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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원 Oct 02. 2019

올인의 미학 I

인생에 플랜 B가 없어야 하는 이유

 돈 안 되는 일에 푹 빠져 산다. 혼을 담아 돈 안 되는 공부를 하고, 온 시간을 도움 안되는 사람들을 만나는 데 쓴다. 하필이면 돈이 안 되는 일에 빠져서일까? 이런 나를 보고 종종 주변 사람들이 걱정어린 조언을 건넨다.


 "네가 그 일을 좋아하는 건 알겠는데, 너무 빠지는 것 같아서 걱정돼."

 "나중에 잘못되면 어떻게 감당하려고. 인생에는 항상 플랜 B가 있어야 하는 거야."


 그들의 걱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나도 무언가에 올인하는 삶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고 있다. 만약에 지금 올인한 일이 망하면? 내가 믿은 사람이 뒤통수치면? 아니, 애초에 별로 믿을 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면? 신이 아닌 이상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백프로 확신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올인을 한 사람은 늘 위태롭다. 판돈을 다 건 만큼 판돈을 다 잃을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의 걱정어린 시선을 받을 때마다 나는 한 가지 의문이 든다. 그렇다면 올인하지 않는 삶은 위험하지 않을까?




 예전에 스타트업을 운영한 적이 있다. 나처럼 오랜 시간 사업가를 꿈꿔왔던 친구들과 시작한 사업이다. 처음에는 모든 게 즐거웠고, 꿈꿔왔던 일을 하고 있다는 자부심도 대단했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 없이 1년이 지나자 한 마음 한 뜻이었던 친구들 사이에서 점차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때 우리 나이가 스물아홉이었으니 걱정할 만도 했다. 성과 없는 사업에 계속 매달릴지, 손절하고 취업 막차에 올라탈지의 기로에서 몇몇 친구들은 후자를 선택했다.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들은 곧 좋은 직장에 안착했고, 나는 그 후 4년을 더 사업에 올인했다. 하지만 올인의 대가는 처참했다. 4년의 고생 끝에 얻은 건 폐업증명서와 우울증, 그리고 취직하기에 애매하게 많은 나이 뿐이었으니. 한 동안 사업을 5년씩이나 잡고 있었던 걸 후회한 적도 있었다. 나만 어리석게 올인한 바람에 시간만 낭비한 것 같았다. 하지만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그때 그만둔 친구들이 취직 후 안정을 찾자 다시 사업을 하고 싶다고 방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깨달았다. 인생에서 끌리는 것이 있으면 무조건 끝까지 해봐야 한다는 사실을. 물론 각자의 상황 차이는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나와 그들의 차이는 딱 하나였다. 사업이라는 꿈을 끝까지 쫒았는가, 쫒지 않았는가. 나는 그때 사업에 올인했고 그 친구들은 하지 않았다. 그 결과 나는 사업에 대한 욕망을 하얗게 불태울 수 있었지만, 그들은 미련만 남아버린 것이다. 물론 모든 걸 걸었던 만큼 망했을 때 충격도 컸다. 사업을 접고나서 한동안 머릿속에 극단적인 생각이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대가만 있었던 건 아니다. 올인한 것을 모두 잃고 처참하게 내동댕이 쳐졌을 때, 나는 비로소 삶의 진실 하나를 깨우칠 수 있었다. 바로 지나친 야망은 삶을 파멸로 몰고 간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우친 순간, 나는 '성취하는 삶'을 종결짓고 새로운 삶의 문을 열 수 있었다.


 너무나 당연한 말 같지만, 그 사실을 온몸으로 부딪쳐 깨우친 것과 머리로만 아는 것은 다르다. 가끔 그때 사업을 그만뒀던 친구를 만나는데, 그녀는 아직도 만날 때마다 어떤 사업 아이템을 하면 돈을 많이 벌지 고민 상담을 늘어 놓는다. 그런 그녀를 보면 마치 우리가 스타트업하던 시절에 시간이 멈춰있는 것 같다. 그녀도 야망을 쫒는 삶이 힘들다고 말은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때 도중에 발을 뺀 탓에 아직 사업에 대한 미련이 남아 보인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그녀는 올인의 대가를 치르지 않은 탓에 아직 야망이 얼마나 덧없는지 깨우치지 못한 것 같다. 그래서 그녀를 보면 안타깝다. 몇년동안 계속 같은 욕망 주위를 맴돌며 과거의 한 지점에서 나아가질 못하고 있는 것 같아서.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진짜 '시간 낭비'인지도 모르겠다.




 사랑도 마찬가지다. 내가 남자친구에게 흠뻑 빠졌던 시절, 한 친구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걔도 좋은 애지만, 혹시 더 괜찮은 애가 나타나면 어떡해?" 실제로 그는 그렇게 연애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입버릇처럼 지금 여자친구가 90점이어도, 95점짜리 여자가 나타나면 갈아타는 게 현명한 거 아니냐고 말하고 다녔다. 그는 여자친구에게도 절대 올인하지 않았다. 여자친구가 누구든 헤어지면 쿨하게 다른 여자랑 또 연애를 이어갈 뿐이었다. 철없던 시절에는 그런 그가 왠지 어른스러워 보였다. 하지만 올인하고 상처받고 또 올인하는 연애를 몇번한 뒤 깨달았다. 그는 단지 사랑이 무서운 어린애라는 사실을.


 그가 어떤 애인에게도 올인하지 못하는 이유는 자명하다. 그는 늘 더 괜찮은 옵션이 있으면 갈아타겠다는 마음을 품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그의 마음은 항상 플랜 B, C, D로 일정 부분 채워져 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지금 사귀는 여자친구가 플랜 A라 할지라도, 늘 플랜 B, C, D의 자리도 남겨놔야하는 탓에 절대 마음의 100%를 쏟을 수 없었다. 그 어줍잖은 계산 탓에 그는 플랜 A의 진가를 알아보지도, 순도 높은 사랑을 하지도 못했다. 그렇게 그는 늘 어딘가 마음 허전한 연애만 되풀이했다. 원래 사랑은 다 그런 거 아니냐고 자위하면서.

 

 플랜 B, C, D가 있다면 플랜 A는 더 이상 플랜 A가 아니다. 진정한 플랜 A는 올인을 할때만 가능하다. 올인은 '이 중에서 네가 1위'가 아니라, 너 하나밖에 없어서 순위를 매길 수 없는 상태다. 올인은 반드시 그것이어야만 한다는, 그것이 아니면 아무 소용 없다는 마음이다. 이 일이 아니면 아무 일도 하지 않겠다는 맹목성이자, 이 사람이 아니면 아무 의미 없다는 간절함이다.


 이런 맹목성과 간절함 탓에 올인을 하면 상처를 받기 쉽다. 뜨겁게 사랑했던 만큼 헤어질 때 아픈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올인을 해야 한다. 올인을 해서 받는 대가보다 올인을 하지 않아서 받는 대가가 훨씬 크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일을 끝까지 밀어부쳐보지 않으면 미련이 남아 평생 그 일 주변을 배회하게 되고, 미지근한 사랑만 하다 보면 결국 아무도 사랑할 수 없게 된다. 올인하지 않는 삶의 끝에는 공허만이 있을 뿐이다.


 반면 올인을 했던 자는 미련이 없다. 헤어졌을 때 미련이 남는 사람은 늘 덜 사랑한 쪽 아닌가. 마음을 모두 쏟아내면 성패와 상관없이 후련한 법이다. 물론 마음을 쏟았던 대상이 사라진다는 것은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나의 모든 것이 사라진 그 무(無)의 시간 속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삶의 부분들을 보게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삶의 지평이 넓어질 수도 있다. 뜨거웠던 첫사랑이 끝나고 한참 아프고나면 한결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올인한 사람은 미련이 없기 때문에 과거에 얶매이지 않는다. 그는 올인하고 상처 받고 다시 일어나 또 올인할 무언가를 기다리며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삶을 산다.


 어쩌면 올인하지 않는 자는 한번도 올인을 안 해봐서 올인이 두려운 것일 수도 있겠다. 무언가에 마음을 쏟고 다 잃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을 한번만 경험해 보면 안다. 올인 끝에 받는 상처는 아프지만, 삶의 자부심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나도 그 사실을 알기에,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도 계속 올인하며 살 것이다. 사람들이 걱정어린 조언을 건네도, 때로는 바보같다고 손가락질을 해도 상관 없다. 이별이 두려워서 조금만 사랑하겠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겠나. 나는 지금처럼 내가 좋아하는 일과 사람들에게 푹 빠져서 따뜻하고 충만한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 것이다. 이러다가 혹여 지금 이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 버리더라도, 스타트업이 망했을 때처럼 다시 한번 아픔을 감내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그렇게 머리 굴리지 않는 순박한 마음으로, 무언가에 온전히 마음을 주고 뿌리를 내리며 살고 싶다. 나는 그것이 공허하지 않는 삶을 사는 유일한 방법이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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