못한다는 건, 대화하는 상황에서 상대에게 내 의사를 전달하지 못한 것과 동일하다. 그때부터 정확하게 ‘사과’를 발음하기 위한 무한 ‘교정’ 지옥이 시작되었다. 한 시간 넘게 기본기 연습을 하는 동안 경보음이 울리지 않은 적이 없다. 몸의 회전을 신경쓰면 팔이 올라가고, 팔을 신경쓰면 다리가 펴지고, 다리를 신경쓰면 타점이 안 맞고, 타점을 신경쓰면 다시 몸의 회전이 망가지는 무한 반복이었다. 하나를 누르면 하나가 튀어나오는 두더지 잡기 게임기가 된 것 같았다.


지금 보면 진짜 못 치지만, 놀랍게도 저게 '몸맹'에서 '몸치'가 되고 난 뒤의 움직임이다.


“쌤, 투명한 상자에 갇혀 있는 것 같아요.” 기본기 연습을 하다가 무심코 내뱉은 말이었다. 진짜 그랬다. 다리는 구부린 채 절대 펴지 말고, 몸통은 회전시키되 머리는 정면에 고정시켜야 하며, 팔은 휘두르지 말고 몸통에 붙이고, 힘을 앞으로 전달하지만 몸통은 앞으로 기울어서는 안 됐다. 그 모든 걸 지키며 주먹을 내자니, 마치 몸에 꽉 맞는 투명한 상자 안에 갇혀서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내 말을 듣고 스승이 웃으며, “원래 잘 치는 사람들은 딱 요 네모 안에서 치는 거다“라고 했다. 스승이 시범을 보여줬다. 그 현란한 움직임이 다 그 네모 상자 안에 들어맞았다.




“진정한 YES는 수많은 NO를 통해서만 드러난다.” 그 당시 제일 많이 떠올랐던 말이다. 처음 철학을 시작했을 때 생각이 자주 났다. 나는 정말 절박한 심정으로 철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때는 말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내가 옳다고 믿고 행해온 내 삶의 방식이 전부 다 틀렸을 수도 있다’는 강력한 직감이 들었던 것 같다. 그 상태에서 지금의 스승을 만났다. 보자마자 알았다. “이 사람은 진짜 삶을 잘 사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진짜 삶을 잘 살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이다!” 그건 아마 내가 오랜 시간 진짜 삶을 잘 사는 게 뭔지 고민했고, 또 진짜 삶을 잘 사는 게 뭔지 아는 사람을 찾아헤멨기에 생긴 안목이었을 테다. 복싱을 못해도 매일 복싱 영상을 보며 타이슨을 만나길 꿈꿨던 사람은 타이슨을 대번에 알아볼 수 있다.


평생 복서를 꿈만 꾸다 타이슨에게 복싱을 가르쳐달라고 찾아간 상황. 그게 내가 처음 스승에게 철학을 배울 때의 마음가짐이 아니었을까? 다행히 그때 나는 ‘삶맹’까지는 아니었다. 가끔 스승에게 찾아오는 어린 친구들 중에는 ‘삶맹’인 친구들도 있다. ‘삶맹’이 별게 아니다. 내가 몸을 써본 경험이 극도로 적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듯, 삶을 살아본 경험이 극도로 적어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친구들이 있다. 그런 친구들에게 스승은 일단 삶을 살아보게 한다. 돈을 벌어보라고 하고 연애를 해보라고 한다. 서른 초반에 철학을 시작한 나는 ‘삶맹’은 아니었다. 나름대로 주먹도 휘둘러보고 싸움도 해보고 이겨도 봤는데, 어떤 거대한 벽을 만나 좌절한 상태였다고 할까.


스승이 ‘타이슨’이라는 걸 알고나서부터는, 스승의 지도하에 내 삶 전체를 뜯어고쳐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그래서 매일 스승에게 나를 보여줬다. 타이슨에게 코치를 받으려고 하루종일 체육관 거울 앞에서 주먹을 휘두르고 있었던 셈이다. 다행히 내가 철학을 배우는 공동체에는 누구나 자기 얘기를 글로 쓸 수 있는 비밀 공간이 있다. 그 공간에 매일 내 얘기를 썼다. 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떻게 해석해서 어떻게 행동했는지 구구절절 썼다. ‘관심’받고 싶어서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교정’받고 싶어서였다. 내가 대체 무엇을 잘못 느끼고 잘못 해석하고 잘못 행동하길래 내 삶이 이렇게 되었는지 ‘삶의 고수’인 스승에게 철저하게 ‘교정’받고 싶었다. 그렇게 나라는 인간이 느끼고 해석하고 행동하는 삶의 방식 전체를 뜯어고치지 않으면, ‘동네 일진'이 ‘복서’가 되는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스승은 복싱의 기본기를 가르쳐줄 때처럼 내 삶에서 ‘교정’해야 할 부분을 알려줬다. 직접 알려줄 때도 있었고, 그냥 함께 생활하는 공기 속에서 간접적으로 배울 때도 있었다. 그때 내 심정이 바로 투명한 유리 상자에 갇힌 느낌이었다.


그 당시 스승이 써준 내 소개글. 웃고 있지만 사실은 졸라 절박했다.


‘아, 방금 상황에서 느껴야 하는 감정은 안도감이 아니라 수치심이잖아.’ ‘야, 지금 니가 이걸 고마워하면 어떡해. 지금 상황에서 스승이라면 미안해했을 거라고.’ ‘이거랑 비슷한 상황에서 스승은 어떻게 행동할 것 같지? 그걸 빨리 떠올려서 그렇게 행동해!’ 아무도 공감 못할 이야기이겠지만, 그 당시 나는 내 머리통을 갈라서 나를 구성하는 알고리즘을 전부 새로 짜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범한 일상을 보낼 때도 매 순간 귀에서 경보음이 울렸다. 내가 느끼고 해석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 제동이 걸렸다. ‘잠깐만, 내가 제대로 생각한 게 맞나? 이렇게 느끼는 게 정당한가?’ 그건 마치 주먹을 한번 휘두를 때마다 “내가 팔을 붙였나? 회전을 했나? 다리는 구부리고 있나? 앞손은 돌렸나? 머리는 정면을 보고 있나?”를 전부 생각해야 하는 상황 같았다. 그 모든 것을 다 신경쓰면 로봇처럼 움직이게 된다. 그때 내 삶도 로봇 같았다.


“자연스러워지기 위해서는 부자연스러움을 견뎌야 한다.” 수많은 NO가 있어야 비로소 YES의 형상이 잡힌다. 무언가를 진짜로 배운다는 건, 눈에 보이는 길을 걷는 게 아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곳을 계속 걸어서 길을 ‘내는’ 것이다. 처음부터 길이 눈에 보인다면, 그건 진짜로 ‘모르는’ 상태가 아닐 테니까. 몸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움직임을 진짜로 배우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계속 움직여 몸에 길을 ‘내야’ 한다. 눈에 보이기 않기에, ‘옳은’ 길은 수많은 ‘틀린’ 길을 통해서만 드러날 수 있다. “그거 아니야!” “그거 아니야!”를 수백 번 들어야 비로소 “그거야!”를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부터 스승의 ‘교정’이 줄어들었다. 아마 그때부터였을 테다. 체육관에서 기본기를 연습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어? 저 사람은 팔만 휘두르는데?’ 심각한 표정으로 온힘을 다해 주먹을 휘두르는데 전혀 무게를 싣지 못하는 사람들을 구분할 수 있게 됐다. 체육관에서 가끔 미트를 치면 내 훅과 어퍼를 보고 코치들이 “오!” 할 때도 있었다. 일반 여자 치고 자세가 잘 나와서다. 물론 아직 갈 길이 멀다. 이제 무게 하나 실을 수 있게 된 것일 테다. 아직 임팩트 주는 법도 모르고 타점도 엉망이다. 하지만 하나의 단계를 지난 것만은 분명하다. 이제 ‘몸치’에서 ‘몸’까지는 온 것 같다.


안개를 지나고나면 언제나 모든 것이 너무 명료해진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 있을 때는 모든 게 뿌옇지만, 그 상황을 이해하게 되면 그게 왜 안 보였는지 의아할 정도로 모든 게 너무 잘 보인다. 복싱도 짙은 안개를 지나 하나의 움직임을 할 수 있게 된 다음부터는, 그 움직임을 진짜로 할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그냥’ 보였다. 철학도 짙은 안개를 지나 하나의 깨달음을 얻고나서부터는, 그 삶의 진실을 진짜로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그냥’ 보였다. 언젠가부터 함께 공부하는 동생들이 무엇을 물으면, “어? 그거 아닌데?”라고 먼저 말하고, 한참 생각했다가 왜 아닌지 설명해주는 순간들이 많아졌다. 체육관에서 잘못된 자세로 치는 사람들을 봐도 ‘왜 잘못되었는지’보다 그냥 ‘잘못되었다!’가 먼저 떠올랐다. 온몸으로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그런 것일 테다. 운동에서든 삶에서든 온몸을 움직여 ‘감각’을 깨우치는 것이 먼저다. ‘논리’는 그 ‘감각’을 누군가에게 말로 설명해줄 때 필요할 뿐이다. 그리고 그 설명만으로 ‘감각’을 전달할 수는 없다.


‘감각’을 배우고 가르치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가? ‘이렇게 때려야 한다!’는 감각,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감각은 온몸으로 알려줄 수밖에 없다. ‘깨달음’이 몸에서 몸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듯, ‘감각’도 몸에서 몸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감각’이란 몸의 ‘깨달음’인지도 모르겠다.


새로운 ‘감각’을 배우기 위해서는 어린 아이가 되어야 한다. 걷지 못하는 아이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려면 일단 엄마가 아이를 들려올려 걷는 시늉을 하게 해야 한다. 아이는 몸의 통제권을 오롯이 엄마에게 맡겨야 한다. 그 다음에는 무수히 많은 ‘안 돼!’를 견뎌야 한다. “그건 먹는 거 아냐!” “그거 만지면 안 돼!” 어렸을 때 엄마에게 얼마나 많은 ‘안 돼!’를 들었나. 그 ‘안 돼!’를 통해 어린 아이는 한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배워나갈 수 있다. 어쩌면 그 기억 때문에 우리는 어른이 되어 새로운 감각을 배우지 못하는 것 아닐까? 그 ‘안 돼!’가 듣기 싫어서 그토록 어른이 되고 싶었던 것이니까.


새로운 ‘감각’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 손이 침범벅이 될 때까지 아이의 입안에 손을 얻어 혀를 만져줄 수 있는 엄마. 손이 땀범벅이 될 때까지 아이의 몸을 붙잡고 바닥이 발이 닿는 감각을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엄마. 그리고 무수히 많은 ‘안 돼!’를 외칠 수 있는 엄마가 되어야 한다. ‘안 돼!’를 외치기 위해서는 무엇이 진짜 ‘돼!’인지를 일단 알아야 한다. 어떻게 때리는 게 잘 때리는 건지 모르면서 ‘그렇게 때리면 안 돼!’를 외쳐서는 안 되니까.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건지 모르면서 아이에게 ‘그렇게 살면 안 돼!’를 외쳐서는 안 되는 것처럼. 그리고 끊임없이 아이를 살펴보고 있어야 한다. 짙은 안개 속에서 걷고 있는 아이에게 단 하나밖에 없는 길을 알려주기 위해. 나는 언젠가 누군가에게 ‘설리번 선생님’이 되어줄 수 있을까? 늘 엄마가 되고 싶었던 내가 품고 살아야 할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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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xFrgzeFzVP8

무수한 '안돼!'를 지나 모든 기본기가 몸에 붙으면, 아무렇게나 쳐도 다 네모 상자에 들어맞는 '복서'의 움직임이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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